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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최다승 '송골매' 송진우의 아름다운 비상

기사입력 2006.05.14 02:03 / 기사수정 2006.05.14 02:03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1] 2002년 송진우 

 불멸의 기록을 향하여

한화 이글스는 이광환 감독 부임 첫 해인 2001시즌에서 진흙탕 싸움 끝에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다. 구대성, 정민철 등 주력 투수들의 해외진출로 포스트시즌 진출은 회의적이었지만 김태균, 김수연 등 새 얼굴과 노장 선수들의 활약으로 가을 축제에 잠시나마 얼굴을 비칠 수 있었다.

지난 시즌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한화는 2002시즌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룹 창립 50주년에 초점을 맞춰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마침 정민철이 국내 복귀를 선언해 송진우와 원투펀치를 이루게 됐고 공격형 포수 이도형을 트레이드(↔강인권+5억원)해 전력보강이 알차게 이뤄졌다.

한화 마운드를 이끄는 송진우의 마음가짐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달라지는 팀 분위기에 맞춰 더욱 성실하게 훈련했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애썼다. 불멸의 대기록 수립이 가까워진 것도 송진우의 전의를 불태우게 했다.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송진우는 롯데 타선을 철저하게 봉쇄하며 완봉승을 거둬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송진우가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건 처음이었다. 8회 2사까지 안타를 내주지 않아 노히트노런을 아깝게 놓칠 만큼 완벽한 피칭이었다.

다음 등판 경기인 SK전에서 완투승으로 개인 통산 최다승 타이기록(146승)을 세운 송진우는 이번엔 고향인 청주로 무대를 옮겨 이번에도 SK 타자들을 단 3점으로 제압하며 완투해 선동열(당시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의 벽을 넘는데 성공했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146승을 넘어 147승 고지에 오른 것이다.

좌완투수 최초 통산 100승, 역대 최초 통산 2000이닝 등 프로야구 역사를 하나씩 만들어가던 송진우에게 개인 통산 최다승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 축포가 터졌고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기록 보유자였던 선동열 홍보위원도 송진우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5월 중순에 통산 150승을 거둔 송진우는 5월까지 완투만 6번을 기록할 정도로 기운이 펄펄 넘쳤다. 올스타 휴식기 전에 이미 10승을 기록한 송진우는 다승 부문 선두권을 유지하며 훨훨 날고 있었다.

‘회장님’의 새로운 전성기

송진우는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백전노장. 그렇다면 송진우가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몸에 해로운 일은 절대 하지 않았고 운동에만 매달리는 진정한 프로였다. 강한 체력도 빼놓을 수 없는 무기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20대 시절 혹사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마흔 가까이 되도록 꾸준히 뛸 수 있는 이유는 남들보다 피곤이 쉽게 풀리는 그의 체질이 밑바탕이 됐다.

투구 면에서 살펴보면 직구보다 슬라이더, 체인지업에 역점을 둬 컨트롤에 신경 쓰는 피칭을 주요 패턴으로 삼아 타자들을 상대했고 오른손 타자들을 처리하는데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바깥쪽에 꽉 차는 제구력이 일품이었다.

송진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살려 경기를 끌어갔고 자연스레 승수도 올라가면서 다승왕 레이스를 꾸준히 펼치고 있었다.

개리 레스(두산), 마크 키퍼(기아) 등과 함께 다승 레이스를 펼치며 국내선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던 송진우는 9월이 되자 통산 160승을 거두며 시즌 20승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갔지만 18승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승왕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될 만큼 치열했다. 키퍼가 마지막 경기에서 19승을 올리며 다승왕을 차지한 반면 송진우는 시즌 마지막 롯데전에서 승리투수 요건을 채워 놓고도 마무리 레닌 피코타가 구원에 실패하는 바람에 다승왕의 꿈을 접었다.

생애 첫 골든글러브, 아시안게임 금메달…잊지 못할 추억들

세월을 잠시 되돌려 보자. 1992년 빙그레 시절 따로 보직없이 마구잡이로 등판하며 최고 성적을 올린 송진우는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했지만 골든글러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신인왕을 차지한 염종석(롯데)에 밀려 골든글러브를 놓치고 말았다.

정확히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누구보다 열심히 던지고 최선을 다한 송진우의 품으로 돌아갔다.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끊임없는 연구하는 자세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결국 골든글러브의 한을 풀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도 인상적이었다. 시즌 막바지까지 있는 힘을 다해 던지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피로가 쌓여 있을 만도 했지만 송진우는 생애 마지막 태극마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한국의 첫 경기인 중국전에서 9회 등판해 컨디션을 조절한 송진우는 가장 중요한 일본전에서 5이닝을 '노히트노런'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한국의 4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 승리는 금메달의 징검다리가 됐다.

프로리그에서도 국제대회에서도 정상급 기량을 발휘하며 노장 투혼을 불사른 송진우의 2002시즌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기억되고 있다.

송진우 (2002) → 18승 7패 방어율 2.99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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