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16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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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천, 김치우 선수의 이야기...

기사입력 2005.11.03 05:42 / 기사수정 2005.11.03 05:42

남궁경상 기자
- 풍생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한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어려서 천식으로 한 2년 고생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원래는 몸도 많이 약했거든요. 축구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엄마가 반대를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몸도 약하고 하니까.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 대학휴학 후 인천으로 온 걸로 아는데 그 계기가 궁금하다. 

프로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좀더 높은 곳에서 높은 수준의 프로선수들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실제로 중앙대에서도 중간에 (프로로 빠져) 나간 선수가 없었거든요. 박이천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죠. 학교 동문회 때마다 오셔서 공도차고 하셨거든요. 축구부 감독님하고도 친분도 있으셨구요. 어느 날 감독님이 인천에 가겠냐고 물으셨을 때 '신생팀에 가기 싫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결국에는 (신생팀에) 가서 내가 더 주목을 받자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결정을 잘한 것 같아요.

- '치우'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이룰 '치'에 도울 '우'에요.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한테 이름 바꿔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썼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까 이름 특이한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김)치곤이 아시죠? 치곤이라는 이름이 더 특이하지 않나요? 치곤이랑은 같이 청소년대표로 뛰기도 했었는데 이름이 비슷해서 다들 형제인 줄 알았대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이 비슷하게 생기신거 같네요?) 서로 들으면 기분 나빠할 텐데...^^

- 청소년대표시절에 만난 박성화 감독과 현재 인천의 장외룡 감독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박성화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진짜 무섭게 대하세요. 다른 감독님들도 다 그렇겠지만 운동시간대에는 진짜 누구보다 엄하시죠. 장외룡 감독님은 인상도 풋풋하시고 선수들 만나면 농담도 한마디씩 던져주세요. 물론 장 감독님도 운동에 있어서는 엄격하십니다.



- 파르티잔에서의 임대생활에 대해 말해 달라. 여동원과 같이 생활했던 것으로 아는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여)동원이는 세르비아 2군 소속으로, 저는 파르티잔 소속으로 같이 생활하면서 둘이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데 틈만 나면 자고 하면서 한 5~6개월을 보낸 것 같아요. 가끔은 컴퓨터도 하지만 인터넷이 안돼서 기본적으로 깔린 카드놀이라고 있잖아요. 한 100번도 넘게 깨본 것 같아요.

- 파르티잔과 한국구단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나?

세르비아라는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이 50만원에도 못 미칠 정도로 못사는 나라래요. 그렇지만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그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축구선수에요. 한달에 몇 백씩 벌 정도로 돈도 잘 벌고 하니까요. 파르티잔은 역사가 깊은 만큼 경기장이 진짜 많이 낡았어요.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그렇다보니 챔피언스리그나 UEFA컵에 출전해서 다른 리그로 빠져나가려고 오는 선수가 대부분입니다. 그쪽 리그에는 팀이 한 18개 정도 있는데 파르티잔과 레드스타라는 팀이 거의 번갈아가면서 우승을 해요. 게다가 두 팀이 거리상으로도 걸어서 100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구요. 두 팀끼리 한번 경기가 벌어지면 싸움이 나는 건 예사예요. 경기장 의자가 다 부서지기도 하고. 그리고 나머지 팀들은 말로만 프로지 우리나라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수준을 섞어놓은 듯해요. 실력격차가 심해요. 그런 팀들과 붙으면 5골 차이 나는 건 기본이니까.

- 파르티잔에서 득점 기록은 있나?

절반 정도인 15~16게임을 뛰었는데 어시스트 4~5개 정도가 다예요. (여) 동원이도 골은 못 넣은 걸로 알고 있는데...



- 파르티잔에서 급여도 제대로 못 받고 생활했다는데...

첫 달은 받았는데 4~5개월은 못 받았어요. 세르비아 쪽에서는 숙소생활을 안하고 개인생활을 하거든요. 개인생활을 하면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하죠. 옷은 한국에서 가져간 걸로 몇 번 돌려 입으면 됐는데 먹고 사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하루에 햄버거 하나 먹고 지낸 적도 있고. 통역사 분을 통해서 밀린 급여 받게 해달라고 하소연을 해도 (파르티잔)구단 쪽에서 한 달만 기다리면 준다는 식으로 계속 미뤘고 결국에 못 받고 한국에 왔어요. 한번은 동원이 어머니가 한국에서 김치를 보내오셔서 한동안 김치랑 밥만 먹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질리더라구요. 한번은 김치가 너무 쉬어서 아무것도 안 넣고 한번 끊여봤더니 제법 김치찌개 맛이 나서 한 1주일 동안 그것만 먹은 것 같아요.

- 6개월간 해외에서 배운 게 있다면?

운동 외적으로는 인내를 배웠구요. 내 자신도 누구에게 지는 걸 진짜 싫어하는데 그쪽 나라 선수들도 볼을 빼앗기거나 지기 싫어하는 것이 진짜 강하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힘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악착같아요. 자체 훈련에서 볼 돌리기 같은 거 할 경우에도 동료들 뒷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정도거든요. 저는 그렇게 안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저 나름대로 악착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나라에서 더욱 악착같아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아요.

- 파르티잔에서의 임대생활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도 가끔은 생각이 날 것 같다.

지금도 그 나라 생각을 아예 안하는 건 아니에요. 세르비아에 있을 때 한국가면 어떤 어려움도 다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따뜻한 밥 먹고 또 풍족해지고 하니까 다시 나태해지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어려웠던 그곳에서의 생활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해요.

- 파르티잔으로 떠나기 전과 현재의 인천을 비교해 본다면?

1년 전 만해도 다른 팀을 이기기 정말 힘들었잖아요. 선수들끼리 잘한 것도 크겠지만 실제로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세르비아에 있을 때 인천이 터키 전지훈련을 와서 친선게임을 뛴 적이 있었어요. 사실 파르티잔 가기 전까지는 (인천에서)게임 뛰는 게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때 선수들이 즐기면서 한다는 걸 가장 먼저 느꼈어요. 그걸 보니 당장이라도 인천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더라구요. 그 이후에도 동원이랑 인천 경기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로 물어보곤 했는데 이겼다는 소식을 많이 들으니까 "또 이겼대 또 이겼대"하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 인천 복귀 후 첫 경기를 뛸 때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실패한 케이스로 복귀하는 거라는 생각에 인천 팬들에게 첫 경기를 보였을 때 실망스럽게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나라가서 뭐했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국 와서 축구협회 등록하기까지 한달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나름대로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몸을 만들었어요. 항상 매 경기마다 만족할 순 없지만 인천 복귀전은 팬들도 잘 봐주신 것 같고 좋았던 것 같아요. 하루빨리 한국으로 와서 정말 뛰고 싶었으니까요.



- 숙소에서 친하게 지내는 선수가 있나?

특별히 누구와 친하다고 말할 수 없이 다 친해요. 참! (박)종찬이 형이요. 이름 꼭 넣어주세요. 지난 번에 매치데이 매거진에 이름 나오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자기 이름만 빠졌다고 서운해 하더라구요.^^

- 포지션이 전재호와 같은데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재호형이 신체조건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세요. 저는 재호형이 잘하는 걸 보면서 아직은 배우는 단계이구요. 재호형이 몸이 아프거나 제가 선발로 나올 때는 팀이 이상해졌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더욱 노력합니다. 오히려 내가 형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계속 배울 수만은 없잖아요. 아직은 형보다 부족한 게 많으니까 형이 선발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당연한거구요.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최종엔트리 탈락으로 실망감이 컸을 텐데...

상암에서 열린 이란전까지 갔었어요. 그때 베스트로 뛰었는데 마지막 최종엔트리에서 떨어진거죠. 솔직히 올림픽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 일본이랑 붙고 나서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는데 김호곤 감독님으로부터 한국오자마자 합류하라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무척 욕심이 났었어요. 몸 상태도 안 좋고 해서 못 가겠다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있는데 수원이랑 안양에서 선수 안 보내준다고 한참 난리치는 바람에 해외전지훈련까지 따라갔었습니다. 인천에서는 태욱이형이랑 같이 갔었는데 최종에서 형은 되고 저는 떨어져서 구단에 다시 돌아오려니 괜히 멋쩍더라구요. 그렇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오히려 더 자극이 된 것 같아요. 최종엔트리 떨어지고 복귀한 날 프로 데뷔골을 넣었거든요. 전북이랑 할 때 요한이가 예비엔트리였는데 경기 끝나고 “니가 골넣었냐”고 전화로 묻기에 내가 "대표팀 떨어져서 홧김에 골 넣었다"고 말했어요.

- 상대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선수가 있다면?

아직은 어렵다거나 힘든 선수는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가.^^ 하루 전에 명단 보면 누구를 마크할지 나오잖아요. 요즘에 보면 한번씩 볼을 차봤거나 한번씩 만나봤던 사람이기 때문에 지고나면 돌파를 하나 당해도 자존심이 굉장히 상해요.

- 굉장히 많이 뛰어야 하는 포지션이라 풀타임 출전 시 후반에는 다소 체력이 딸릴 것 같은데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

오히려 저는 전반보다 후반에 뛰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호흡이 터져서 그렇다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지난 대구전에서 풀타임을 뛰기 전에는 아주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뛰어보니 편했어요. 전반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후반에는 시간이 왜 이렇게 짧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특별히 챙겨먹는 보양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집에서 할머니가 장어 같은 거 해주시는데 제가 잘 안 챙겨먹죠. 할머니께는 죄송하지만요. 



- 인천유나이티드의 장점은?

조직력이죠. 11대 10으로 한자리가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도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정도로 선수들 간의 믿음과 신뢰가 두텁다는 것도 장점이구요. 장외룡 감독님이 혼자 하는 축구가 아닌 다 함께 하는 축구를 강조하시기 때문에 훈련도 그렇게 맞춰서 하고 있습니다.

- 세르비아가 고향인 라돈치치와의 의사소통은 어떤가?

그 나라의 말과 기본적인 안부인사 정도는 해요. 라돈(치치)이 워낙에 한국말을 잘해서 특별히 대화하는데 지장은 없어요. 라돈(치치)이 이상한 한국 욕 배워와서.. 아무튼 고집불통이에요. 한번은 학철이 형이 나이가 많은데 형한테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무튼 시끄러운 친구에요. 너무도 오바도 심하고 하루 종일 떠들고 다니니까 형들도 별로 안 좋아했었죠. 완전 독불장군 스타일이었는데 장 감독님의 만나고 나서 이제는 팀의 규칙을 잘 따라 주더라구요. 라돈 많이 사람 됐어요. ^^

- 팬 관리는 어떻게 하나?

다음에 카페도 있고 팬 클럽이 있었는데 요한이 또래가 나오고부터는 나이 먹은 청소년대표는 한물 갔더라구요. 지금도 카페가 있긴 한데 특별히 팬들 챙겨주는 것을 잘 몰라요. 미니홈피도 한동안 하다가 요즘 닫아놨어요. 미니홈피 계속하려면 돈 들잖아요.^^ 전에는 팬들이 도토리 선물도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은 뭐 거의 없거든요. 오죽하면 방제목이 '도토리가 부족해'겠어요. 여러분 도토리 좀 많이 선물해주세요! 

<이 인터뷰는 인천UTD 기자단에서 정진옥 기자와 남궁경상 기자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남궁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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