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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징크스와 부적에 대처하는 법

기사입력 2013.04.15 13:50 / 기사수정 2013.04.19 20:04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4월 14일 벌어진 K리그 클래식 슈퍼매치. 축구 외적인 물건이 화제를 모았다. 승리를 부른다는 윤성효 부적. 수원 감독 시절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누구도 부인 못하는 윤성효 감독의 업적이 있다. 7승1무1패라는 대 서울 전 슈퍼매치의 압도적 승률이다. 유일한 패전도 최용수 감독이 아니라 빙가다 감독에게 당한 것. 부적은 이른바 탁기를 물리치고 마음을 정화한다는 주술적 도구다. 비과학적 미신의 산물인 부적이 승리를 부른다고 믿는 스포츠맨은 없다. 부적은 빅게임의 재미를 더하는 한낱 소품일 뿐이다. 다만, ‘그렇게라도 해서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대해서는 많은 체육인들이 공감을 표한다. 왜? 스포츠가 갖는 속성 때문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를 활용한다. 문제는, 인간의 몸이 기계만큼 정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상대방 문전까지 공을 연결하는 건 실력이지만, 골대에 맞은 공이 안으로 꺾여 득점이 되느냐 밖으로 튕겨 도루묵이 되느냐는 실력 밖의 영역처럼 보인다. 80년대 초반이던가, 월드시리즈 7차전이 역전 주자가 나가있는 상황에서 2루수 직선타로 끝난 적이 있다. 다음날, 사진 정밀판독을 거쳐 ‘공이 배트에 0.6mm만 위쪽으로 맞았어도 우승반지의 임자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기사가 나왔다. 월드컵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골 논쟁’도, 축구화에 공이 맞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2∼3cm 차이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룰렛일터이다. 인간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그래서 스포츠맨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운에 가로 막히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속마음이 있기에, 월드컵에 출전하는 아프리카 팀들은 마법사와 주술사를 동반해서 선수들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유럽에서는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가 이 역할을 맡는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대 프랑스 경기, 잉글랜드 팬들은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의 고깃덩어리를 프랑스 골대 뒤로 투척하며 심리전을 펼쳤다. 출세한 뒤 만든 재현드라마에서, 비에리는 2부리그 약팀을 전전하던 시절 주술사의 충고에 따라 가죽공을 찢어 연습장의 한 가운데 파묻는 의식을 행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길 때 입었던 속옷은 질 때까지 갈아입지 않거나, 경기 당일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절대로 줍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설 땐 반드시 오른발부터 라인 안으로 들여놓으며, 새벽에 장의차를 보면 재수가 좋기에 등판 당일 일부러 장례식장 주변을 서성이는 징크스도 있다. 아예 징크스같은 건 믿지 않는다며 경기 전날 손톱 발톱 다 깎고 머리까지 다듬은 채 링에 오르는 유명우(柳明佑)를 두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징크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징크스와 불운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요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雍也-20)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요 경귀신이원지면 가위지의니라.
해석) 제자 번지가 안다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말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바에 힘쓰고, 귀신의 존재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실체를 알려고 애쓰지는 않는다면 인간사를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공자님께서도 징크스나 불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신다. 하지만,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실력을 갈고 닦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 하나다. 징크스와 운을 믿고 거기에 의지하는 것은 책임전가다. 노력은 하지 않고, 남에게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자리다. 게으른 욕심이며 거만한 마음가짐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바르고 굳세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징크스 때문에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행복은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공자님 말씀 바로 다음 대목.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문인 왈 인자선난이후획이면 가위인의니라.
해석) 번지가 어질다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말했다.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네가) 이렇게 한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季路問事鬼神하자 子曰 未能事人이면 焉能事鬼이겠는가 敢問死하겠습니다 曰 未知生인데 焉知死이겠는가(先進-11)
게로문사귀신하자 자왈 미능사인이면 언능사귀이겠는가 감문사하겠습니다 왈 미지생인데 언지사이겠는가
해석) 제자 계로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면 어찌 귀신을 능히 섬기겠는가?”
계로가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고 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삶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먼저, 가능한 것부터 최선을 다해보자. 내 몸과 방과 책상 위 모습은 내 머릿 속 상태를 알려주는 거울이다. 목욕과 청소만 열심히 해도 탁기는 사라진다. ‘사람의 일’은 거창한 데도 자리하지만, 사소한 곳에서도 얼마든지 실천이 가능하다.

그래도 마음 붙들어 맬 부적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분들을 위한, 고수로부터 들은 돈 안드는 처방 하나. 가족들을 불러놓고 ‘내가 고쳤으면 좋겠다’는 점들을 알려달라 청한다. 정리된 사항들을 종이에 적는다. 이걸 부적처럼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꺼내놓고 실천에 옮긴다. 엄지가 ‘겉으로 드러나있는,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이듯, 가족들은 내 눈에 보이는 ‘나’의 일부다. 가족들이 나에게 건네는 충고는 그래서 또 다른 ‘나’가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생활을 함께하며 얻어낸 심층 데이터다. 이것만큼 나에게 유용한 부적은 없을 터이다. 그 충고에 가슴이 먹먹하다면 그건 그 말이 그만큼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앞에서 얘기한 고수께서 ‘가족’과 관련해 날리신, 소생의 가슴이 뜨끔했던 멘트를 하나 더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칼럼을 마무리 하련다. “자식에게는 두 종류가 있나니, 하나는 빚 갚으러 나온 자식이요 하나는 빚 받으러 나온 자식이다. 그대는 과연 어느 쪽인가?”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슈퍼매치와 올드트라포드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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