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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s 인터뷰] "아이 키우다 '내면의 아이' 만났죠"...홍연식 작가, 매일 밥하는 육아빠

기사입력 2017.08.13 12:27 / 기사수정 2017.08.13 14:17

황성운 기자

[엑스포츠뉴스 신진아 작가, 정리 황성운 기자]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 직접 재배한 채소를 송송 썰어 조리한 달걀말이로 아침상을 차리는 남자. 여기 매일 밥하는 남자가 있다. 직업은 만화가인데, 그의 자전적 만화 '마당 씨의 식탁'(2015)이나 '마당 씨의 좋은 시절'(2017)을 읽노라면, 전업 '육아빠'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는 바로 가족 만화를 그리는 '핸드메이드 작가' 홍연식(46)이다. 

핸드메이드라고 수식한 이유는 그의 작업 방식 때문이다. 웹툰이 대세인 요즘 출판 만화를 고집하는 홍 작가는 여전히 책으로 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만화를 그리고자 한다. 그는 몇 년 전까지도 시쳇말로 '구시대 유물'처럼 종이에 펜으로 작업하다가 마침내 디지털 펜으로 바꿨다. 그 디지털 펜으로 나무가 우거진 구불구불한 시골길부터 방안을 떠도는 티끌까지 전부 손으로 그린다. 말풍선 속의 대사나 지문도 직접 다 쓴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그 선들에게서 손 느낌이 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수작업해 완성한 만화는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하고 우리네 밥상처럼 소박하다. 방송인 백종원의 빠르고 간편한 집밥보다는 탤런트 최불암이 낡은 가방을 메고 찾아다니는 '한국인의 밥상'에 가깝다.  

▲ "집밥은 가족의 피와 살"

2012년 '불편하고 행복하게'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홍연식 작가가 총 3부작으로 기획한 '마당 씨의 식탁' 후속편인 '마당 씨의 좋은 시절'을 최근 내놓았다.

1부 '마당 씨의 식탁'과 2부 '마당 씨의 좋은 시절'은 소박하고 평범한 인물들이 고양이 캐릭터로 형상화된 판타지 만화로 철부지 아들이자 부족한 남편, 그리고 아버지인 한 30대(이후 40대) 가장의 고군분투기를 담고 있다. 가난이 대물림된 ‘마당’ 씨는 아내와 함께 치솟는 서울 집값을 피해 경기도에 살림을 차리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가정을 꾸리려 애쓴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 이면을 들여다보면 삶은 전쟁이다. 

창작 만화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만화가로서의 도전, 병든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식의 도리와 어릴 적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사이에서의 갈등, 늙고 병든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부모 세대와 결별해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은 가장으로서의 욕심 그리고 어린 아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와 직면하고 고민하는 아버지의 번뇌가 이 시리즈 전반에 녹아 있다. 

동시에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늘 풍성한 밥상을 차려줬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의 삶을 지금껏 건강하게 지탱해준 원동력으로 그는 매일 아들과 아내를 위해 온갖 정성을 들여 밥상을 차린다. 때로는 만화 창작보다 가족을 위한 밥상 차리기가 더 우선순위에 있다고 느껴질 정도. 건강한 먹거리에도 늘 촉각을 세우면서 자연주의 육아를 지향한 홍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Q. 작가에게 집밥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게 (누가 요리하건)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 밥이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근 미래 알약 하나로 섭취할 수 있는 영양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머니가 차려준 어릴 적 밥상이 자주 기억난다. 그러면서 내가 먹인 밥으로 튼튼해진 두 아들의 몸을 확인하면 너무 뿌듯하다. 

Q. 밥 짓는 행위가 자식에 대한 사랑, 엄마에 대한 추모로 느껴졌다.

돌아가신 엄마의 집밥은 제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엄마가 없는 지금은 그리움과 동의어다. (만화가인) 아내도 작업을 해야 해서 육아는 분담하고 요리는 내가 전담하는데, 가능하면 좋은 식재료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이려 한다. 어묵도 생선살 발라서 채소 넣고 직접 만들어줬다. 근데 둘째 아들이 태어난 뒤로 정말 힘들더라. 어떤 날은 삼시세끼 만들고 나면 녹초가 됐다. 작업할 여력이 안남을 정도였다.

Q.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드러난다. 

맞다. 내 강박일 수 있다. 그 때문에 큰 아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혼을 내서라도 몸에 좋다는 것만 줬다. 그러다가 그게 얼마나 아이에게 스트레스였는지 알게 됐다. 자기만족이었다. 결국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함께 즐겁게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온가족이 함께 밥 먹을 시간마저 없는데 많은 것을 잃은 느낌이다.

Q. 한적한 시골에 사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나 그 일상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 가장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마당 씨의 식탁’은 어머니, ‘마당 씨의 좋은 시절’은 부부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나 결국 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내 시행착오의 나열이다. 철부지 아들, 못난 남편, 부족한 아버지다. 제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좋은 롤 모델이 아니었다. 내가 어릴 적 그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고 엄마는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큰 아들인 제게 풀기도 했다. 독자들이 나의 함량미달 모습을 보면서 자기객관화를 해보길 바란다. 

Q. ‘불편하게 행복하게’ 이후 자전적 만화만 그리고 있다.

‘불편하게 행복하게’는 원래 자비 출판할 계획이었다. 내 자식들에게 엄마아빠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작했다. 당시 나는 오랫동안 밥벌이용 외주만화만 해 너무 지쳐있었다. 내가 그린 캐릭터를 펜으로 찌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내 이야기로 창작을 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마당 씨’ 시리즈는 못난 가장의 분투기면서 치유기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작품이다. 

Q. 자전적 이야기를 하면서 경계하는 부분이 있다면?

나만의 이야기가 되면 독자들의 공감을 살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 이야기로 만들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기록을 중시한다. 내가 찍은 사진과 다이어리, 메모 그리고 아내가 쓴 가계부 등 모든 기록을 교차로 확인한 뒤 거기서 만화로 쓸 에피소드를 추린다. 주제에 따라 극대화하거나 축소할 것 등을 정하고 만화적 재미를 위해 판타지를 활용한다. 아마도 물리적 시간이 나를 객관화시켜주는 면이 있을 것이다. 내 모든 만화는 4-5년 전 내가 겪은 일상이다. 매일 매일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그때그때 감정이 드러날 거 같다. 

Q. ‘마당 씨의 식탁’은 마당 씨 엄마의 이야기가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완성되면서 특히 세상의 모든 불효자를 꺼이꺼이 울게 만든다.  

아무리 유복하게 자란 사람도 결핍이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마당 씨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자신의 결핍을 떠올리며 조금씩 나아가길 바란다. (참고로 ‘불편하게 행복하게’와 ‘마당 씨의 식탁’은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출판됐다)

홍연식 작가는 인터뷰 당시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마당 씨의 앨범’(가제)을 한창 구상 중이었다. ‘앨범, 아버지의 부활, 트라우마…’ 등 수첩에는 3편의 키워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들 이완이는 아빠의 작품을 읽고 질문을 던질 정도로 컸다. 

“3편에서 가장 조심스런 부분이 아들의 반응이다. 2편에 마당 씨가 아들과 잘 놀아주면서도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큰 아들이 이 부분을 읽고 상처받아서 아내가 ‘그때 아빠가 사과하고 안아줬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3편에서 ‘나를 때리지 말라’는 아들의 선언에 마당 씨가 죄책감과 어릴 적 트라우마로 펑펑 우는 장면이 있다. 결론적으로 극적으로 해소돼 마당 씨 스스로 단단해지는 면이 있는데, 만화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어느 정도 수위로 드러낼지 고민 중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육아란 몸은 다 큰 어른이 자신도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기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다. 상처받고 치유 받지 못한 아이 말이다.  

제목으로 앨범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 세대는 앨범의 넘긴 페이지고, 앞으로 내가 꾸려가는 앨범의 페이지에는 나의 불안한 내면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봤다.”  

우연히 중세시대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명언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음으로써 충실한 사람이 된다.” 자전적 이야기를 보편적 이야기로 승화시킨 ‘마당 씨’ 시리즈와 참 잘 어울리는 명언이 아닌가 싶다. 

jabongdo@xportsnews.com / 사진=우리나비, 임영근 제공

황성운 기자 jabongd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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