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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한국 대 페루, 42년 전의 추억‏

기사입력 2013.08.13 10:53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한국 대 페루 A매치를 앞두고 특이한 기록에 눈길이 머문다. 1971년 2월 10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벌어진 양국 간 최초의 A매치 페루의 4-0승리.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논어 옹야(雍也)편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6/21)

(자왈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급 이상의 사람에 대해서는 고차원적인 말을 해줄 수 있으나, 중급 이하의 사람에 대해서는 고차원적인 말을 해줄 수 없다.

70년대 초라면 한국 축구가 세계의 변방이던 시절이다. 축구 뿐 아니라, 아예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무대에 존재감이 없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의 경기력을 국제수준으로, 적어도 중급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가. 고민과 장고 끝에 탄생한 방안이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축구대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71년 5월 제1회 대통령배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의 탄생 배경이다. 프로리그를 운영하자니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불비(不備)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자 하는 대중적 욕망은 거대하고.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아시아 서킷이다. 주최국이 초청비를 대고 주변국 대표팀을 불러다 대회를 치르는 방식으로 각국 대표팀이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회하는 것. 1957년부터 시작한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 1968년에 닻을 올린 태국의 킹스컵, 1970년에 1회 대회를 치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시 창립기념대회에 이어 늘 떠돌이 같던 대한민국이 ‘드디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감격. 한국, 말레이시아, 크메르,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 월남, 홍콩이 제1회 대통령배 참가팀의 면면이다. 멸망했거나 이름이 바뀐 나라가 이 중에 셋이나 되는 아득한 시절의 신화(神話)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은 어렵게 유치했던 1970년 아시안게임을 ‘돈이 없어’ 반납한 사실이 있다. 그 때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하려고 대대적 개보수를 거치고 야간 조명탑을 설치했던 곳이 지금은 사라진 서울운동장(동대문 운동장)이다. 물론 제1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의 전 경기, 16경기도 이곳에서 펼쳐졌다.

판을 벌였으니 망신을 당할 수는 없는 터. 그래서 나온 ‘족집게 단기속성과외’ 방책이 국가대표팀의 남미원정이다. 71년 1월 13일에 출국해서 2월 21일에 돌아오는 머나먼 여행길. 여행은 고사하고, 공무로라도 외국에 나가는 일이 ‘특혜’이던 시절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에 나가려면 귀국각서에 보증인 재산세 납부증명서와 인감증명, 신원보증서에 이르기까지, 무려 70여 종의 서류를 구비해야 한 달이 넘는 심사를 거쳐 겨우 여권을 만들 수 있었다.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특수층’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데 한 달이 넘는 남미원정?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었다. 남미는 날씨가 따뜻할 터이고 하나같이 축구 강국이니 전력보강에는 최상책이리라는 구상 하에 멕시코, 엘살바도르,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등 9개국을 순방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는, 그러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등 4개국만 거치는 것으로 ‘현지수정’된다.



그래도 아시아에서 강호소리를 듣는 국가대표팀인데 가기만 하면 연습경기 상대를 쉽게 구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그래봐야 아마추어인 동양의 무명팀을 상대해 주려는 남미 프로구단은 거의 없었다. ‘대전료를 달라’는 저들의 요청도 우리에겐 생소했다. 게다가 ‘연습장 임대료’까지? 프로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정이 통하지 않는 비즈니스 무대’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없었으니, 곳곳에서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맥을 동원한 대한민국 외교관들의 활약으로 그나마 어렵게 성사된 경기가 모두 일곱 경기. 한국의 전적은 7전 1승 6패다.

1. 15. 아르헨티나 U-23팀에 1-3 패.(박수일)

1. 18. 아르헨티나 청소년 선발에 1-3패.(박수일)

1. 29. 브라질 노로에스테에 0-2패.

1. 31. 브라질 코메르시알에 2-3패. (박이천, 이회택)

2. 3. 브라질 페로비아리아에 1-3패.(김기효)

2. 10. 페루 페루 대표팀에 0-4패.

2. 15. 콜롬비아 청소년선발에 5-2승.(박이천2, 김기복, 이회택, 남대식)

아시아에선 천하무적이던 김호 김정남의 수비라인이 일곱경기 연속 골을 허용했다는 명백한 수준 차이. 동양 제일의 수문장 이세연의 생애최고 다실점 기록인 넉 점 허용. 코메르시알 전 직후 이회택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는 작은 위안. 페루와의 A매치는 페루 수도 리마의 국립경기장 만원관중 앞에서 격식을 갖춰 치른 ‘제대로 된’ 한 판 승부였다. 이 경기가 없었다면 태극전사의 71년 남미원정의 품격은 적어도 서 너 단계가 낮아졌을 터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5위팀과의 플레이오프를 염두에 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A매치도 페루는 유럽파를 모두 불러 모아 최정예 멤버로 팀을 꾸렸다지 않는가. 남미 원정의 효과 때문이었을까, 한국은 태국을 1-0(박이천), 말레이시아를 5-1(정강지2, 박이천, 김기복, 정규풍), 크메르를 2-0(이회택2)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 인도네시아를 3-0(정규풍2, 자책골)로 물리친 뒤 5월 13일 결승에서 버마와 0-0, 이틀 후 재경기도 0-0으로 비기며 공동우승이라는 전과를 올린다.

원고매수가 한참을 지났으니, 86년 5월 18일 LA에서 벌어졌던 페루 프로팀 알리 안시와 벌였던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 마지막 수능이자 8년 만에 이뤄진 차붐의 대표팀 복귀전 (2-0승. 차범근, 최순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펼쳐놓기로 하자. 88서울 올림픽 당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잠실체육관을 눈물바다로 만든 여자 배구 결승전, 박만복 감독이 이끈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의 분전과 은메달로 끝난 동화같은 이야기도.

8월 14일 오후 여덟시 수원 월드컵 경기장. 42년 만의 ‘아름다운 복수전’이 우리를 기다린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홍명보호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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