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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모의 백스테이지] 솔로 여가수 일본 진출사 ① '강수지부터 아이유까지 12년'

기사입력 2012.03.21 09:08 / 기사수정 2013.08.24 21:28

백종모 기자


[엑스포츠뉴스=백종모 기자] 국민 여동생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수 아이유가 일본에 데뷔한다. 아이유는 3월 21일 자신의 대표곡 '좋은 날'의 일본어 버전을 내놓으며 공식적으로 일동 진출을 선언한다.

일본 한류계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유의 일본 진출을 기대하면서도,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바로 아이유가 한류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

그러나 아직까지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일본에서 성공한 가수는 보아 외에는 없으며, 퍼포먼스 실력을 겸비한 가수가 아닌 경우에는 전무하다. 아이유는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일본 활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본에 진출한 솔로 가수들의 사례를 되돌아 보며 이에 대해 짚어 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국내 가수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 째는 계은숙, 김연자 등으로 대표되는 트로트 가수. 둘째는 보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가수다. 아직까지 가창력을 내세운 솔로 가수는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예가 없다.

이미 엑스포츠뉴스에서는 지난 2011년 여름, 걸그룹의 일본 진출 러시에 대해 걸그룹 진출 연재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아이유의 일본 진출을 맞아 특집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아이유 日데뷔 특집 연재 기사 목록

1.솔로 여가수 일본 진출사 ① 강수지부터 아이유까지 12년
2.솔로 여가수 일본 진출사 ② 실력파 가수들의 수난
3.아이유 일본 진출, '그 의미와 3가지 과제'


여성 솔로 가수가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에 필요한 요건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성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12년간 여성 솔로 가수들의 일본 진출 과정과 결과를 돌아보며 답을 찾아 보자.

윤하, 선민 등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거나 윤손하 등 배우 활동에 비중을 두며 가수를 겸업한 경우는 제외했으며 흐름 상 중요한 가수의 사례를 위주로 정리했다.

1980년대 계은숙, 김연자 등이 일본에 진출해 성공적인 활동을 했지만, 한국 출신의 '엔카 가수'로 인식돼다는 한계점이 있었고, 한국의 최신 유행 가요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장은숙이 일본에 진출했고, 이상은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김완선이 1990년에 '람바다'의 한국 버전으로 일본에 싱글 앨범을 냈지만, 오리콘 차트 순위권 내에는 들지 못했으며 더 이상 일본 활동은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진출한 솔로 여가수 중 눈여겨 볼만한 사례는 양수경과 강수지다.



빅뱅보다 19년 앞서 日 신인상 받은 양수경 (1990년 1월 데뷔, 오리콘 최고 29위(이하 주간 순위 기준) 121,640장(이하 오리콘 판매 집계량 기준))

양수경은 빅뱅 보다 무려 19년 전 일본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성공적인 활동을 한 한국 가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붐으로 일본 TV에 한국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되며, 최신 한국 가요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에 트로트 장르가 아닌 한국 가요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이런 배경에서 몇몇 가수가 일본에 진출했고, 양수경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990년 1월 발매된 양수경의 일본 데뷔 싱글 '사랑받아 세레나데'는 오리콘 차트에 26주 연속 등장(29위·이하 오리콘 주간 최고 순위)하며 121,630장(이하 오리콘 집계치 기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곡이 주제곡으로 쓰인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본인의 탁월한 음색과 가창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양수경은 이 곡으로 같은 해 열린 제32회 일본레코드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가요곡신인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싱글 앨범 '언젠가 반드시 미소에'로 61,000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후 일본에서 신곡을 포함, 베스트 앨범 및 한국 가요집 등을 발매하며 롱런했다.



'한국의 실력파 아이돌'로 주목 받았던 강수지 (1995년 6월 데뷔, 오리콘 93위·판매량 3130 장)

강수지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강수지는 일본 데뷔 당시 1995년 6월 '한국의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됐다.

5년이라는 긴 일본 활동 기간을 가진 강수지는 여느 신인 가수처럼 현지의 음악 및 연예 잡지 등에 활발히 등장했다. 1997년에는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GALAXY EXPRESS 999(은하철도 999)'에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며 현지 매스컴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당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수요는 극히 적었고 한국 가수가 굳이 일본에 진출해야 할 명분도 없었다. 한류나 K-POP이 없던 시절 일본에 진출한 강수지는 한국 가수가 아닌 아시아 가수의 범주에 묶여 소개됐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팬들만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을 뿐, 한국의 인기 가수라는 사실이 활동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또한 아이돌로서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뒤늦게 일본에 진출한 것도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쳤다.

강수지는 일본에서 1장의 앨범과 5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지만, 자신의 데뷔 싱글만이 오리콘 주간 93위(판매량 3130장)로 순위권에 올랐을 뿐, 대다수의 앨범이 순위권 밖의 성적에 머무르며 현지 활동을 마쳤다.



보아 '대중가요 한류 흐름 바꾼 주역' (2001년 5월 데뷔, 오리콘 1위·판매량 1,249,197 장)

한국 가수의 일본 활동은 보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만큼, 보아의 일본에서의 성공은 의미가 컸다.

보아는, S.E.S.의 일본 활동 실패를 발판삼아 SM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가수였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보아는 한국 가요계에 안주하지 않고, 15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진출을 감생했다.

보아는 데뷔 싱글 'ID;PEACE B(오리콘 주간 20위)', 두 번째 싱글 'AMAZING KISS(23위)'가 모두 발매 첫 주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일본에 데뷔했다. 이어, 건강 이상 등의 악조건을 딛고 싱글 '마음은 전해진다'와 'LISTEN TO MY HEART'를 잇따라 히트시켰다. 특히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주간 5위를 차지하며 크게 히트했고, 같은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첫 앨범이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후 2집 앨범 'VALENTI'가 오리콘 차트 1위와 함께 약 125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보아는 어린 나이에 일본 진출을 달성한 만큼 오랜 기간 활동하며 일본 대중 문화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그녀가 일본에서 발매한 15장의 앨범(베스트 앨범 포함)과 30장의 싱글 앨범은, 도합 총 771만 6천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이런 보아의 성공은 한국 대중문화의 일본 진출 영역을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요까지 확장시키는 데 있어 든든한 발판이 됐다.



이수영 '일본에서 군림하지 못한 발라드 여왕' (2004년 6월 데뷔, 오리콘 125위, 판매량 1502장)

이수영은 '한국의 발라드 여왕'으로 주목 받으며 일본에 진출했다. 이수영은 소니뮤직 재팬과 당시 파격적인 조건에 3장의 싱글 및 정규 앨범 의 일본 출시 계약을 맺었다.

이수영은 2003년 3월 도쿄 치요다 구에서 열린 해외 문화 교류 이벤트 무대 출연을 통해 일본에 첫 선을 보였고, 준비 기간을 거쳐 1년 3개월 뒤인 2004년 6월 싱글 앨범 '사이고노 와가마마(마지막 이기적임)'을 발매했다.

이수영은 2003년, 5집 앨범과 스페셜 앨범을 합쳐 약 66만 장(한국음반산업협회 집계 기준)의 판매고를 올리며 같은 해 한국 가수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가수. 당시에는 '가요계의 구세주'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국내 음반 시장이 급격한 침체 기미를 보이자 이수영도 해외로 눈을 돌렸다. 당시 보아가 일본에서 성공한 것에 힘입어 한국 가수들의 일본 진출 러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수영도 이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수영은 일본 시장에 대한 관심에 비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케이스였다.

이수영은 현지 음악팬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등한시 했다. 데뷔 앨범 발매일 도쿄와 오사카에서 악수회를 개최했으나 별도의 쇼케이스 행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TV 출연 횟수도 부족했다. 데뷔 전 대규모의 쇼케이스를 열고 수시로 TV에 얼굴을 비쳤던 보아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이수영을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인지하는 현지 팬은 한국 음악을 잘 아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판매량도 그 수준에 그쳤다. 

이수영의 일본 데뷔 싱글은 첫 주 125위(이하 오리콘 기준)에 판매량 1502장을 기록하는데 그치며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데뷔한 아이돌 그룹 쥬얼리(40위·8379장)에도 크게 뒤쳐지는 성적이었다. 이후 이수영이 소속사를 여러 차례 옮기면서 일본 후속 활동은 이어지지 못했다..(2편에서 계속)

[사진 = 아이유, 양수경, 강수지, 보아, 이수영 ⓒ 엑스포츠뉴스DB, 일본 방송화면 캡처, '소와레' 1997년 11월호, SM엔터테인먼트, 이수영 트위터]

백종모 기자 phant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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