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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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참을 수 없는 소트니코바의 가벼움

기사입력 2014.02.24 11:36 / 기사수정 2014.02.24 11:46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개최국인 러시아는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그리고 동메달 9개를 쓸어 담으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가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이후 20년 만이다.

당초 이번 올림픽은 '스키 강국'인 노르웨이가 1위에 오르고 썰매와 기타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가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러시아가 금메달 9개를 획득해 4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는 단 한 대의 금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국에서 개최된 소치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3개를 거머쥐며 종합 1위에 올랐다.

러시아의 막판 금메달 휩쓸기에는 피겨 스케이팅 여자싱글도 포함됐다. '피겨 강국'인 러시아는 유독 여자싱글에서만은 약세를 보였다.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여자싱글 선수로 평가받은 이리나 슬루츠카야(35, 러시아)도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은메달 2006 토리노올림픽 동메달에 그쳤다.

무엇보다 소치올림픽 여자싱글은 '절대 강자'인 김연아(24)가 출전했다. 그가 최상의 연기를 펼친다면 올림픽 2연패는 기정사실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약속대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2번이나 클린에 성공했다.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연아는 시상대 높은 곳에 서지 못했다. 러시아는 메달 후보로 평가받던 그들의 에이스인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러시아)가 부진하자 다른 카드를 내세웠다. 러시아가 차려놓은 밥상을 제대로 먹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가 그 주인공이었다.



멈추지 않은 '소트니코바 자격 논란'

소트니코바가 일으킨 여진은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가라앉지 않는다. 소트니코바는 21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벌어진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49.95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 점수인 74.64점과 합산한 최종합계 224.59점을 받았다. 219.11점을 기록한 김연아를 제친 순간이었다.

소트니코바의 경력을 보면 한 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11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그는 이듬해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그해 B급대회인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ISU가 공인하는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유럽선수들에게 점수가 후하다는 유럽선수권에서도 올해 2위에 그쳤다. 그동안 소트니코바가 기록한 성적을 보면 도저히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을 수 없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김연아를 이기고 정상에 우뚝 섰다. 역대 피겨 사상 최고의 이변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사라 휴즈(29, 미국)가 미셸 콴(34, 미국)과 슬루츠카야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사건이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획득은 '휴즈의 반란'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당시 휴즈는 실수를 연발한 콴과 슬루츠카야 때문에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소트니코바는 완벽하게 연기를 펼친 김연아를 제쳤다.

소트니코바와 러시아 연맹 측은 금메달 획득이 정당했음을 거듭 주장했다. 그들이 줄기차게 강조한 것은 소트니코바의 기술 기초점수가 김연아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소트니코바는 트리플 점프를 7번 구사했지만 김연아는 6번 시도했다. 두 선수 모두 똑같이 완벽하게 연기를 펼칠 경우 트리플 점프를 한 번 더 시도한 소트니코바가 앞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발언은 지극히 신채점제가 아닌 구채점제에 기준을 둔 발언이다. 신채점제는 기술 항목을 하나씩 나눠서 점수를 매긴다. 단순하게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를 나눠서 채점하던 구채점보다 훨씬 세세히 진행된다. 논란은 가산점(GOE)에 있다. 소트니코바는 프리스케이팅 기술요소 12가지 항목 중 무려 11개 요소에서 1점이 넘는 가산점을 챙겼다. 점수가 후했다던 유럽선수권에서 소트니코바는 5개 항목에서만 가산점이 1점을 넘겼다.

이 기록을 토대로 보면 소트니코바는 불과 한 달(유럽선수권은 지난달 중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 만에 교과서 점프를 뛰는 '정석 점퍼'가 됐다는 얘기다. 예술점수(PCS)도 70점 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특정 대회에서 예술점수가 15점 가까이 오르는 기현상은 신채점제 도입 후 처음 생긴 일이다.



* 2011년 강원도 강릉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이 확정 된 뒤 손을 흔드는 소트니코바

'논란의 주인공'이란 오명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올림픽 심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야구의 베이브 루스(이상 미국) 축구의 펠레 등 '스포츠 전설'의 공통점은 선수와 전문가들이 인정했다는 점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전설들과 동료 스케이터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스케이터는 김연아다. 러시아 피겨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알렉세이 야구딘(34, 러시아,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은 2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연아는 단연코 최고의 스케이터다. 그녀가 소치올림픽에 출전한다는 말을 들었다. 올림픽 2연패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아의 2연패를 누구보다 기원했던 이는 카타리나 비트(49, 독일)다. 1984년 사라예보올림픽과 1988년 캘거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이번 결과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 결과를 확인한 비트는 "소트니코바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다. 코스트너와 김연아의 연기는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나는 올림픽 2연패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며 비판했다.

기자가 소트니코바를 처음 본 것은 2011년 3월 강릉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그는 174.96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소트니코바를 위협한 이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17, 러시아)였다. 점프의 정확성은 툭타미셰바가 나아보였다. 소트니코바는 성공률은 높았지만 여러모로 점프에 문제가 많았다. 3년이 흐른 현재 많이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소트니코바의 점프는 결코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러시아 유망주 중 그나마 점프가 괜찮았던 툭타미셰바는 소치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체형변화와 부상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며 올 시즌 부진했기 때문이다. 반면 높이가 낮은 대신 성공률이 높고 거친 점프를 뛰었던 소트니코바는 홈어드밴티지의 축복을 받았다.

애초 여자싱글의 판도는 '넘어지지 않는 러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여자 싱글의 테크니컬 패널의 컨트롤러가 러시아의 알렉산더 라케르니크였다. 컨트롤러는 선수들의 기술를 판정하는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소트니코바는 경기를 마친 뒤 채점을 매긴 9명의 저지 중 한 명과 포옹을 했다. 소트니코바를 안았던 이는 알라 셰코브세바였다. 그는 러시아 피겨협회의 부인이다.

경기를 마친 선수가 우승이 확정된 뒤 심판과 포옹을 하는 일은 어느 스포츠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이들이 친분이 있는 사이라해도 경기 후 곧바로 이런 일은 행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소트니코바와 소치올림픽 피겨 심판진은 피겨의 관행을 무시했다. 더 나아가 피겨 스케이팅이란 종목의 윤리에 큰 흠집을 남겼다.



* 2011년 강원도 강릉 주니어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들 왼쪽부터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 이상 러시아, 아그네스 자와즈키-미국) 

3년 전 강릉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생글생글 웃던 소녀는 '인정받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소토니코바가 기록한 224.59점은 ISU 공인 점수로 남는다. 김연아가 세운 역대 최고 점인 228.56(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높은 점수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가장 논란이 많았던 금메달리스트란 오명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리스트 자격논란은 23일 열린 갈라쇼에서 나타났다. 현저히 낮은 점프와 어설픈 스케이팅 여기에 주니어 티를 벗지 못한 표현력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참고 싶지만 쉽게 참을 수 없는 이유. 소트니코바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이유다.

조영준 기자 spaewalker@xportsnews.com

[사진 = 김연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캐롤리나 코스트너 ⓒ Gettyimages/멀티비츠 엑스포츠뉴스DB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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