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4-2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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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경기장을 가다③] 평양의 심장에서 '애국가' 불러본 적 있는가…4만 관중 레이저

기사입력 2024.03.23 15:55 / 기사수정 2024.03.23 15:55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연재하는 사이 북한이 결국 일본과의 김일성경기장 홈 맞대결을 불과 5일 남겨놓고 취소했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북한은 6월에 시리아와 미얀마, 일본 등 조별리그 C조 3개국과의 홈 경기를 제3국에서 한꺼번에 치르겠다고 요구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제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게 됐다.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남북대결은 2017년 4월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렸다. 평일 오후 4시에 시작된 경기임에도 2시간 전부터 김일성경기장에 사람들이 붐볐다. 금세 4만2000여명의 관중이 꽉 찼다. 홈 관중은 여대생부터 목소리 굵은 중년 남성들까지 다양했다. 국내 취재진이 같이 다니는 북한 요원들에게 "벌써 하교하고 퇴근한 건가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북한은 평양 만큼은 어느 정도 도시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고 사람들도 건장한데 이날 경기장에 들어선 관중도 한국의 A매치와 별다르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회색 옷을 차려 입고 금색 응원도구를 일사불란하게 흔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월드컵,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등을 두루 관전했던 기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응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호는 "단숨에~"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단숨에 누르자는 뜻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심장과 같은 김일성경기장 내 김부자 사진 앞에 태극기가 게양됐고 애국가가 울렸다. "대한민국의 국가가 연주되겠습니다"란 말이 끝나자마자 애국가가 나왔다. 기자 역시 힘차게 불렀다.



주변 관중은 물론이고 4만 관중이 전부 내게 레이저를 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뒤돌아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생 부른 노래 중 가장 감동적인 노래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앞서 여자대표팀이 대형 공연으로 유명한 15만 수용 규모의 5월1일 경기장에서 훈련하기도 했는데, 5월1일 경기장은 상당히 광활했다. 반면 김일성경기장은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다 가깝고 지붕이 관중석 전 방향에 있다보니 응원 소리가 굉장히 울렸고 원정팀 입장에선 부담을 줄 만했다.

이날 경기 직전엔 한국 미디어와 관련해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중계권을 사지 않고 평양을 간 터라 북한 관계자들이 방송용 카메라를 처음에 막아세운 것이다.

그러나 북한축구협회 실권자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을 맡아 국제축구계에서도 유명한 한은경 부회장이 "들여보내라"라는 한 마디에 문이 열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북한은 당시 세대교체를 하면서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들을 대거 배치했는데, 홈에서 경기하다보니 더욱 거칠게 한국의 '언니'들과 붙었다. 이에 한국 여자대표팀 선수들도 몸싸움과 신경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한 김일성경기장에서 4만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우리말을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벌였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은 경기 도중 페널티킥을 허용하기도 했는데 베테랑 김정미 골키퍼가 우리말로 "너 지난 번엔 여기로 찼지?"라고 말을 거는 등 북한 키커를 주눅들게 하고 결국 막아낸 장면 등을 보면서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존경하게 됐다.

후반 31분 장슬기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김일성경기장은 일순간 깊은 침묵에 빠졌다.

반면 한국 벤치의 선수단이 펄쩍펄쩍 뛰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기자도 취재석에서 보다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는데 곁에 있던 한국 정부 요원이 "여기 평양인데 너무 좋아해서 큰 일 나는 줄 알았다"며 웃기도 했다.

북한 관중들은 경기가 재개되자 "무조건 이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국은 결국 득실차에서 북한을 누르고 조 1위를 차지해 여자아시안컵 본선에 올랐다. 한국을 크게 누를 줄 알았던 북한 축구의 기세를 완전히 꺾은 쾌거였다.



김일성경기장은 선수 입장에서 보면 인조잔디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다. 일본 언론이 '지옥의 원정'이라는 표현까지 내걸었지만 당시 한국 여자대표팀처럼 기죽지 않고 싸우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다시 홈 경기를 재개, 한국인은 물론 다른 나라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경기장에서 '축구 보는 맛'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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