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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자의 프로레슬러 E사람] 마지막 남은 1세대 '당수' 천규덕을 만나다

기사입력 2008.10.06 09:17 / 기사수정 2008.10.06 09:17

변성재 기자



▲ 76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쳐 흐르는 천규덕

[엑스포츠뉴스=변성재 기자] 국내 유일 마지막 남은 1세대 한국 프로레슬러 '당수' 천규덕(76세 신한국 프로레슬링 원로고문) 1997년 한국의 대 히트를 친 송강호 한석규 주연의 '넘버3'에서 천규덕을 소개하는 대사, 그리고 최초 한국 프로레슬링 영화 '반칙왕'에서도 역시 그의 이름이 소개된다.

중견 탤런트겸 영화배우 '천호진'의 아버지인 천규덕,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은 천규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본지에 인터뷰를 응한 천규덕. 그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어머니 시대이던 70년대의 한국 프로레슬링과 그가 전망한 한국 프로레슬링의 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당수' 천규덕 선생의 인터뷰 전문

Q: 만나서 반갑다. 한국의 프로레슬링광들에게 자신의 소개 부탁 드린다.

A: 나는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을 처음 만들어낸 장본인 천규덕이다. 나와 아마츄어 레슬러 '삼손' 장영철이 힘을 모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 활동하던 '박치기왕' 김일과 '알밤까기 대왕' 여건부가 한국에 귀국해 함께 힘을 모아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Q: 우선 신한국 프로레슬링 원로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한국 프로레슬링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A: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의 중흥을 이루기 위해 원로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로들의 회의인로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되었다. 사단법인 신한국 프로레슬링협회는 몇 남지 않은 원로들의 힘으로 프로레슬링 동우회에서 만든 법인단체이다.

Q: 아버지 어머니 시대인 60년도 70년도 한국 프로레슬링의 시대는 어떠했나?

A: 지금의 야구, 축구, 농구는 그때의 프로레슬링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지금 국민스포츠라 부를 수 있는 스포츠가 있는가?  예전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이다.

Q: 그 시대 자신의 라이벌이나 기억나는 선수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장영철은 일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평생을 함께 한 선수였다. 나는 그가 보고 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장영철은 2006년 8월 타계했다.


Q: 천규덕하면 황소를 수도날로 때려잡은 사건으로 유명하다. 그때 사건을 자세히 말해달라

A: 나의 주특기는 로프 반동으로 달려나오는 상대를 수도로 격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수춉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내 당수춉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소를 때려잡았다.

그 시대에는 그런 이벤트가 가능했다. 내가 때려잡은 황소는 그날 도살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소였다.그렇지만 그렇다고해도 지금 생각하면 황소가 조금 불쌍하기는 하다.

Q: 정식 은퇴를 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가 있어 은퇴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A: 나는 프로레슬링을 만든 선수로서 이대로 은퇴할 수는 없었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이미 20년 전부터 그 힘을 잃었다. 나는 한국 프로레슬링이 부활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은퇴할 것이다.



▲ 이 수도날로 황소를 때려잡은 천규덕이 올시다. 기자양반 당신도 한번 당해보실텐가?

Q: 천규덕이 생각하는 김일 선생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A: 김일은 한국과 일본에서 스타였다. 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레슬러였다. 한국 프로레슬링이 부활하려면 그러한 영웅이 발굴되어야 한다.

Q: 1966년 미국에서 어떤 해프닝이 있다고 들었는데 해프닝에 대해 듣고 싶다

A: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내게 미국 선수들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굳이 말로하지 않았다. 차돌을 가져오라 시킨 후에 그들이 가져온 서너 개의 차돌을 당수로 격파했다. 나는 동양에서 온 무술의 달인으로 소개되어 미국 프로레슬링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다.

Q: 천규덕의 생각으로 60~70년도 한국의 프로레슬링과 현재의 프로레슬링은 어느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A: 다를 것이 없다. 결국, 프로레슬링은 프로레슬링이다. 관중을 위해 존재하는 프로 스포츠인 것이다. 더 세련되어진 부분이 있겠지만 결국은 마찬가지다.

Q: 한국 프로레슬링이 쇠퇴기에 있다.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문제는 선수들에게 있다. 선수들이 있어야 관중이 있는 것이다. 배고프다는 핑계로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링 위에 서는 걸 피하는 선수들은 관중의 환호를 기대할 수는 없다.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쪽은 관중이 아니라 선수다. 준비된 선수들이 등장하면 한국 프로레슬링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 나는 믿는다.

Q: 천규덕이 생각하는 프로레슬링의 매력은 무엇인가?

A: 프로레슬링은 모든 스포츠의 꽃이다. 보여주기 위한 스포츠의 결정판이 바로 프로레슬링이다. 프로레슬링은 화려하고 뜨거우며 아름답다.

Q: 이번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스포츠 엔터테이먼트 '바디크러쉬'의 프로레슬링 강사로 역임되었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A: 행복하다. 내가 경험한 프로레슬링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프로레슬링도 미국 스타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바디크러쉬가 그런 나의 취지에 공감해줬기에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Q: 자신이 이번에 프로레슬링 강사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기술과 조언을 하게 되어야할텐데.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

A: 프로레슬러는 스타다. 스타의 자질을 가져야 진정한 프로레슬러다. 관중을 흥분시킬 수 있는 능력은 프로레슬러가 가져야 할 기본이다. 나는 그것을 가르칠 것이다. 기술적인 것은 후배들에게 맡긴다.

Q: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어린 후배 윤강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자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그가 예전에 태어났더라면 링 위의 당당한 스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의 운명이다. 그는 스스로 프로레슬링을 일으켜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를 돕겠다.

Q: 자신과 같이 걷고 있는 한국 프로레슬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말은?

A: 한국 프로레슬러들이여 기운을 내라. 프로레슬링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 있다. 반드시 프로레슬링은 부활한다. 부활한 프로레슬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Q: 마지막으로 한국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A: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이 있다. 침체의 기간이 길었지만 이제 부활이 시작되었다.대학교가 프로레슬링에 직접 참여한 것은 이제껏 어디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동국대학교가 프로레슬링 엔터테인먼트과를 개설했다.

젊은 경영자가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태호 교수가 바디크러쉬를 창설했다.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은 부활할 것이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

마지막 1세대 한국 프로레슬러 '당수' 천규덕 프로필

1932년 부산 출생

1949년 육군항공대 입대

1961년 한국 프로레슬러 데뷔 (29세)

1964년 영진약품 근무

1966년 미국 프로레슬링 데뷔

1978년 극동 태그매치 챔피온 왕좌

1975년 한국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 왕좌

1998년 프로레슬링 동우회 결성

2002년 신한국 프로레슬링 협회 원로고문 역임



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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