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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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라이벌 열전] '대구 유망주' 이승엽-김승관의 엇갈린 명암

기사입력 2010.12.22 10:52 / 기사수정 2010.12.22 10:54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고교야구에서 라이벌로 통하는 이들은 프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시절부터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실력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팀 전력은 먼지와 같이 조용히 쌓여간다.”라는 백인천 전 감독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 중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많은 선수 중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오른손/왼손잡이 선수를 일컬어 '좌-◯◯, 우-◯◯'라고 명하기도 했다. 1990년대 고교야구를 평정했던 경북고 이승엽과 대구상고 김승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야구팬들은 이들을 일컬어 ‘좌-승엽, 우-승관’이라고 불렀다.

고교야구 라이벌 열전 경북고 이승엽 vs 대구상고 김승관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라이벌로 소문난 이들은 쓰는 손에서부터 시작하여 포지션까지 서로 달랐다. 좌완투수인 이승엽과는 달리 김승관은 우타자였기 때문이었다. 소속 학교가 대구시내에서 전통의 라이벌로 마주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이들은 2학년 때부터 전국대회 MVP에 선정될 만큼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승엽이 1993년 청룡기 고교야구에서, 김승관이 같은 해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에서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것. 당시 MVP 선정 방식이 ‘기자단 투표’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2학년이 고교야구 정상에 선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평행선’을 형성했던 이들은 연고 구단인 삼성의 지명을 받으면서 비로소 한솥밥을 먹게 됐다. 당시 삼성은 좌완 유망주 이승엽에 이어 고교 최고의 강타자 김승관마저 눌러 앉히는 데 성공하자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시절 내내 혹사에 시달렸던 이승엽의 어깨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투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무렵, 그는 방망이를 잡기 시작했다. "(이)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칩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김승관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이승엽이 타자로 전향하면서 변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승엽-양준혁이 버티고 있는 삼성의 중심 타선에 김승관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승엽이 1군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동안 김승관은 '2군 홈런왕’이라는, 다소 반갑지 않은 타이틀을 거머쥐어야 했다.

소속 구단인 삼성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김승관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2004시즌 중반, '팀 이탈' 문제를 일으켰던 노장진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2006시즌, 김승관은 친정팀 삼성을 상대로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3루 요원이었던 이대호가 1루수로 옮기는 등 또 다시 설 자리를 잃어버린 김승관은 다시 2군 무대를 전전해야 했다. 그리고 2007시즌, 1군 무대에서 단 5경기에만 모습을 드러낸 끝에 그 해 2군 남부리그 홈런왕(12개) 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음에도 불구, 롯데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 시점에서 은퇴를 선언한 김승관은 현재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에서 타격을 지도하고 있다.

반면, 이승엽은 내년 시즌을 앞두고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하며, 여전히 현역에서 활약중이다. 그는 올해까지 한일 통산 타율 0.292, 1893안타, 468홈런, 1336타점을 기록중이며, 개인 통산 500홈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에 이승엽이 투수로 누렸던 고교시절 명성을 프로에서도 유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진=이승엽, 김승관 (C) 엑스포츠뉴스 DB]



김현희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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