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4-30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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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의 황당한 우승 조건, 프로 감독보다 "유튜브"?

기사입력 2023.01.06 00:00 / 기사수정 2023.01.06 16:50

윤승재 기자


(엑스포츠뉴스 인천, 윤승재 기자) "경기 운영 면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유튜브에서 팬들이 말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감독과 단장을 동반 경질한 흥국생명 구단의 해명은 다소 황당했다. 전임 단장의 선수단 기용 지적은 '(단장이) 의견은 냈지만 개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고, 의견을 낸 부분에 대해선 "김연경-옐레나의 투입 위치"라고 설명하면서도 이는 '선수단 기용 개입'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질문이 이어지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이다 같이 시원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단장의 해명 기자회견은 그렇게 고구마로 끝이 났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오후 긴급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배구단 단장을 동반 사퇴키로 결정했다. 임형준 흥국생명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구단주의 해명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현재 흥국생명은 리그 2위를 달리고 있고, 관중동원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며 성적과 흥행을 모두 잡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권순찬 전 감독이 단장의 선수 기용 간섭이 있었다라고 말하며 논란이 더 크게 일기도 했다. 



이에 신용준 신임단장이 5일 직접 취재진 앞에 나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해명을 했다. 부임한지 사흘 된, 사건을 온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신임단장을 앞세워 해명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연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명확한 해명은 없었다. 

우선 권 전 감독이 말한 전임 단장의 선수 기용 개입에 대해 신 단장은 "선수 기용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선수단 운영에 갈등이 있었다. 로테이션 문제에서 의견이 안 맞았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신 단장은 김연경과 옐레나의 위치를 지적했다. 신 단장은 "팬들이 김연경과 옐레나가 전위에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전후에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애초에 선수 위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감독의 권한이고, 이를 단장이 개입한다면 '월권'이고, '개입'이다. 이러한 지적이 이어지자 김 단장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라며 즉답을 피하면서도, "개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라며 부정했다. 

선수 기용에 대해 의견은 냈지만, "기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개입이 아니다"라는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팬들의 의견 수렴 방법에 대한 질문엔 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기준으로 팬들의 요구를 측정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신 단장은 "유튜브에서도, 주변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신 단장은 "김연경이 있는데 1위를 못하면 안된다. 우승이 목표다"라면서 '2위'를 달리던 권순찬 전 감독을 경질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감독보다 팬들의 목소리가 우승에 가깝다고 본 것이냐는 지적에 신 단장은 "그렇다"라고 답하며 취재진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프로팀이 '배구 전문가' 감독이 아닌 유튜버와 팬들의 의견으로 선수단 운영을 지적하고 경질까지 한 '아마추어식 행정'의 이면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전임 단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와 신임 단장의 황당 답변과는 달리, '배구 전문가' 사령탑과 선수들의 의견은 달랐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상대 팀으로서 (높이가 있는) 김연경과 옐레나가 전위에 있으면 까다롭다. 벽에 부딪친다"라고 표현했고, 이날 흥국생명을 지휘한 이영수 감독대행은 "이전부터 여러 시도를 해왔고, 제일 좋은 포메이션이라고 판단해 오늘 경기에서도 유지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상대팀 사령탑도 까다롭다고 말한 포메이션을 '유튜브'를 근거로 바꾸려다 사달이 났다. 

직접 경기에 뛰는 김연경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김연경은 "경기를 운영하다보면 맞는 부분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이 포메이션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4패밖에 안했다. 이런 조건이면 모든 감독이 경질이 될 수 있지 않나.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게다가 선수들의 해명 과정에서 전임 단장의 '선수 기용 개입'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김연경과 김해란은 "사실 우리도 (전임 감독의 선수단 기용 개입을) 느꼈다”라고 조심스레 말하면서 “(구단이) 원하는대로 경기를 하다가 진 상황도 있었다. 사실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구단의 해명도 사실이 아닌 것이 드러났다. 

황당한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흥국생명의 아마추어식 대처능력만 더 부각됐다. 빠르게 새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했지만, 선수들의 신뢰도 잃었다. 김연경은 "사실 다음 감독님이 오셔도 신뢰하기가 어렵다. (일련의 사태로) 구단에서 원하는 사령탑은 구단 말을 잘 듣는 감독을 선호한다는 거나 다름없다”라면서 허탈해 하기도 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사진=인천, 김한준 기자

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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