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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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태풍을 6년간 '저니맨'으로 만든 KBL 규정

기사입력 2015.05.25 08:52

이은경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6년이다. 전태풍(37)이 KCC에 입단했다가 다시 입단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전태풍은 귀화혼혈선수 규정에 따라 올해 FA 시장에 나왔고, LG와 KCC가 영입을 원한 가운데 전태풍이 KCC를 선택했다.  

전태풍은 2009년 처음 생긴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프로농구(KBL) 무대를 밟았다. 당시 1순위를 뽑은 KCC가 주저 없이 전태풍을 지명했다. 전태풍은 하승진, 강병현 등과 찰떡 궁합을 선보였다. 특히 하승진을 '큰 사람'이라고 부르며 "큰 사람과 경기를 하니까 농구가 편하다"고 자주 너스레를 떨었다.

전태풍은 2009년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KBL 규정은 그를 완벽한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농구에 발을 디딘 선수들은 특별한 규정을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3시즌을 뛴 후 무조건 팀을 옮겨야 했다.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농구에 데뷔한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등이 그 첫 대상이 됐다.

당초 이 드래프트는 농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를 끌어올리고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내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3년 후에는 무조건 팀을 옮겨야 한다'는 규정의 속내는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귀화혼혈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과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결국 KBL 이사회에서 '좋은 선수들 데려와서 두루두루 돌려 쓰자'는 단합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혼혈 선수 중 이동준, 김민수처럼 한국 대학으로 먼저 들어갔다가 일반 신인드래프트를 거친 선수들은 귀화혼혈선수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김효범처럼 캐나다 대학을 나온 재미동포의 경우에도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현재 국적에 상관 없이 한국 선수와 똑같은 규정을 적용받았다.

전태풍은 지난 2012년 1월 KCC에서의 마지막 시즌 때 인터뷰에서 기자들에게 돌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한국 사람이에요, 외국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나는 다른 규정을 적용받아야 해요? 이거 discrimination(차별) 아닌가요?"

당시 전태풍은 평소답지 않게 격앙된 모습이었다. 그는 올 초 인터뷰에서 또 한 번 감정이 폭발했다. 2012년 오리온스로 이적했다가  2013년 KT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전태풍은 선수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KT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KT에서도 3년이 지났으니 또 팀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폭발한 것이다. 그는 "장난은 그만 쳤으면 좋겠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전태풍은 돌고 돌아 다시 KCC로 갔다. 만일 전태풍이 귀화혼혈선수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한국 선수들이 그랬듯 중간에 팀과 불화가 생기거나 갑작스럽게 트레이드 카드로 이용되거나 해서 다른 팀에 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전태풍이 "장난 그만 치라"며 화를 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귀화혼혈 드래프트가 시행된지 6년이 지났다. 초반 1~2년 이후에는 '드래프트'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귀화혼혈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로농구 10개 구단이 모두 한 번 이상 귀화혼혈 선수를 보유하게 됐다. '귀화혼혈 드래프트 1기' 출신이라 할 수 있는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의 나이는 벌써 37세다. 

전태풍은 최근 인터뷰에서 "1번(포인트가드)으로 뛰는 팀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이 말대로라면 선수 구성상 LG로 갈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결국 KCC를 선택한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6년간 3개 팀에서 뛰었는데, 더 이상 또 다른 팀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시위를 한 건 아닐까.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사진=전태풍, 엑스포츠뉴스DB]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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