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2-12-0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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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들', 실미도 684부대가 겪은 국가폭력...마지막까지 비극 [종합]

기사입력 2021.05.30 23:20 / 기사수정 2021.05.30 22:52


[엑스포츠뉴스 유은영 기자] '선녀들'이 실미도 부대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30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 마스터-X'(이하 '선녀들')에서 선녀들은 실미도로 향했다. 실미도 부대는 684부대로, 1968년 4월에 창설되어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684부대의 목표는 김일성으로, 복수를 위해 탄생한 부대였다.

심용환은 "미국은 한반도의 전쟁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눈을 피해 중앙정보부를 활용했다. 당시 최고 권력 기관이었기 때문에 은밀히 군과 협조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지휘 아래 북한에 대한 보복 계획을 세우고, 북한 124부대와 유사한 특수부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선녀들은 실미도가 주둔하던 곳으로 향하기 위해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실미도 부대가 훈련했던 길로, 당시 실미도 부대가 생활하던 막사터도 있었다. 막사터는 기간병과 부대원들이 직접 돌, 시멘트로 쌓아 만들었다. 연병장 또한 수직으로 산을 끊어내 만들었다.

부대원들의 하루 일과는 혹독했다. 새벽 4시 30분 기상 후 6km 산악 구보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에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짧은 휴식 후에는 오후 훈련을 했다. 또 저녁에는 내무 교육 후 10시에 취침하는 등 이와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실미도 부대는 작전을 위해 백령도로 향했다. 하지만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회군했다. 심용환은 "국제적 요인, 국내적 요인 두 가지가 있다. 1969년 국제적으로는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고, 국내적으로는 중앙정보부 부장이 김형욱에서 김계원으로 교체됐다"며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유신 체제로 나아가고자 했다. 북한과 무력 충돌은 불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미도 부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1970년 8월이 되어도 진전이 없었고, 예산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아 상황 또한 점점 열악해졌다. 자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상부에 보고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실미도 부대는 그렇게 점점 고립되어 갔다.

3년이 지났을 때, 부대원들은 탈출을 계획했다. 부대원들의 전반적인 의견은 24시간 감시 중인 기간병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간병 18명이 죽었고, 이 과정에서 공작원 2명이 사망했다. 이후 부대원들은 어선을 빌려 인천항으로 탈출했다.

부대원들은 지나가는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를 향해 달렸다. 이 과정에서 공작원 3명이 죽었고, 새로운 여객 버스를 탈취해 다시 달아났다. 부대원들은 서울 대방동까지 이동했다. 이후 경찰에 포위됐고, 경찰의 무자비한 공격에 버스 기사가 도주했다. 

부대원들은 직접 운전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그때까지 생존한 인원은 8명이었다. 그들은 미리 약속했던 대로 자폭을 결심, 수류탄을 터트렸다. 이후 살아남은 사람은 4명이었다.

선녀들은 실미도 부대의 최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실미도 희생자는 가족의 품으로 모두 돌아가지 못했고, 살아남아 사형을 당했던 부대원들은 끝까지 억울함과 유감을 표했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MBC 방송화면

유은영 기자 y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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