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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발' 박지성이 쓴 한국 축구의 새 역사

기사입력 2011.01.31 07:51 / 기사수정 2011.01.31 07:54

윤인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은 이제 역사로 남았지만, 박지성의 존재로 한국 축구사는 새 역사를 맞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한국선수 첫 득점, 한국 선수 첫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진출, 아시아 선수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비록 결승전 출전은 못 했지만) 등 박지성의 존재로 한국 축구의 위상은 세계 축구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섰다.
 
국가대표로서도 박지성의 업적은 화려했다. 비록,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주요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A-매치 100경기 출전을 채웠고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을 이뤄낸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축구의 '상징',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에 발맞춰 박지성과 함께 한 지난 11년의 한국 대표팀, 그리고 박지성이 개척한 한국 축구사의 새로운 영역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평발'과 왜소함을 이겨낸 축구 열정
 
많이 알려졌듯, 박지성은 축구선수로는 치명적인 평발을 지녔다. 게다가 학창시절 왜소한 체구로 그 누구도 한국 축구를 짊어진 지금의 박지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박지성은 두 가지의 결정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우뚝 서게 되었다. 평발의 신체적 단점에도 남들보다 배로 뛰며 강인함을 길렀고, 왜소한 체격은 노력에서 비롯된 많은 활동량과 남다른 축구 센스로 보완했다.
 
수원공고 졸업 후, 가까스로 명지대에 진학했지만, 이러한 박지성의 노력과 재능이 주목받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 명지대 소속으로 출전한 박지성은 자신의 진가를 보이며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고, 급기야 난생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데 성공한다.
 
당시에는 허정무 감독의 '내기 바둑 발탁'이라느니 많은 비아냥을 받았지만, 대표팀 주장 박지성의 11년 대표팀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히딩크의 황태자, 유럽 킬러로 발돋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박지성이 2002 한일 월드컵의 주역으로 떠오리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박지성의 소속팀 교토 퍼플상가는 일본의 2부리그 클럽이었고, 박지성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드 자리에는 고종수, 이천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찬사를 받으며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본선무대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택한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는 바로 박지성이었다. 많은 의구심이 존재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선택에 대한 이견은 너무나 짧은 시간 만에 완벽히 해체되었다.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 나선 박지성은 그림 같은 다이빙 헤딩슛으로 한국의 1-1 무승부를 이뤘고 프랑스전에서는 아름다운 중거리 슈팅에 성공해 기존의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던 한 차원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본선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 마치 데니스 베르캄프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트래핑에 이은 감각적인 왼발 발리 결승골은 박지성의 클래스가 이미 아시아를 벗어났음에 대한 완벽한 증거가 되었다.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의 강팀을 상대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박지성은 한국의 '유럽 공포증'을 떨쳐내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냈다.


 
'위숭빠레', 야유를 딛고 에인트호벤의 영웅 등극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활약으로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명문, PSV 에인트호벤(이하 에인트호벤)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박지성의 유럽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월드컵으로 말미암은 휴식의 부족과 언어소통 부재로 팀플레이에 융화되지 못한 박지성은 네덜란드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데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홈팬들의 야유와 동료들의 불신으로 박지성은 계속해서 위축된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보였고 한때는 유럽 생활의 정리를 고민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히딩크 감독의 변함없는 신뢰와 포기할 수 없다는 굳은 신념으로 점차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2003/04시즌, 리그에서 6골을 넣으며 가능성을 보인 박지성은 아르연 로번이 첼시로 떠난 2004/05시즌,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난다.
 
왕성한 활동량과 동료와의 유려한 연계 플레이, 그리고 날카로운 돌파력으로 박지성은 에인트호벤 공격의 중심이 되었고 박지성의 맹활약에 힘입어 에인트호벤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며 자국 맹호의 자리를 넘어 유럽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지성 개인적으로도 리그에서 7골을 비롯하여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본선라운드 득점을 성공하게 되었다.


 
거함 '맨유' 진출과 아시아 최고 선수로의 도약
 
2005년 여름, 한국 축구사의 일대 획을 그을 한 소식이 전해진다. 유럽 최고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박지성을 영입한 것이다.
 
유니폼 판매원이라는 일각의 비뚤어진 시선도 있었지만, 박지성은 이적 첫 시즌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유럽 최고의 팀에서 증명해낸다.

리그 경기 과반수 이상인 23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공식득점은 시즌 2골(칼링컵 포함)에 불과했으나, 무려 7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퍼거슨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특히, 유려한 공간 플레이와 '산소탱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량으로 박지성의 존재는 이타적인 선수의 표본이 되었다.
 
이후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박지성은 매 시즌 득점을 기록하며 맨유 공격라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맨유 공격에 새로운 옵션을 제공했다.
 
게다가 측면 공격수임에도 탁월한 수비 능력으로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조어를 탄생시키며 유럽 평론가들로부터 '현대 축구의 필수적인 전략적 윙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박지성의 전술적 기여도로 맨유는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박지성 역시, 비록 2007/08 시즌 결승전에는 출전이 불발됐지만, 2008/09 시즌 결승에 선발 출전,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이자 결승전 출전 선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주장 박지성, 한국 축구를 변방에서 끌어내다 

비록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은 조별리그 1승1무1패를 기록해 대회에서 가장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한 팀이 되었다.

특히, 대회 준우승팀 프랑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 한국이 더는 월드컵의 승점 제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당시 박지성은 프랑스전 동점골로 역시, 강팀에 강하다는 면모를 확실히 보여줌과 동시에 두 대회 연속골로 아시아 축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맞이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주장이 되어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고 한국은 전 대회의 아쉬움을 말끔히 해결했다.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둔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이어 B조 2위의 성적으로 꿈에 그리던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뤘다.
 
비록,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아쉽게 1-2로 패했지만,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대회였다.
 
한국은 네 경기에서 무려 6골을 넣으며 월드컵에 진출한 어떤 팀의 골문도 열 수 있는 능력을 보였고, 유럽 지역예선을 통과한 그리스를 경기력에서 압도하며 2-0 완승을 거두었다.

특히, 박지성이 이 경기에서 기록한 골키퍼마저 유린한 단독돌파의 추가골은 웬만한 유럽 팀에 뒤지지 않을 한국 축구의 발전한 위상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 골로 박지성은 월드컵 세 대회에서 득점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지성 신화
 
비록 국가대표 은퇴가 기정사실로 되었지만, 박지성이 만들어 갈 새로운 역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올 시즌 박지성은 소속팀 맨유에서 6골(리그 4골)을 기록,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던 득점력 부분을 완벽히 개선했다. 올해로 만 30대에 진입하지만, 여전히 기술적으로 진화 중이어서 박지성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얼마 동안 맨유에서 활약할지 미지수이지만, 박지성의 현재 활약이라면 적어도 브라질 월드컵 때까지는 유럽 최고리그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맨유가 됐던,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팀이 됐든, 유럽의 다른 리그가 됐든, 아시아 축구의 '살아있는 신화'로서 박지성의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 DB, Gettyimages/멀티비츠]
 
  
 

윤인섭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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