기사최종편집일 2024-06-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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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 ’4강 신화’ 이뤄내기까지

기사입력 2006.03.20 23:10 / 기사수정 2006.03.20 23:10

윤욱재 기자



대한민국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이 세운 업적은 그 누구도 폄하할 수 없다. 한국은 미숙했던 대회 운영과 주최국의 텃세 등 여러 난관들을 넘어 세계 최강과 자웅을 겨룰 만큼 대등한 모습을 보여줬다.

WBC는 한국야구가 얼마나 성장했고 또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WBC에서 한국야구가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한다.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 현실로 다가오다

지난 1월 9일 WBC 유니폼 제작 발표회 및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진 바있다.

각 선수들의 인터뷰가 하나 둘씩 진행되었고 어느덧 박한이(삼성)의 차례가 왔다. 박한이는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장내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때만 해도 우승은 커녕 일본을 꺾을 것이란 예상도 거의 없었던 상태. 사실 대만도 왕치엔밍(뉴욕 양키스)을 앞세워 한국전 필승을 다짐한 바 있어 2라운드 진출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한국은 세계 최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야구 강국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앞서 말한 박한이와 왕치엔밍 모두 WBC에 불참했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박한이의 한마디는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속담을 떠오르게 할 만큼 걸작이 돼 버렸다.

해외파 자진 합류 '천군만마'

WBC 대표팀이 한국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드림팀으로 꼽히는 것은 해외파들이 모두 합류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 봉중근 등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모두 군소리없이 대표팀에 들어왔고 일본 야구 적응을 마친 이승엽도 별탈 없이 합류에 성공했다. 단,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재응이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거취 문제가 겹치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서재응은 결국 대표팀 합류를 결정했고 핵심 빅리거가 빠진 일본, 대만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합숙훈련을 모두 마친 한국은 격전지인 도쿄로 옮겨 대만전을 치렀다. 3년 전 삿포로에서 치욕을 당했던 한국은 대만전 설욕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고 특히 마운드에서 그 위력이 드러났다.

선발로 등판한 서재응은 간혹 주자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여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대만 타선을 농락했고 이후에도 김병현, 구대성 등 해외에서 뛰었던 경험을 되살려 대만의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다.

홍성흔과 이종범의 적시 2루타로 두 점을 선취한 한국은 2-0으로 다소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었고 7회가 되자 박찬호를 투입시키기에 이르렀다. 박찬호는 불펜 등판에 익숙치 않았지만 한 수 아래인 대만 타자들을 쉽게 처리했고 9회 위기에서도 박진만의 호수비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기세를 몰아간 한국은 중국전에서 10-1로 승리했고 당일 저녁에 펼쳐진 일본-대만전에서 일본이 이김에 따라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일단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었다.

투지와 정신력, 그리고 위대한 한방

일본의 최고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내뱉은 한마디는 한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30년간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이치로의 말에 한국은 일본전에서 무조건 이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선우를 선발로 내세운 한국은 경기 초반 일본에 주도권을 뺏겨 끌려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연달아 위기를 맞아 아찔한 순간들을 연출했다. 4회 2사 만루 위기에서 일본의 다무라 히토시가 우측을 가르는 2루타성 타구를 쳐냈고 '여기서 끝이구나'하는 순간 이진영이 다이빙캐치로 잡아내며 분위기를 역전시켰다.

한국은 5회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소중한 한 점을 얻어냈고 8회에도 이종범의 안타로 귀중한 찬스를 잡은 상태였다. 이 때 이승엽이 승리로 연결하는 통렬한 역전투런을 작렬했고 마무리투수로 나온 박찬호가 9회 마지막 타자 이치로를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2라운드로 가는 발걸음이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한국야구의 힘

일찌감치 미국 현지로 날아와 2라운드를 준비 중이던 한국은 경기 일정 변경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황당한 일을 당하지만 1라운드 B조 1위로 올라와 한국과 2라운드 첫 경기를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대신 멕시코가 첫 상대로 결정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물론 멕시코도 만만치 않은 강팀이었지만 한국은 1회 이승엽의 투런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했고 선발 서재응을 필두로 한 한국의 '짠물 마운드'가 빛을 발하며 2-1 리드를 끝까지 지켜 4강 신화의 첫 발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하이라이트는 미국전이었다. 미국은 일본전에서도 심판의 도움으로 승리했다는 악평을 들을 만큼 주최국의 농간을 부리고 있었다. 한국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투수가 승부구로 던지는 공은 모조리 볼로 선언된 것.

하지만 한국은 물이 오를대로 오른 이승엽이 1회 선제 솔로홈런을 터뜨리고 곧이어 터진 이범호의 적시타와 3회에 얻은 추가점으로 3-1로 리드를 잡아갔다. 물론 금방 뒤집힐 수 있는 스코어였지만 한국은 4회말 대타로 나선 최희섭이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극적인 스리런을 터뜨리며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었고 결국 7-3으로 승리, 한국야구의 매운 맛을 선사했다.

2라운드 마지막 상대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설욕을 다짐하며 '필승카드' 와타나베 순스케를 다시 한번 내세웠고 한국은 박찬호로 맞불을 놓았다. 승리를 향한 열정이 불타올랐던 만큼 치열한 투수전이 전개됐다. 한국은 2회 위기를 맞았지만 이진영의 정확한 홈송구로 무실점으로 넘어간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0-0으로 팽팽하던 경기는 8회 한국이 김민재의 볼넷으로 어렵게 찬스를 얻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어 이병규가 중견수 앞 적시타를 터뜨렸고 김민재는 3루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송구 타이밍이 정확해 아웃이 예상되는 상황. 그렇지만 이번엔 일본 3루수 이마에 도시아키가 볼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세이프되었다.

이런 찬스를 놓칠 리 없었다. 이종범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천금 같은 2타점을 올리며 2-0으로 앞서갔고 9회 일본의 추격에도 불구 한 점으로 잠재우며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한국이 4강 진출이란 기적을 이뤄내는 순간이었다.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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