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하늘은 왜 나를 낳고 안세영을 낳았는가.
'배드민턴 여자단식 세계 2위' 타이틀이 초라하다. 세계 2위 왕즈이를 보면 나관중의 고전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 장수 주유가 "왜 하늘은 나를 낳고 제갈량을 낳았는가"라고 외치며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세계 2위도 엄청난 성과지만 1위 안세영에 번번히 무너지고 은쟁반과 은메달만 손에 쥐는 게 왕즈이의 현실이다.
여자단식 세계 최강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시즌 첫 대회도 짜릿한 뒤집기 승리로 마무리하고 독주 체제를 이어갔다.
안세영은 11일(한국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악사이타 아레나에서 열린 왕즈이(중국·세계 2위)와의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말레이시아 오픈(슈퍼 1000) 여자 단식 결승에서 2-0(21-15 24-22)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두 게임 모두 왕즈이에 크게 뒤지다가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역전해 따낸 것이어서 안세영의 위력이 더욱 또렷하게 나타났다.
안세영은 이날 승리에 따라 왕즈이를 상대로 통산 21전 17승4패를 기록하고 압도적인 우위를 이어갔다. 지난해 1월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부터는 9전 전승이다. 9연승 속에 국제대회 여자단식 결승 8승이 들어 있다.
안세영은 말레이시아 오픈 우승으로 2026시즌 첫 대회이자 슈퍼 750 이상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 대회 여자단식에서 사상 네 번째 3연패를 일궈내는 역사도 썼다.
이날 결승은 안세영의 저력이 유감 없이 드러난 한판이었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왕즈이의 공격에 안세영의 반응이 조금 늦으면서 리드를 내줬다. 실수가 겹치며 1-6까지 벌어졌다.
안세영은 흐름을 되찾으며 추격을 시작했고 8-8 동점을 만들었다. 시소게임을 하면서 11-11 균형을 다시 맞춘 안세영은 역전에 성공한 뒤 달아났다. 순식간에 17-11로 앞섰다. 10-11부터 7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왕즈이를 요리했다.
침착한 수비로 왕즈이를 힘들게 한 안세영은 추격을 조금 허용했지만 21-15로 먼저 1게임을 챙겼다.
2게임 초반도 왕즈이의 흐름이 이어졌다. 안세영이 내리 3실점을 했지만, 왕즈이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고 헤어핀 싸움에서 이기며 추격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3-3 동점을 만든 안세영은 다시 상대에게 틈을 내줬지만, 7-7 동점을 만들었다. 왕즈이는 안세영의 빨라진 플레이 스타일에 버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스피드가 조금 떨어지면서 안세영은 흐름을 되찾지 못했다. 힘이 떨어진 안세영은 8-14까지 끌려가 위태로운 듯 보였다. 클리어에서 계속 실수가 나왔다.
하지만 안세영은 끝까지 따라 붙었다. 왕즈이를 계속 흔든 안세영은 상대를 19점으로 묶어두고 추격에 추격을 거듭해 19-19로 균형을 맞췄다.
20점 고지를 내줬지만, 안세영은 파상 공세로 듀스를 만들었다. 세 번의 듀스 이후 23-22로 역전한 안세영은 24-22로 결국 2게임 안에 승부를 마무리했다.
왕즈이는 경기 막판 안세영이 무방비 상태를 맞았음에도 회심의 스매시가 네트에 걸리는 등 멘털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였다.
안세영은 2025년에 이어 2026년에도 첫 대회를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앞서 안세영은 역사적인 2025시즌을 보내며 여자 단식을 넘어 배드민턴계 역대 최강임을 입증했다.
지난해 단일 시즌 최다승(11승)을 달성한 안세영은 승률 94.8%로 역대 최강의 배드민턴 선수 린단(중국), 리총웨이(말레이시아)를 넘어 역대 최고 승률을 자랑했다.
나아가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으로 안세영은 작년 통산 상금 100만3175달러(약 14억 6453만원)를 닰겅해 사상 첫 100만달러 상금을 탄 선수로 우뚝 솟았다.
올 시즌 출발을 알리는 말레이시아 오픈에서도 안세영의 독주는 이어졌다.
첫 고비였던 1회전에서 미셸 리(캐나다)와 1시간 15분에 달하는 피말리는 접전을 펼쳤던 안세영은 이후 수월하게 결승까지 진출했다.
안세영은 어려웠던 1회전을 마친 뒤 "올해 지지 않고 끝내는 것은 정말 어려움에도 내 궁극적인 목표다"라며 현지 취재진에게 가슴 속 야망을 펼쳐놓기도 했다.
16강에서 오쿠하라 노조미(일본)를 단 37분 만에 2-0(21-17 21-7)으로 제압한 안세영은 8강에서 리네 케어스펠트(덴마크)도 34분 만에 2-0(21-8 21-9)으로 꺾어버리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안세영은 10일 오전 자신의 커리어 내내 라이벌이었던 천위페이(중국)를 상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천위페이가 돌연 기권하면서 안세영은 경기를 치르지 않고 결승에 진출했다.
천위페이는 어깨 부상으로 기권패를 선택했다.
안세영은 빅매치가 무산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천위페이 선수, 부상 때문에 경기를 기권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어 너무 아쉽습니다"라며 위로했고, 이에 천위페이가 "고맙다. 어깨를 다쳤는데 곧 돌아오겠다"고 답례하며 둘의 우정이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시 코트로 돌아온 안세영은 기어코 왕즈이를 잡아내며 또 한 번 포효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