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1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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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히딩크를 감독으로 홍명보를 코치로

기사입력 2013.06.15 12:06 / 기사수정 2013.12.16 13:03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대한축구협회 이원재 국장을 만났다. 이 국장은 소생의 학교 선배다. 우리는 가끔 만나 밥을 먹는 사이다. 2002년부터다. 만나면 주야장창 축구 얘기만 한다. 어제도 그랬다.

최강희 감독께선 진짜 그만 두시나요. 응. 본선 안가시는 거죠? 안 가. 그럼 후임은 누구? 모르지. 누가 되든, 최대한 빨리 뽑아야지. 당장 7월에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도 있고.

삼 주 전, 조선일보 로비에서 최강희 감독을 뵌 적이 있다. 소생이 물었다. 본선도 하시지 그러세요? 봉동이장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여기 나보고 죽으라는 사람이 하나 더 있네.

최강희 감독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감독이다. 소생의 생각이다.

다시 이국장과 소생의 대화. 근데 장교수는 누가 후임으로 왔으면 좋겠어? 벌써 기사가 많이 나오던데요. 귀네슈, 파레야스, 김호곤, 홍명보, 어디선가 귀네슈 감독에 홍명보 수석코치가 최상의 조합이라는 얘기도 했고. 그건 아니지.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거든. 제가 보기엔 이런 뜻 같습니다. 홍감독은 한국 축구의 자산인데, 이번 월드컵에서 성적을 못내면 이미지에 금가는 것 아니냐, 그래서 외국인 감독을 보호막으로 삼자.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감독이 수석코치? 요즘 유행어로 ‘급’과 ‘격’이 맞질 않아. 홍감독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적임자가 한 분 있지. 어느 분? 히딩크. 히...딩...크...그래.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름.

히딩크는 지금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 FC 감독이다. 홍명보는 그 팀의 코치다. 시즌 중 ‘코치 연수생’을 흔쾌히 받은 건 유럽 축구 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서 너 달 전, 유럽 축구계에 떠돌았던 농담(?) 한 자락이 떠올랐다. 히딩크 감독이 그랬다는데? 언제가 되었든 명보가 한국 감독으로 뽑히면 자기가 그 밑에 코치로 들어가서라도 도와주겠다, 그랬더니 그 옆에 앉아있던 다른 코치들이 ‘홍감독, 그 때 나를 보조코치로 꼭 뽑아 줘, 잊지 말고’라며, 아예 홍명보를 2018년 대한민국 월드컵 팀 감독으로 발령(?)을 내더란 얘기.

근데, 히감독께서 오려고 할까요? 내 생각으론 OK. 히감독은 지금 은퇴를 생각하고 있어. 내 정보에 의하면, 최근 첼시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거든. 자기는 브라질 월드컵을 은퇴 무대로 생각한다는 거지. 오라는 대표팀은 있나요? 있지. 네덜란드. 네덜란드 협회장이 읍소를 했다는데? 제발 와달라고. 한계를 넘어선 팀 내 갈등을 다스릴 감독은 지구상에서 당신 하나라고. 히감독이 조국의 오퍼를 뿌리칠 수 있을까요? 장교수, 히감독은 우리나라를 사랑해.

2006년 월드컵. 대 일본 전 하루 전 날 기자회견. 호주 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나에게 제2의 조국이다. 내 조국의 라이벌 일본을 반드시 이기겠다. 대한민국이 당신의 조국? 그렇다. 나는 내 조국을 위해서라도 일본을 잡겠다. 그리고, 경기의 마지막 8분 동안 세 골을 몰아치며 3-1 승리로 약속을 지켰다. 2013년 6월, 3년 계약 연장을 제안한 안지구단에 ‘1년만 더 하겠다’고 수정제안하며,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때 내 제2의 조국을 위해 기여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 한국의 취약포지션, 젊은 중앙수비수를 스카우트해서 ‘사전준비’를 시키겠다는 구상.

장교수,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1+4가 어떨까 해. 브라질까지는 히감독이 맡고, 홍감독이 2018년 러시아까지 가는 거지. 홍감독, 이미 반 년 이상 러시아 리그도 경험했잖아. 우리도 이제 유럽식으로 장기계획을 세우고 가보면 어떨까, 그 말이야. 홍감독이 중책을 맡기엔 아직 어린 것 아닌가요? 1953년생 차범근 감독이 98년에 감독 할 땐 아무도 나이 얘기 안했지. 69년생 홍감독이 2014년 감독을 해도 나이는 문제가 안된다고 봐. 그렇군요. 하기야 지금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가있는 1964년생 클린스만도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독일감독으로 출전했으니까. 히감독이 러시아와 첼시 감독을 동시에 했잖아. 이 번에도 그 전례를 따르면 된다고 봐. 수석코치가 밑그림을 그리고, 감독은 마무리 터치를 하고.

1998년 네덜란드로 4강, 2002년 대한민국으로 4강, 2006년 호주로 16강. 세계 축구계는 히딩크가 월드컵에 중독되었다고 했다. 유로 2008에서 러시아를 4강에 올리며 히딩크 매직을 이어갔지만, 러시아, 터키의 월드컵 예선 통과 실패로 신화가 깨졌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와의 플레이오프 전 날 주전선수 여섯 명이 네 시까지 음주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협회 관계자가 히딩크에게 사과했고, 터키는 승부조작 스캔들이 대표팀까지 퍼져 어느 누가 가더라도 성적을 내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장교수, 한국 축구의 두 정점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거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리지 않아? 2002년 월드컵 4강과 2012년 올림픽 동메달의 만남. 홍보쟁이로서 내 감각을 말하자면 말야, 히딩크가 온다면, 그 날로 한국 축구는 막바로 세계적 관심사가 되는거야. 동아시아 경기대회도 아마 전 경기 매진일걸? 그래요, 선배님. 저도 가슴이 뛰네요. 맥아더 장군 생각이 납니다. 인천으로 입국하시고 나라를 구해주시고. 히감독이 맥아더 장군같아요. 유럽의 명감독들이 당신 인생에서 한국은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히감독이 그랬다는 거야. 내 조국이라고. 한국에선 내가 시키면 선수들이 고층빌딩 옥상에서라도 뛰어 내린다고, 이유같은 건 묻지도 않고서.(they do that without asking why) 한국에선 선수들이 그만큼 축구를 사랑하고 열정에 불탄다고. 세계 어디에 그런 나라가 또 있느냐고. 나는 한국과 한국 선수들과 한국 국민들을 사랑한다고.

논어에 나온다.

지자불혹(知者不惑)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거나 헷갈리지 않고,

인자불우(仁者不憂)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으며,

용자불구(勇者不懼) 용기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히딩크-홍명보 라인은 어쩌면 지(知) 인(仁) 용(勇)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환상의 조합은 아닐 것인가.

런던 올림픽 한국 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는 ‘왜 조국인 일본이 아니라 한국 대표팀을 택했느냐. 만약 다음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도 양측에서 제안을 받는다면 그때도 한국을 선택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홍명보 감독과의 의리 때문에 한국을 택했다. 홍감독은 수 백 년 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면, 역사에 남는 위대한 쇼군(將軍)이 되었을 사람이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의 다음 행보도 우리가 정하자.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홍명보감독이 이끌 일본 대표팀을 우리는 목놓아 응원하련다.

진짜 사나이들끼리의 진한 우정은 때론 조국애를 넘어서기도 한다. 제2의 조국은 히딩크를 기다린다. 히감독님 우리에게 와주세요, 이유같은 건 묻지도 마시고. (Guus, please come to us without asking why.) 나는 꿈꾼다. 히딩크의 가슴에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시청앞 광장에 다시 한 번 태극 물결을. 그의 은퇴식을 위해 오렌지 빛과 붉은색이 반반 섞인 경기복을. 그리고 우리의 벅찬 가슴엔 감사와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그리고 우리 다함께 어깨를 곁고 목터져라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이란의 고원을 넘어 저 머나 먼 브라질로 한국축구가 간다!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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