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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12 Memories①] 그때 그 스트라이커 지금은?

기사입력 2012.06.15 17:38 / 기사수정 2012.06.15 18:56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16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잉글랜드 스웨덴전을 앞둔 유로2012 조별예선이 중반부를 넘어가며 8강 진출팀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축구 강국들이 주목 받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안드리 셰브첸코가 큰 관심을 얻고 있다. 그는 D조예선 첫 경기 스웨덴전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첫 유로 승리를 이끌었다.

팬들은 35살의 나이에 헌신하는 셰브첸코를 바라보며 회상에 빠지는 시간도 가졌을 법 하다. 바로 셰브첸코의 전성기에 이른바 ‘잘 나가던' 선수들을 추억하면서. 셰브첸코는 2000년대 초중반을 휘어잡은 스트라이커로 당시 루드 반 니스텔루이, 호나우도, 티에리 앙리 등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유로2012에서 셰브첸코 말고도 오랜 기간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덴마크 대표팀의 데니스 롬메달이다. 전성기 땐 마크 오베르마스와 경쟁을 벌일 정도로 총알 탄 사나이었다. 이밖에 마크 판 보멀, 올로프 멜베리 등 10년 넘게 축구팬들에게 익숙해진 이름들이 유로2012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최전성기로 활약하던 시절 해외축구는 세리에A, 프리메라리가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는 TV중계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인터넷 스트리밍 혹은 위성방송으로 어렵사리 볼 수 있었다. 지금 '유로 형님'들의 동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수비수 등 포지션별로 알아 봤다.

- 로이 마카이/1975년생/네덜란드/프로통산 526경기 256골/A매치 43경기 6골

마카이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골 임팩트가 강한 선수였다. 플레이 스타일은 연계 플레이, 타깃, 포스트플레이 모두 가능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비테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마카이는 스페인 테네리페,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바이에른 뮌헨, 폐예노르트를 거쳐 은퇴했다.

특히 마카이는 데포르티보 시절 디에고 트리스탄과 투톱을 이루며 미드필더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의 지원사격으로 2003년에는 득점왕에 올랐다. 뮌헨 시절 유럽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경기 시작 10.2초 만에 벼락골을 넣어 역대 챔피언스리그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화려했던 프로생활과 달리 대표팀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90년대 후반 마카이가 대표팀 데뷔 당시 네덜란드는 데니스 베르캄프와 빔 용크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2000년대는 클루이베르트, 반 니스텔루이 등 걸출한 공격수의 등장으로 그나마 교체로 출전해야 했다. 월드컵 출전기록은 없으며 유로2000, 2004와 베이징올림픽 와일드카드 출전이 전부다.

유럽 축구 팬들은 월드컵에 출전할 전력이 안 되는 나라에 태어나는 것도 불운이지만 스쿼드 경쟁이 치열한 나라에 태어난 것도 불운이라며 마카이를 예로 꼽았다. 현재 마카이는 페예노르트 유소년팀의 코치로 재직 중이며, 네덜란드 축구협회 지도자 라이센스 취득을 목표로 꿈을 키우는 중이다.

- 크리스티안 비에리/1973년생/이탈리아/프로통산 374경기 194골/A매치 49경기 23골

국내 팬들에겐 2002월드컵 16강전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비에리는 1991년 토리노에서 데뷔했다. 이후 13번의 이적을 거치며 2008-2009 시즌 아탈란타에서 은퇴했다. 전성기는 인테르 밀란 소속으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였다. 저돌적임 움직임과 상대 수비를 쓸어 담는 몸싸움으로 많은 골을 성공시켰다.

2002-2003 시즌은 23경기 24골로 한경기 평균 득점이 한 골이 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였다. A매치서는 '월드컵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1998년과 2002년 월드컵까지 총 9경기에 나서 9골을 터뜨렸다. 185cm 82kg의 단단한 몸을 갖춘 비에리는 세트피스 상황과 볼 경합 과정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유로 2004 출전 이후 기량이 떨어졌으며 2007-2008 시즌 피오렌티나서 주전으로 뛴 것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부상 혹은 벤치에서 보냈다. 세리에 '7공주(AC밀란,인테르,AS로마,피오렌티나,파르마,유벤투스)' 중 4팀에서 뛴 이력이 있다. 은퇴 후 비에리는 예능, 축구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페르난도 모리엔테스/1976년생/스페인/프로통산 417경기 143골/A매치 47경기 27골

스페인이 지금처럼 세계를 호령하지 못하던 2000년대 초반, 모리엔테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대표팀서 라울 곤살레스와 호흡을 맞추며 분투했다. 레알 유스 출신으로 1993년 데뷔한 모리엔테스는 알바세테, 레알 사라고사를 거쳐 레알에 정착했다. 입단 초기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프레드라그 마야토비치와 1998 월드컵 득점왕 다보 수케르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으며, 타깃 스트라이커로 진가를 인정 받았다.

챔피언스리그 3회, 도요다컵(현 클럽월드컵) 2회, 프리메라리가 2회, 코파델레이 3회 우승을 모두 레알 시절 달성했다. 이후 갈락티코 정책에 의해 AS모나코에서 이적해야 했다. 모나코에선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따내며 ‘임대 성공기’를 만들었다. 현지 축구팬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헨릭 라르손과 함께 임대 성공 사례로 손꼽고 있다.

이후 리버풀에선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발렌시아로 이적한 모리엔테스는 2006-2007시즌 대표팀에 다시 선발 됐다. 하지만 부상과 스페인 황금세대의 등장이 시작되며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2010년 마르세유에서 은퇴한 모리엔테스는 현재 스페인 2부리그 우라칸CF의 유소년 코치로 재직 중에 있다.

- 헨릭 라르손/1971년생/스웨덴/프로통산 472경기 299골/A매치 106경기 37골

스웨덴 사람들은 세 개의 보물이 있다고 자부한다. 전 세계적 인기를 모았던 전설의 가수 아바(ABBA)와 유명 자동차 그룹 볼보(Volvo) 그리고 축구선수 헨릭 라르손이다. 현 유럽 최고 공격수로 분류받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존경하는 선수이기도 한 라르손은 1988년 프로 데뷔 후 2009년까지 철저한 자기관리로 기량 유지를 하며 20년 가까이 현역 생활을 이었다. 전방위적 움직임으로 골을 만드는 그는 발, 머리를 가리지 않는 슈팅으로 많은 골을 기록했다.

폐예노르트 시절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윙포워드를 겸하던 그는 1997년 셀틱 이적 후 최전방 공격수로 진가를 발휘했다. 2004년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까지 221경기 174골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에선 호나우지뉴, 루도비치 지울리 등과 함께 레이카르트 전성기를 이끌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결정적인 순간 활약한 라르손을 기억하고 있다. 서브 멤버로 40경기 13골을 올렸지만 당시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프리메라리가 우승시 고비마다 도움과 득점을 올렸다.

짧은 시간 바르셀로나에 머물렀지만 누캄프 축구 박물관에 그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후 자국리그 헬싱보리에서 뛰었고 비시즌 맨유에서 임대 생활을 하며 맨유 팬들에게도 큰 폭의 사랑을 받고 있다. 라르손은 프로 통산 299골로 끝났지만 2000년대 초반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이 없었으면 300골을 넘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A매치에선 1994 월드컵 4강 2002, 2006월드컵 16강을 이끌었고, 유로는 2000, 2004, 2008에 참가했다. 2009년 은퇴 후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코치 교육을 받고 자국리그의 여러팀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다. 현재는 스웨덴 2부리그 란스크로나의 사령탑이다. 

- 그 외 추억의 스트라이커들 근황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선수들은 더 있다. 유럽축구의 인기를 이끈 주인공들은 대개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는 아약스 소속으로 현재 코치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하셀바잉크는 스포츠 해설자로 활약 중이다.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지오는 국제 구호 단체 활동으로 민간 외교관이 됐다. 그의 후배 빈센초 몬텔라는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프랑스의 다비 트레제게, 앙리는 각각 아르헨티나와 미국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의 올리버 비어호프는 독일 대표팀 코치로 유로2012 참가 중이며, 위르겐 클린스만은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 중이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수케르는 축구학교 설립, 미야토비치는 러시아 프로축구 안지의 총괄 책임자로 있다. 유럽축구를 호령하던 스트라이커들은 국내 축구 팬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이들은 축구 역사의 뒤안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추억 속에 남아 있다.

[사진=셰브첸코 ⓒ Gettyimages/멀티비츠]



서영원 기자 schneider19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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