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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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3연속 준우승' 한지원, 별처럼 빛나는 이야기

기사입력 2015.10.22 07:42 / 기사수정 2015.10.22 07:54

박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첫 준우승 무대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간 보냈던 힘든 순간들이 눈 앞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두 번째 준우승 때는 무대 뒤편에서 눈물을 보였다. 우승하지 못해 서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준우승 때는 오히려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자신의 실력을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고 결심했다.

CJ 엔투스 저그 선수인 한지원의 이야기다. 2015년 이전까지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 자신의 아이디인 별처럼 빛나는 성적을 거뒀다.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한지원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였다.

WCS 글로벌 파이널을 앞두고 연습 중인 한지원을 만났다. 과연 한지원은 자신의 2015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한지원이 힘들 때마다 도와주셨다는 어머니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올 한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정말 행복했다. 여태까지 선수 생활을 하며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올해 만족할만한 성적을 올렸다. WCS 글로벌 파이널 출전도 힘들 줄 알았다. 하지만 WCS 포인트 7위로 미국에 가게 됐다. 행복하고 뿌듯하다.

지난 4~5년 사이 성적을 거의 내지 못했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거니 제대로 끝은 내자는 생각에 은퇴하고 싶을 때마다 버티고 버텼다. 그 노력의 보상을 올해 받은 거 같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 부터 내가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택뱅리쌍'처럼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어떻게 시작했나.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가장 스타크래프를 잘하는 친구와 게임을 한창 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친구를 꺾고 나니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그 친구를 꺾을 때 안 좋은 종족으로 해야 인정받을 거 같아서 저그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힘든 종족으로 해야 내가 멋있을 거 같았다.

프로게이머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집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그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2년 동안 혼자서 게임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때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공부도 곧잘 했는데, 중학교 2학년 들어서 학원다니던 걸 그만두고 집에서 게임만 했다. 어머니도 어느 정도 눈치채셨지만, 그냥 속으로만 걱정하셨던 거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어머니께 이야기했는데, 그때도 역시 반대하셨다.

어린 마음에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가출을 했다. 오래 한 건 아니고 하루 밖에 다니다 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갔다. 하필 추운 겨울이라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갔는데, 어머니께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허락해주셨다. 이후부터는 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데 많이 도와주셨다.


브루드 워 시절부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거로 아는데.

어머니께 허락을 받은 이후 바로 준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따고 kt 롤스터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부 평가전에서 떨어지며 나와야 했다. 다행히 소개를 받게 되어 하이트 스파키즈에 입단했다. 그 당시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선수 중 남은 건 나 하나였다. 내 다음 기수로 황규석이 들어왔던 시기였다.

당시 스파키즈에는 신상문, 조재걸, 이경민이 있었다. 다들 형이고 편하게 잘 대해줬다. 하지만 연습생 신분이라 연습실 청소와 분리수거, 저녁 식사 준비와 설거지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지금 나진 e엠파이어에 있는 재걸이 형과 같이 생활한 거에 신기해하는 분들도 많더라. 그때 재걸이 형은 조용하긴 한데 친한 사람한테는 장난도 잘 쳤다.

데뷔전에서는 패배했지만 계속 인정받고 프로게이머를 하던 차에 하이트 스파키즈가 CJ 엔투스와 합병되며 내 위치가 애매해졌다. 당시만 해도 CJ 엔투스에 저그 라인이 워낙 강해서 이적을 요청해서 삼성으로 팀을 옮기게 됐다.

스타리그 시즌3 결승 인터뷰에서 송병구 코치가 나를 불만이 많은 선수였다고 했는데, 맞는 이야기다. 당시 선수인 형들과는 잘 지냈는데 당시 내가 까불까불 한 성격이라 코칭스테프에서 자주 혼내셨다. 그때는 그게 불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팀 분위기를 위해 그러신 거 같아 이해가 간다.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 전향은 어떻게 했는지.

프로리그에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와 스타크래프트2를 병행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선수보다 먼저 스타크래프트2를 시작했다. 세 달 정도 먼저 시작했는데,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스타크래프트2를 시작한 거였다. 그리고는 프나틱에서 1년 정도 생활했는데 그 시절이 프로게이머 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일단 수입이 없는 데다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술도 많이 마셨다. 돈도 없었는데 어떻게 일주일에 세 번 이상씩 마셨는지 모르겠다. 혼자 생활해야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거기다 팀을 옮기려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프로게이머 생활이 여기서 끝나나 하는 순간 강동훈 감독이 IM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나도 다시 정상적인 팀에 들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방황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스스로 지쳤던 거 같다. IM에서의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형들과 지내는 게 즐거웠다. 프나틱 시절 혼자였던 게 어지간히도 힘들었었나 보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제대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 방황했다. 하루는 연습실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했는데, 이걸 강동훈 감독에게 걸리고 말았다. 정말 엄청나게 혼났다. 집에 돌아가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제대로 하겠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해서 숙소에 남을 수 있었다.

그때 강동훈 감독이 아니었으면 계속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거다. 그래서 항상 강동훈 감독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CJ 엔투스로 이적할 때도 강동훈 감독이 나서서 알아봐 줬다. 프로게이머 인생에서 강동훈 감독은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다.


CJ 엔투스에 입단하면서 성적이 만개했다. 1라운드까지 저그는 혼자였는데 힘들지 않았나?

소설 '삼포 가는 길' 막바지가 생각났다. 분명히 내게 고향 같은 팀인데 팀 이름 말고는 모든 게 변했다.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라 마음은 편했다. 선수들도 모두 순수하고 착했다. 팀에 합류하고 병세 형과 가장 먼저 친해졌다. 준호와 영봉이도 곧 친해졌고, 지금은 다들 같이 잘 지낸다.

저그가 혼자라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다. 사실 저그 동족전을 준비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힘들 일도 없다. 저그 동족전에 있더라도 팀에서 연습 상대를 잘 구해줬다. IM에서 같이 생활했던 희범이도 들어오면서 저그전 연습 부담도 덜해졌다.

게임이 잘 된다고 내 스스로가 느낀 건 프로리그 2라운드부터다. 스타리그 시즌1 우승으로 주가를 올리던 조성주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워낙에 경기가 많았던 선수라 빌드와 플레이스타일 노출도 많았다. 2라운드 마지막 세트에서 조성주가 빠른 뮤탈리스크를 막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세 번 연속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해서 준우승을 머물렀다.

먼저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이 성적에도 만족한다. 우승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준우승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준우승을 네 번 한 어윤수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제 두 번 한 조중혁은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거 같다(웃음). 그리고 양대리그 동시 결승 진출도 대단한 사건이다.

2015 GSL 시즌2 결승서 패배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박상현 캐스터가 힘든 시절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예전 힘든 시절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경기 전 어머니가 오셨었는데 날 보자마자 우시더라.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그래서 더 눈물을 참기 힘들었던 거 같다.

스타리그 시즌3 결승이 끝나고도 눈물을 보였다. 어머니가 분명 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4세트에서 3대 1로 밀리던 중 쉬는 시간에 오셨더라. 나도 눈물이 날 뻔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이어진 5세트에서 이병렬의 군단 숙주 전략을 참고해서 만든 빌드로 김준호를 이겼다. 하지만 6세트에서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 나머지 실수를 많이 했고, 결국 패배했다.

정말 오래간만의 야외 결승이었다. 관중도 정말 많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국내 스타크래프트2 개인리그 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라고 하더라. 많은 인원 앞에 서니 긴장됐다. 그래서인지 준호가 우승한 걸 보니 더 서럽더라. 하필 1위 시상식만 진행해서인지 더 아쉬웠고 그래서 눈물을 보였다.

세 번째 결승에서는 나도 좀 나아진 거 같다. 이신형에게 패배했는데 그날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고 나서 서럽다는 기분보다는 아직 내가 갈 길이 남은 거로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민망해서 웃음이 나오더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마지막 준우승 후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를 하시던가.

2015 GSL 시즌3 결승에는 친형만 왔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니 어머니가 잘했다고 하시더라. 준우승도 잘한 거라고 고향에 현수막을 걸려고 하셨는데 그건 말렸다. 어차피 나중에 우승하고 해도 늦지 않으니까. 이번에도 내려가니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주셨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정말 좋아하셨다는 점일까.

좋은 일이 있고 난 후 내려간 것도 오래간만이다. 언제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집에 내려갔다. 어머니도 처음 한두 번은 이유를 물으셨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내려가도 아무 이야기를 안 하시더라. 오히려 어머니가 일을 마치시고 들어오면 내가 같이 술 한잔 하면서 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잘 안되면 그냥 군대나 가라고 하시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을 나가셔서 밤 열 시는 되어야 집에 오시는 생활을 이십 년 가까이하셨다. 나와 형, 두 형제를 키우기 위해 계속 고생하신 거다. 가끔 힘들때 어머니 생각을 하면 거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첫 준우승 상금은 모두 어머니께 드렸다.



곧 공허의 유산이 나오는 데, 다시 우승권에 근접할 자신이 있나.

눈앞의 성적이 좌절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려 한다. 이미 예전부터 공허의 유산을 준비한 게이머도 많고, 다들 지금 이 순간에도 공허의 유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 블리즈컨 무대를 위해 군단의 심장을 연습 중이다. WCS 글로벌 파이널은 16강 통과가 목표다. 8강부터 블리즈컨 무대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승패를 떠나 그 무대에 서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준우승만 했다는 사실이 다행이기도 한 게, 블리즈컨 무대에서 준우승을 하는 거 자체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공허의 유산이 나오면 성적을 못 낼 수 있다. 하지만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근차근 다시 단계를 밟아갈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다시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우승하는 것도 좋지만, 우승할 실력을 인정받아 우승했을 때 모두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정말 많은 일이 있던 한해였다. 큰 무대에서 괜찮다고 안심시켜드리지는 못할 망정 눈물을 보여 더 속상하게 해드려 죄송할 따름이다. 다른 패배보다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 연패가 정말 죄송스럽다.

내년에는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모두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언제나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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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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