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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감독 "참 묘한 인생, 사람 사는 모든 것이 다 영화 같아" [엑's 인터뷰]

기사입력 2020.07.05 09:00 / 기사수정 2020.07.05 01:53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영화 '사라진 시간'을 소개하기 위해 인터뷰 현장을 찾은 정진영 감독을 마주한 순간의 모습은 마치 매 작품 새로운 인물이 되는 배우처럼, '감독'이라는 새 옷을 입은듯했다. 단정한 흰 셔츠에 백팩 차림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취재진을 기다리던 정진영 감독은, 정말 순수한 감독 그 자체의 얼굴로 진중하고 겸손하게 영화 이야기를 전했다.

6월 18일 개봉한 '사라진 시간'은 배우로 33년의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정진영의 연출 데뷔작이다. 열일곱 살 때부터 꿈꿔왔던 감독의 꿈을 쉰일곱이 된 해에 이루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한 정진영 감독은 '어제의 내가 마주한 진실이 오늘 모두 사라진 순간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혀왔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를 비롯해 '7번방의 선물'(2013), '국제시장'(2014), '클레어의 카메라'(2018)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활약을 펼쳐 온 정진영 감독은 가제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로 시작해 지금의 '사라진 시간'이 완성되기까지 각본과 연출을 맡아 자신의 생각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정진영 감독은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규정하는 나에 대한 계속된 질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진짜 나를 향해 다가가는, 진짜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첫 걸음들을 생각하는 것이요. 물론 쉽지는 않죠"라고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과 김유진 감독, 이준익 감독 등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면서 "'그래도 정진영이 헛짓거리는 안했다' 싶더라고요"라며 너털웃음과 함께 "정말 고마웠어요"라고 안도했다.

'초록물고기'(1997) 연출부로 활동하며 이창동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정진영 감독은 "본인 말에 굉장히 엄정한 분인데, 놀랍게도 칭찬을 해주셔서 기뻤죠. 김유진 감독님과 이준익 감독님도 '좋은 시나리오'라고 말해주시는데 감사했어요. 다만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주셔서, 그 부분은 각오하고 있었죠"라고 떠올렸다. 김유진 감독과는 배우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던 '편지'(1997)로 인연을, 이준익 감독과는 '황산벌'(2003), '왕의 남자'를 함께 했다.


주변의 든든한 지원 속, 작품에는 노개런티로 함께 해 준 배우 조진웅을 비롯해 충무로를 대표하는 스태프들이 모여 정진영 감독에게 힘을 불어넣어줬다.

"얘기가 워낙 황당하고 이상하잖아요"라고 너털웃음을 지은 정진영 감독은 "상업적 승산은 사실 없다고 봤어요. 괜히 아는 제작자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폐가 될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화사(다니필름) 등록을 했죠"라고 떠올렸다.

"제가 대표이고, 직원은 저 한 명밖에 없는 회사에요.(웃음) 그동안 저금해 둔 돈으로 제작해보려고 했는데, 앞서 출연을 결정해줬던 (조)진웅 씨가 '대장 김창수' 회식 자리에서 장원석 대표(BA엔터테인먼트) 합류를 도와줬죠. 너무나 고맙게도,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얘길 해주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예산이 커질수록 제가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얼마 이상 예산을 올리지 말자'고 제한을 뒀고, 그래서 적은 예산이지만 이렇게 완성될 수 있었어요."

직접 지은 제작사 다니필름(Danee Film)을 얘기하면서는 마치 자신의 딸 같은 존재라며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제가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이름을 '단이'라고 지을까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짓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사 이름을 짓다 보니 마치 그때 미리 지어놓은 딸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로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현장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메가폰을 잡은 이후부터는 또 다른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굳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배우에게는 감성이 중요하고 연출자에겐 이성이 중요하다는 것, 또 배우는 연기라는 한 부분에 굉장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 감독은 전체를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감독이 더 위대하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웃음) 이를테면 작곡가와 연주자, 지휘자와 연주자 같은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 지금도 배우이잖아요. 배우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죠. 감정을 표현해서 줄거리를 운반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냥 현장에 오지 않거든요. 저는 배우들을 믿어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다른 감정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그것이 틀리지는 않은 것이거든요. 배우들이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그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힘든데 즐거웠다"고 웃으며 말을 이은 정진영 감독은 "저는 저 스스로를 관습적이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처음에 쓴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관습적이더라고요. 정말 놀랐고, 그 시나리오를 버리고 다시 쓰게 됐죠. 장르를 파괴한다는 것보다는, '장르에 사로잡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 같아요. 그래야 이 이야기의 생김새가 갈 수 있거든요. 규칙에 사로잡히지 말고, 계속해서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나리오를 완성했었고, 현장에서는 굉장히 본능적이 되더라고요"라고 되짚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의 제작이 결정되고 촬영을 거쳐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그 동안의 과정들을 떠올린 정진영 감독은 "인생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어떤 큰 결정이나 행동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계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 사는 것이 다 영화 같아요"라며 차분하게 얘기했다.


"연출을 하고 싶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지만, 꼭 그 꿈을 이뤄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마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 해 시상식에서 상도 타고, 아이도 열아홉 살이 되면서 '다 키웠다' 생각이 들었었죠. 제가 20대 때 생각했던 예술가는 계속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면서 도전하고, 외로움을 돌파해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저는 어느새 굉장히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제가 대단히 큰 어떤 스타덤에 오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쭉 꾸준히 일을 해왔었거든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해보자, 그래서 작은 영화들을 찾게 됐고 홍상수, 장률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고 했었어요.

홍상수·장률 감독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좋은 영화를 꼭 돈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구나. 좋은 이야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이 점이었죠. 이후에 출연하기로 했던 독립영화가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무산됐고, 그러면서 예상치 못하게 두 달 정도 비는 시간이 생겼어요. 그 때 '시나리오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가 책임지는 영화를 만들어보자 싶었어요. 만약 이렇게 비는 시간이 없이 일정들이 이어졌다면, '연출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에요."

감독으로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우여곡절의 현장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원했던 배우, 학교와 집처럼 내가 원했던 촬영 장소 등 모두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들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의미 있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사라진 시간' 개봉과 맞물려 정진영 감독은 현재 방송 중인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아버지 김상식 역을 맡아 촬영으로 바쁜 일정들을 이어가고 있다.

정진영 감독은 "영화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관객들에게 맡긴다"면서 자유로운 생각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은 물론, "세상에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들이 있더라고요. '가족입니다' 드라마도, 기억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이 참 묘했죠. '사라진 시간'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또 가서 드라마 대사를 외워야 합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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