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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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영학과 호날두를 바라보며

기사입력 2008.06.25 04:33 / 기사수정 2008.06.25 04:33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가끔 선수의 이적에 대해 설왕설래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선수가 돈 많이 주는 팀에 가는 게 뭐가 나빠?'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에선 이윤 추구가 가장 큰 목표이고, 그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연고이전이 왜 나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구단이 아쉬울 때는 팬이 팀의 주인이라며 떠받들다가 '장사'가 안 되자 팬들을 내팽개치고 자기 멋대로 다른 도시로 떠나버린다. 자기 팀을 빼앗긴 팬들의 항의에는 '내 돈 가지고 만든 내 팀에 누가 뭐라 그래?'라는 태도를 보인다. 한마디로 '상도'를 벗어난, 자신들의 존재 기반인 팬을 무시하는, 천민자본주의다.

프로선수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그만큼의 연봉을 받고 인기를 누릴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홈팬들의 성원과 사랑이었단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때문에 선수가 이적을 고려할 때는 반드시 자신을 응원하고 믿어줬던 팬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이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설사 이적을 하더라도 이전 소속팀 팬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

안영학의 가슴에 새겨진 수원

6월 22일 상암월드컵경기장, 한국과의 월드컵 3차 예선 경기에 북한 대표팀으로 나선 안영학(사진 가운데, 9번)의 흰색 유니폼 아래 희미하게 비치는 무언가가 있다.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그의 소속팀 수원삼성의 앰블럼이었다.

안영학은 수원에 온 지 겨우 넉 달밖에 되지 않았고, 주전경쟁에서도 밀려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라운드 설 때 수원 선수로서의 자긍심을 가슴에 함께 담고 싶어 동아시아 대회 때부터 수원 엠블럼이 달린 옷을 입었다."라고 밝히며 소속팀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애착을 보여줬다. 또한 수원팬들을 배려한 일종의 팬 서비스이기도 했다.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팀에 합류한 기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를 싫어할 팬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팀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것은 팬들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호날두와 맨유의 이적 분쟁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와 안영학의 태도는 꽤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호날두는 스포르팅 리스본을 떠나 17살의 나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몸담았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LA갤럭시)이 두고 간 맨유의 에이스 넘버 7번을 그에게 달아줬고, 그가 2006년 월드컵의 ‘윙크 사건’ 때문에 대내외적인 비판에 휩싸일 때 그를 지켜줬다. 당시 호날두는 잉글랜드 어느 경기장을 가도 야유를 받았지만 올드 트래포드의 맨유 팬들만큼은 그를 감싸줬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미운 오리새끼'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다시금 일어선 호날두였지만 지금은 맨유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8천만 파운드(약 1600억 원)까지 언급되는 이적료로 충분히 보상할 테니, 날 보내달라고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이미 이적을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안영학의 태도와는 반대로 그는 맨유에 대한 자긍심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적은 내가 원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맨유 팬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가 없다. 맨유 팬들 역시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구단은 그를 놓아줄 수 없다 하지만 팬들은 이미 호날두를 자신들의 '7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호날두에 대한 아쉬움

프로축구는 20세기 말부터 수백억대의 이적료가 오가는 '돈 잔치'로 변했다. 축구단 경영은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로 대변되는 ‘부자들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돈으로 리그 타이틀과 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팽배해있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높은 급여에 따라 쉽게 이적하는 선수가 많아지면서 라울 곤잘레스(레알 마드리드)와 라이언 긱스(맨유),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같이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마치는 경우는 더욱 드물게 됐다.

스티븐 제라드(리버풀)는 3년 전 첼시로 이적할 뻔했으나 리버풀의 팬들을 버릴 수 없다며 잔류를 선택해 지금까지도 소속팀을 위해 뛰고 있다. 그는 ”몇몇 사람들은 시간은 흘러가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리버풀과 안필드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마지막 한마디는 그가 리버풀의 영원한 캡틴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호날두에게 제라드처럼 남으란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라드가 리버풀에 남았던 이유다. 제라드는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했던 팬을 생각할 줄 알았고, 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줄 알았다. 이는 안영학도 마찬가지였다. 호날두는 맨유를 떠나더라도 그렇게 쉽게 맨유 선수로서의 자긍심을 버리고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행을 보여선 안됐다.
 
서두에도 밝혔지만 호날두의 이적은 자본주의 이념과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정당하다. 하지만, 그가 속한 축구라는 세계에는 ‘소비자’가 아닌 ‘팬’이란 존재가 있다. 조금 더, 자신을 아꼈던 팬들을 생각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C)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전현진 기자]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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