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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김연아의 탄탄한 기본기, 이렇게 완성됐다

기사입력 2009.12.09 12:43 / 기사수정 2009.12.09 12:43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가 2009년에 참가한 모든 국제대회를 휩쓸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케이터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월에 벌어진 2008-2009 4대륙 선수권 우승으로 한 시즌을 시작한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우승을 일궈내며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또한, 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진 2009-2010 그랑프리 1차 대회와 5차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막을 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위에 올랐다. 2009년에 벌어진 5개의 굵직한 대회를 모두 휩쓴 김연아는 ISU(국제빙상경기연맹) 1위를 다시 탈환하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임을 증명했다.

변수가 많은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은 자칫 잘못하면 한꺼번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19, 일본 츄코대)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카롤리나 코스트너(21, 이탈리아)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또한, 아사다 마오도 점프의 감각과 자신감을 상실하며 추락을 거듭했다. 김연아의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조애니 로셰트(23, 캐나다)도 북미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도 유독 김연아만큼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다. 모든 상황을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연아의 몸에 배어 있는 '탄탄한 기초'는 땅속에 깊숙이 들어간 뿌리처럼 김연아의 중심을 튼튼하게 잡아주고 있다.

전문화된 코칭 시스템 속에서 자란 어린 김연아

김연아가 처음으로 피겨를 시작한 곳은 과천 실내아이스링크다. 김연아가 막 스케이트를 신었을 무렵, 이곳은 피겨 중심으로 훈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 무작정 과천아이스링크를 방문한 김연아의 재능을 처음으로 발굴한 이는 아이스댄싱 출신의 지도자였던 류종현(41) 코치였다.



류 코치의 권유로 피겨를 시작한 김연아는 과천아이스링크 팀이 지니고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성장했다. 당시, 류종현 코치와 함께 과천 아이스링크의 피겨 강사로 있던 변성진(39) 코치는 '과천팀'의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절, 피겨 스케이팅은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과 비교해 링크장 대여 비율이 매우 낮았어요. 하지만, 과천 링크의 경우, 피겨 위주로 대관이 맞춰져 있었죠. 다른 종목과 5:5의 비율로 대관이 잡힌 점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코칭 시스템도 코치 한 분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특정 분야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지도했습니다"

류종현, 변성진 코치가 있었던 과천 링크에 오지연(42) 코치가 들어오면서 완전한 팀이 완성됐다. 이들은 저마다 메인으로 가르치는 제자들이 있었다. 류 코치는 자신이 발굴해낸 김연아를 지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지연 코치로 옮겨갔다.

주로 가르치는 제자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들은 한 팀이었으며 각자 자신 있는 분야도 틀렸다. 이러한 시스템은 피겨의 선진국인 북미와 일본 등에 갖춰진 체제였으며 김연아는 각기 다른 지도자에게 전문적인 지도를 받고 성장했다.

"류종현 코치님은 주로 (김)연아에게 스케이팅 기술을 가르치셨어요. 저는 프로그램을 맡았고 점프는 오지연 코치님이 지도해주셨죠. 제가 프로그램을 짜주고 지도를 하고 나면 오 코치님이 점프를 가르쳤고 류 코치님은 스케이팅을 가르쳤습니다. 아이스댄싱 출신이셨던 류 코치님은 스케이팅에 일가견이 있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스댄싱 출신인 분들에게 스케이팅을 비롯한 기초를 배우는 점에 찬성을 합니다. 연아는 좋은 스케이팅을 익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 변성진 코치

김연아는 피겨와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을 각기 다른 코치들에게 배우면서 성장했다. 또한, 기초를 배우는 과정에서 스케이팅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점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

"류종현 코치님은 스케이팅과 함께 지상훈련도 담당했어요. 기초 체력 강화도 연아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빙판 위에서 지속적으로 점프를 하려면 지상에서 익힌 체력이 필요했죠"

- 변성진 코치



피겨를 배우는 유망주들에게 스케이팅은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피겨 전용링크가 없는 국내의 상황은 이러한 훈련을 소화하기가 벅차다. 대관시간에 쫓기다 보니 점프 훈련에 주력하게 되고 눈앞에 있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가장 점수 배점이 높은 점프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 과천 링크에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성장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열의를 쏟은 3명의 지도자는 '한번 해보자'라는 열의가 대단했다고 변 코치는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에 기름을 부은 유망주가 김연아였다.

"연아라는 어린 아이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류종현 코치님도 굉장히 재능이 많은 아이라고 극찬을 하셨죠. 연아를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말을 매우 잘 들었고 코치가 이끌어주는 대로 잘 따라왔어요. 점프를 어떻게 뛰라고 지시를 하면 표정도 없고 고개도 끄덕거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금세 빙판으로 가서 제가 지시한 것을 그대로 따라했죠(웃음)"

- 오지연 코치

변성진 코치는 어린 시절의 김연아를 '군인'에 비유했다. 너무나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지만 지시하는 대로 곧장 따라하는 김연아는 '군인'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겁이 없었던 아이, 몸을 내던지는 점프를 구사하다

김연아는 현역 여자 싱글 선수 중,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점프를 뛰는 스케이터로 유명하다. 점프의 초석을 잘못 밟으면 선수의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 잘못된 점프를 고치고 다시 출발하는 과오를 없애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바로 오지연 코치였다.

"연아는 어릴 적에도 조심스럽게 점프를 뛰지 않았어요. 한 마디로 몸을 내던져서 점프를 구사했죠. 겁이 전혀 없었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찾아 볼 수 없었어요"

- 오지연 코치

점프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만 '제대로 된' 점프를 가르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김연아가 등장하고 난 뒤, 국내 선수 대부분은 제대로 된 점프를 구사하고 있다. 또한, 문제점이 있으면 정석에 맞춰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연아라는 좋은 본보기가 나온 점이 이러한 영향을 미쳤고 어린 김연아도 훌륭한 선배들의 점프를 보면서 그것을 교본으로 삼았다.

"연아는 당시 국가대표이자 올림픽에도 출전한 이규현(29, 현 피겨 코치)와 박빛나(25, 현 피겨 코치)의 점프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성장했어요. 좋은 점프를 구사하는 선배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죠"

- 오지연 코치

당시, 오 코치는 국제대회를 관전하면서 '러시아식' 점프가 앞으로 펼쳐질 국제무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러시아와 북미의 점프 스타일이 거의 비슷해졌고 확실하게 구분 짓기 어렵게 됐다. 정교한 테크닉보다 힘을 내세우는 러시아식 점프는 용수철처럼 도약하는 힘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정교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허리를 틀게 되고 중심축이 흔들리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러시아식과 비교해 힘보다는 깔끔함과 안정성에 중심을 주는 점이 북미식 점프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변했고 지금은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고 오 코치는 밝혔다. 또한, '피겨 황제'인 예브게니 플루센코(27,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출연하면서 러시아의 점프는 많이 변했다고 덧붙었다.

"연아는 점프가 높고 올라가는 순발력이 상당히 좋았어요. 또한, 다리 힘도 대단했죠. 하지만, 점프의 힘이 대단하다 보니 점프 자체가 깨끗하지는 못했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러시아 스타일에 가까웠는데 이 점을 수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오 코치는 잘못된 버릇을 들이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싱글 점프도 제대로 못하면 다시 반복시켰고 나쁜 버릇이 몸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지도했다.

오 코치는 잘못된 점프를 교정하거나 새로운 점프를 배울 때, 항상 코치가 보는 앞에서 훈련을 시켰다. 잘못된 자세와 도약 등에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그 방법이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김연아는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더블 악셀을 완성했다. 김연아는 10대 초반에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완성했다. 그러나 더블 악셀을 정복하는데 걸린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고 오 코치는 강조했다.

"요즘 아이들에 비해 연아가 더블 악셀을 뛰게 된 기간은 길었어요. 기본자세와 워킹, 그리고 점프 회전을 채우는데 시간이 좀 걸렸죠"

점프를 처음 배우는 기간, 김연아는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며 완성해나갔다. 점프의 기초를 탄탄하게 익힌 김연아는 더블 악셀을 가지고 노는 수준에 도달했다. 더블 악셀 기간까지 배운 기본기가 워낙 좋다 보니 트리플 점프를 빠른 기간에 정복할 수 있었다. 

김연아만큼이나 대단했던 어머니,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도왔던 점이 김연아를 완성

김연아를 이야기할 때, 어머니인 박미희(50)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김연아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링크 밖의 코치’였던 박미희씨의 존재는 김연아에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면서 오지연 코치님에게 이렇게 말했었어요. ‘어머니에게 표창장이라고 드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요’(웃음) 연아가 원체 스케이트를 잘 탄 이유도 있지만 어머니의 노력도 정말 대단했어요"

- 변성진 코치

김연아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링크 밖에서 이루어진 철저한 지상훈련에 있었다. 이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유망주는 지상 훈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김연아의 어린 시절에도 이 부분은 피겨 코치들이 강조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막상 지상훈련을 체계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힘들었다. 링크 대관시간이 한정돼있기 때문에 링크 훈련이 끝나면 서둘러서 나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링크 밖에서 이루어지는 훈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11시에서 12시였어요. 경기가 끝나면 급하게 짐을 챙기고 빨리 링크를 비워야 했지만 연아와 어머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항상 훈련하기 1시간 전에 도착해 착실하게 지상훈련을 소화하고 링크에 들어섰죠. 또한, 훈련이 끝난 뒤에 이루어지는 스트레칭도 항상 완벽하게 끝내고 귀가했어요. 이것을 실천하기란 매우 힘든데 단 한 번도 빼놓지 않았어요"

- 오지연 코치



박미희 씨는 매우 적극적으로 김연아를 지도하는 ‘평생 코치’로 알려져 있다. 링크 밖에서는 김연아의 점프와 지상훈련을 도맡지만 링크 안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코치에게 일임했다고 이들은 밝혔다.

링크 안에서 이루어진 세분화된 지도와 철저한 지상훈련이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하는 초석이 됐다. 코치진과 학부모, 그리고 선수 간의 믿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도력을 발휘했던 ‘과천팀’은 1997년, 국내 대회를 휩쓸면서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비록, 이러한 시스템은 그 이후에 해체됐지만 아직까지도 본보기로 남아있다.

"연아는 기본기를 충실하게 배웠고 우리가 가르친 것들을 착실하게 소화했어요. 지도자를 믿고 따라온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링크 밖에서 해야 할 일에 충실했던 점도 연아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죠. 그리고 지도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 변성진 코치

"좋은 점프를 완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힘듭니다. 힘이 조금씩만 달라도 점프의 질이 달라져요. 연아가 트리플 점프를 어린 시절에 완성해 놓고 수십 번 수만 번 연습하는 점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뛰어난 선수라 해도 이틀 이상을 쉬면 점프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세계적인 선수들 중에서도 정확한 점프를 뛰는 선수는 매우 드물어요.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경우가 1년에 1~2번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선수는 평생에 한 번도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아가 다른 선수와 다른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확률이 다른 선수보다 높다는 점이며 큰 경기에 강한 정신력이 있다는 점이죠"

- 오지연 코치

* 변성진 코치가 선정한 김연아 최고의 프로그램 : 록산느의 탱고(2006-2007 김연아 쇼트프로그램)
* 오지연 코치가 선정한 김연아 최고의 프로그램 : 죽음의 무도(2008-2009 김연아 쇼트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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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 김세훈, 남궁경상 기자, 변성진, 오지연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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