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달려온 엑스포츠뉴스는 세상과 함께 성장하며 쉼 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창간 연도인 2007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모바일과 AI의 확산, 새로운 콘텐츠 환경, 그리고 독자들의 달라진 일상까지. 변화의 길 위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상상이나 해봤어?"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오승현 기자) 누가 상상했을까. 가상의 인물이 무대에 올라 팬덤을 만들고, 15초 영상이 세계적인 유행을 이끄는 세상을. 2007년의 상상 밖 풍경이, 2025년 현실이다.
■ AI, 세상을 바꾸다
챗GPT, 제미나이 등 다양한 AI 모델이 대중에게 보급, 본격적으로 구독 서비스와 유료 서비스까지 오픈된 세상이다. 소비자들은 단순한 문서 정리부터 프로그램 코딩, 심지어는 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으며 AI와 함께 하는 세상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AI의 무서운 성장 덕에 미디어의 제작부터 소비 방식까지도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상 편집은 수많은 인력이 며칠 밤을 새워야 완성되는 고뇌의 작업이었지만 이제는 AI가 컷 편집부터 자막까지 자동 완성한다. 작사·작곡도 키워드와 원하는 분위기만 입력해도 세상에 없던 노래를 단숨에 만들어낸다.
영화·드라마 현장에서는 성인 배우의 얼굴을 아역 배우에게 합성하는 기술을 적용시키고 있다. 이제는 닮은꼴 아역을 찾을 필요 없이, AI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재현하는 시대가 열렸다.
한 우유 광고에서는 박은빈의 성장을 4단계로 나눠 표현해 화제가 됐다. 이는 AI 딥러닝을 통한 딥페이크 기술 적용이 가능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손석구와 닮은 꼴로 화제가 된 아역배우 또한 AI 기술로 만든 딥페이크였다. 세트 제작이 들어가는 비용도 AI를 통해 절감하며 퀄리티와 비용 모두 놓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실존 인물이 아닌 AI 아이돌 그룹의 데뷔도 화제가 됐다. 실존 인물이 가상 아바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얼굴·목소리·안무 대부분이 AI 기술 기반이었던 메이브(MAVE:)가 그 대표주자로 주목을 받아 세상의 변화에 의미 있는 한 발자국을 남겼다.
AI 영화제도 열리고 있다. AI 기반 영화 제작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2021년부터 시작된 미국 'AI 국제영화제(AI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한국 감독인 서태규 감독의 AI 영화 데뷔작 '목소리'가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목소리'는 실제 네 명의 배우의 숨소리, 울림 등 미세한 감정 요소를 담아 AI에 적용한 방법을 쓰며 인간 연기와 기술의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아 앞으로의 AI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급속도로 인간과 친해진 AI는 각종 예능의 요소로도 쓰인다. 지난달 시작된 MBC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A-IDOL'에서는 AI 프로듀서 '로디아이(LODIA-I)'가 현역 아이돌 36명의 무대를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신개념 기술이 등장했다. 인간과는 다른 기준으로 진행된 평가 방식은 참가 아이돌뿐 아니라 팬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도 AI가 프로그램의 웃음 포인트로 활약했다.
이날 멤버들은 AI의 코스 추천에 따라 움직이는 하루를 보냈다. 식사를 마친 유재석은 "허경환, 나, 이이경, 하하, 주우재가 있는데 누가 음식값을 내면 좋을 것 같냐"고 물었고, AI는 질문을 변경해도 '유재석'이라고 답했다. AI는 계산을 피하고 싶어하는 유재석의 뉘앙스에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유재석을 '말발'로 이기며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됐다.
침착맨(이말년) 또한 AI를 이용한 다량의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다.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헤아리는 AI 기술의 발전을 실감케 하는 유튜브 콘텐츠로 MZ세대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배우 김지석 또한 자신의 대한 평가를 AI에게 묻는 콘텐츠를 하는가하면, 촬영 중임을 알리지 않았음에도 말투와 대화로 이를 알아챈 AI에게 놀라워하는 짤로 시선을 끌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엑스포츠뉴스에 "AI는 젊은 층 등 제작 수단이 없던 사람들이 누구나 창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구나 가진 창작 능력을 발휘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기회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 평론가는 이어 문화예술 영역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중문화는 신선하고 '힙'한 요소를 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AI는 기존의 자료,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패턴을 만들어내기에 상품성이나 탁월한 가치를 지니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김헌식 평론가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복제품이 많아질수록 진품에 대한 가치가 더 증가한다'는 말을 언급하며 "점점 원본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지게 된다. AI 창작물은 개성이 없다. 너무 매끄럽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대량 생산해내는 것 아닌가"라고 짚기도 했다. 결국 인공지능을 잘 다룬다고 해서 미디어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AI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일뿐, 결국 그 자체가 대중문화의 완성은 될 수 없다.
'기생충'에 이어 '미키17'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 또한 "AI가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가 뭔가 매일밤 고민한다"고 밝힌 바 있다. 봉 감독은 "이세돌이 알파고를 굴복시킨 수를 세페이지 걸러 한 번 씩 등장하는 시나리오 쓰리라 다짐한다. 어떻게 내가 AI를 요리할까 생각하며 매년 한 편씩 그런 대본을 쓰고 싶다"며 AI가 쏟아지는 세상에서도 인간이 가진 창작의 힘을 놓지 않겠다는 목표를 전했다.
더욱 발전할 AI 기술과 인간이 잃지 않을 창의력의 조화. 더욱 발전할 미래를 또 한 번 기대케 한다.
■ 알고리즘, 유행을 만들다
유행은 더 이상 방송국 편성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트렌드는 알고리즘이 만든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소비자가 자신이 볼 콘텐츠를 직접 선정하는 구조가 익숙했다.
컴퓨터 과학 용어였던 '알고리즘'은 다양한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2010년대부터 적용하기 시작하며 점차 대중에게 익숙해진 기술이다. 이 시기부터 페이스북은 소비자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비슷한 성격의 피드를 추천하기 시작했고, '구독 중심'이던 유튜브 또한 2012년부터 추천 알고리즘을 본격 도입해 검색하지 않은 영상이 소비자에게 뜨기 시작했다.
그후 많은 SNS 플랫폼은 팔로잉 계정이 올린 게시글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 팔로우가 아닌 계정의 게시글까지 '추천순'으로 띄우는 구조로 바뀌었다.
그 결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에서는 '알고리즘에 뜨면 뜬다'는 문화가 생겼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게시글에 '#추천에 떠라 #추천 띄워주세요 #알고리즘 떠라' 등의 해시태그를 다는 문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추천'에 뜨는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지게 됐고, 주목 받지 못했던 과거 영상, 예전 노래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박을 터뜨리는 등 '역주행'도 가능케 했다.
EXID의 '위아래' 역주행을 만든 하니 직캠부터 2PM 준호의 '우리집' 직캠 열풍은 활동을 종료한 노래를 다시 조명해 다양한 챌린지까지 이끌었다. 최근에는 군복을 입고 부른 '상병' 우즈(본명 조승연)의 'Drowning' 무대 영상 또한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입소문을 타 보다 많은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알고리즘의 선택이 그 어떤 시기보다 중요해진 가운데, 보다 짧은 콘텐츠를 빠르고 다양하게 접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반영해 '쇼츠', '릴스' 등 1분 내외의 짧은 세로형 동영상의 등장 또한 콘텐츠 소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콘텐츠 중 웃긴 장면을 편집해 올린 영상은 구독자 외의 소비자 피드에 흘러들어간다. 그렇게 이목을 끈 하나의 장면은 밈이 되고, 노래는 챌린지로 번진다. 결국 '유행'이 된다.
알고리즘은 편집자이면서 유행의 기획자 형태가 됐다. 대중은 콘텐츠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건네주는 콘텐츠 중에서 또 한 번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관심을 받지 못하던 예능 프로그램도, 무명 유튜버도 '알고리즘'의 선택, 1분짜리 영상으로 '빵' 터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세상이다.
이에 많은 크리에이터와 제작진이 트렌드에 맞는 제작을 목적으로 쇼츠용 편집을 하기도 하고 알고리즘으로 인기를 끈 인물을 프로그램에 섭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연애프로그램 리액션 영상과 월간데이트로 콘텐츠로 알고리즘을 장악, 유튜브 인기 동영상 순위를 휩쓴 찰스엔터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하고 배우 한가인의 유튜브에 출연하는 등 '대박 유행'의 예시가 됐다.
웹예능 '감별사' 제작진은 "짧은 순간에도 캐릭터가 드러나고, 글로벌 팬덤 확장이 가능한 아티스트를 우선적으로 섭외한다. 숏폼으로 잘라내도 매력이 살아나는 출연자가 핵심이다"라며 변화하는 소비 방식에 맞춘 제작을 위해 고민하는 지점을 밝혔다.
빠르게 도입된 알고리즘에 대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알고리즘을 이제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같다. 사생활 침해, 개인 권리 침해 등의 부정적인 점은 극복을 해야겠지만 알고리즘을 잘 활용하면 트렌드 분석, 자기 분석도 가능해진다. 자기 스스로를 자기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나"라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과거 패턴을 보면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콘텐츠와 작품 서비스를 찾았구나'를 알게 된다. 긍정적인 점으로 어떻게 알고리즘을 활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X세대는 유행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았다. 유행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보니 주로 유행은 상품 소비로 이어졌다. 트렌드를 빨리 파악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거기에 동참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한 그는 "Z세대를 긍정적으로 본다. Z세대는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며 메가트렌드(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거대한 흐름)가 아닌 소소한 트렌드를 나누는 데 더 관심이 많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평론가는 최근 히트를 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언급했다. 그는 "알고리즘과 AI는 K-POP을 이용한 콘텐츠가 대박이 날 것이라고 예측을 전혀 못했을 거다. 전례가 없으면 알고리즘이 나오지 않는다"며 "문화예술 영역은 과거를 가지고 이갸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의지와 비전,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인공지능에겐 없는 사람의 '의지'가 문화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 AI의 발전도, 알고리즘의 도입도 결국엔 인간과 문화가 함께 존재했기에 조화를 이루며 변화할 수 있는 흐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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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현 기자 ohsh1113@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