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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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미생'②] 장그래의 발표는 무언가 특별하다

기사입력 2014.12.20 05:51 / 기사수정 2014.12.20 05:51

김승현 기자
'미생' 임시완 ⓒ tvN
'미생' 임시완 ⓒ tvN


[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신입사원 임시완의 프리젠테이션에는 우리가 놓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지난 10월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 4회에서는 장그래(임시완 분)와 한석율(변요한)이 개인 PT를 펼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장그래는 '현장을 중시하는' 한석율을 설득하기 위해 오상식(이성민)의 실내화를 꺼내들었다.

장그래는 오상식이 신고 있는 깔끔한 구두와 굽이 닳은 실내화를 비교하며 사무직 직원들의 치열한 일상에 대해 설명했다. 장그래는 직접 오상식의 실내화 땀 냄새를 맡은 뒤 사무실도 현장이라며 사무 현장의 전투화를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석율은 사무실이 현장이라는 관념을 강하게 거부했다. 이에 장그래는 한석율이 기계가 돌아가는 곳만 현장이라고 여긴다면서 "사무직 직원들도 지옥철을 겪으며 출근하고, 초라함을 감수하면서 OK 전화 한 통을 받기 위해 해당국 업무시간까지 밤을 새워 대기하기도 합니다"라며 치열한 직장인의 삶을 묘사했다.

또 장그래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에 대해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중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제품은 없죠. 공장과 사무부는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우린 모두 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장은, 한석율 씨가 생각하는 현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장그래와 한석율의 발표를 지켜보던 심사단과 다른 인턴 사원들 역시 숙연한 분위기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장그래의 잔잔한 외침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이분법적인 질서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관 하에서 사무직을 우대하고, 현장에서 뛰거나 몸으로 노동하는 직종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아직도 사무직과 현장직 사이에서 급여 차이와 사회적인 인식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많이 개선됐지만, 나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장그래 피피티 주고 받는, 한 장면은 고정된 관념을 깨고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통쾌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무직의 고충을 알리면서 현장직의 가치도 높인 장그래의 발표는 '미생'에서 단연 빛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턴직을 거쳐 영업 3팀에 배정받은 장그래는 요르단 중고차 사업을 제안했고, 결국 오상식이 회사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오상식은 장그래의 지적을 받아들여 PT 발표 내용을 전면 수정했다. 오상식은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박과장(김희원)의 자금횡령을 언급하며 다양한 비리 사례를 언급했다.

거세게 반발하던 임원들은 PT 발표가 끝나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고, 이를 제안한 장그래에게 계기를 물었다. 장그래는 "우리 회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해 감동을 안겼고, 영업3팀은 회사 승인을 받아냈다.

임원들은 "우리 회사지, 남의 회사인가?", "뻔한 말인데 우리가 염치 없게 느껴진다" 라면서 초심을 회복한 모습으로 흐뭇해 했다. 소속감을 심어주면서 다시 한 번 애사심을 갖게 했다. 장그래의 짧은 PT 장면은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족, 기업, 회사, 국가 등의 조직에 속해 있다. 개인은 조직의 일원으로 소속되기 마련이다. 한 사회, 기업,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때 발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우리' 회사, '우리' 나라, '우리' 학교, '우리' 가족을 지칭하듯이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단지 뒤에 오는 말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 회사이기 때문이다'라는 대사가 감명 깊게 다가오는 것은, 호칭과 말이 따로 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절실하게 마음과 정이 통하면서 이끌어 가기보다는 겉과 속이 다르고 질시하고 배척하며, 같은 조직에서 불화를 빚는 경우를 흔히 경험하기 때문에 장그래의 그 말이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연대와 공감은 21세기 어느 때보다 화두로 떠올랐는데, 바로 그것을 곱씹게 만들어보는 짧지만 강렬한 멘트였다.

정윤정 작가는 "불안전하고 불행한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주는 연민을 타겟으로 대본을 썼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인물간의 연민이 바탕에 깔려 있다. '미생' 인기의 요인은 외로운 현대인들의 연민이 공유됐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장그래는 말 그대로 완벽한 정답은 모르지만 누군가 놓치고 있는 해답을 간파하고 있는 어설픈 신입사원이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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