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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해동전설(海東傳說)3(1) 스스로 왕따

기사입력 2004.10.23 20:35 / 기사수정 2004.10.23 20:35

김종수 기자

[농구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3(1) 스스로 왕따





“제발 부탁이야. 준수야. 응.”
“하…귀찮아 죽겠네. 저리 안가!”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붙는 정차룡의 태도에 김준수(金峻秀)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소리를 벌컥 내질렀다.

“준수야. 그러지말고,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농구를 같이 배운 사이잖아.”
“싫어, 싫다니까 왜 계속 엉겨붙고 지랄이야.”
“다시 한번 생각해봐. 많이도 말고 하루에 반 시진(時辰:한시간) 정도만 부탁해.”

정차룡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도대체가 포기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끄응…”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진 김준수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길가의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렇게 할거지? 응?”

바로 앞으로 다가온 정차룡이 계속 대답을 재촉했다.(아이…미치겠네. 이것 어떻게 해야되지…) 김준수는 이맛살을 잔뜩 찡그리며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갈등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실 정차룡이 부탁하는 것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반 시진씩만 시간을 내서 따로 농구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 입장에서야 자신도 그날 배운 것을 다시 한번 해 본다는 기분으로 부담 없이 해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정차룡은 아버지가 전주현령인 관계로 여러 가지 장난감이나 먹을 것 같은 것을 공짜로 많이 얻을 수가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기에는 정차룡은 너무나도 지독한 둔재(鈍才)였던 것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까먹고 둘을 알려주면 셋, 넷을 망각한다. 그야말로 가르쳐주는 사람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야, 다 똑같이 배우고 수련하는 것인데 왜 너만 따로 개인지도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야. 그것도 친구한테…너하고 나는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이잖아.”

김준수는 정말이지 정차룡을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뿐 아니라 이미 몇몇의 또래친구들이 정차룡을 가르쳐주다가 답답해서 죽을뻔 했다는 소리를 계속해서 들은 터이니 더 그랬다.

“전병(煎餠)먹고 싶지 않니? 우리 집에 많이 있는데…”
“뭐? 전병.”전병이라는 말에 김준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떡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사족을 못쓰는 자신이 아니던가.

“그래. 내가 전병도 가져다주고 다른 맛있는 것도 매일매일 싸다 줄께. 그냥 그날 배운 것부터 이것저것 조금만 알려줘. 농땡이 안 부리고 열심히 할께.”
“……”
“응? 준수야. 그렇게 하는 거지? 응?”
“알았다. 알았어.”
“우와! 고마워. 준수야.”

할 수 없다는 듯 대답하는 김준수를 쳐다보며 정차룡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쳇! 뭘 이런 것으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자신의 주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정차룡이 김준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대 전병 때문이 아니야. 난 저 멍청이 녀석을 위해서 시간을 냈을 뿐이야.)

어린 나이였지만 김준수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자신이 정차룡에게 농구 개인지도를 해주는 것은 결코 먹을 것 때문이 아니라고…

“우하…미치겠네. 그게 아니라니까.”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에 김준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차룡이 운동신경도 없고 유달리 농구에 소질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 동안 보아서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알려주다 보니 그것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전병이며 여러 가지 과자부스러기를 얻어먹을 때는 좋았다. 하지만 농구를 시작하게 되자 아까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싶을 정도로 속이 울컥울컥 뒤집히고 있었다.

“이 멍청아! 발 밑으로 공을 전달할 때는 항상 수비수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확실하게 발치에다 퉁기라고 했잖아.”
“으…응, 알았어…”
“공을 바닥으로 퉁길 때까지 절대 시선은 아래로 두면 안 된다고!”
“응…시선은 두면 안되지…”
“자식아, 대답만 잘하면 뭐해? 몸이 전혀 안 따라주고 있잖아. 너 바보야?”

나름대로 정차룡은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었으나 그 실력은 또래인 김준수가 보기에도 한숨만 푹푹 나오게 하고 있었다. 기실 김준수 역시도 그렇게 썩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말이었다.일단 김준수는 참고 며칠은 버티었다. 정차룡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먹을 것에 대한 유혹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에이! 씨…나 안 해!”

결국 닷새를 버티지 못하고 김준수는 농구공을 정차룡의 얼굴에다 집어던져 버렸다.

“어떻게 된 것이 그렇게 농구를 못하냐? 저잣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불러다 놓고 가르쳐도 너보다는 낫겠다.”

“킥킥킥…그럴 줄 알았어. 준수 너 고생 많았다. 저런 머저리는 백 번을 알려줘야 맨날 제자리야.”
“몰라. 하여튼 저렇게 운동신경 없는 자식은 처음이야. 밖에서 보니까 한술 더 떠.”

다음날 연무장으로 돌아온 김준수는 이창헌에게 그간의 일을 얘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비 거리가 없어 근질거리던 이창헌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정차룡을 마구 씹어댔다. 평소 이창헌과 함께 패거리를 이루어 정차룡을 못살게 구는 다른 아이들도 속속 모여들어 한마디씩 거들어댔다.

“차라리 농구를 하지 말던가. 저렇게 못하는 것도 기술이야. 정말 못한다니까.”“누가 아니라니, 차룡이 아버님은 무척 농구를 잘 하셨다고 하던데 쟤는 왜 저런 것인지 모르겠어.”
“준수, 명호, 영진이까지 선심 쓰고 저 자식 좀 가르쳐보려고 했던 친구들은 전부 학을 뗐다지?”

이창헌 패거리와 관계없는 다른 아이들도 심심했던지 얘기에 끼어 드는 통에 아침의 연무장은 온통 정차룡 얘기로 가득했다.

“……”

그렇지 않아도 또래들 사이에서 큰소리 한번 못 치고 지내는 정차룡은 더욱더 기가 푹 죽어 구석에서 아무 말 않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텅! 터텅…조수철은 언제나처럼 주변의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농구연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야, 수철아. 너무 연습만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랑 얘기도 좀 하면서 쉬자. 지금 재미있는 얘기하고 있단 말이야.”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조수철을 돌아보며 이창헌이 말했다.조수철은 못 들었다는 듯 계속해서 그물 주머니 쪽을 빙글빙글 돌며 공을 던지고 받았다.

“수철아! 잠시 우리랑 얘기도 좀하고 그러자니까.”

기분이 조금 상한 듯한 음성으로 이창헌이 재차 말했다.

“됐어.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얘기 나눠. 난 익혀야 될 기술이 있어서 말이야.”

그제서야 힐끗 이창헌을 쳐다보며 조수철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리고는 다시 연습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쳇! 뭐야? 잘난척하기는…”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 이창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이창헌이 남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그것은 정차룡 같이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에 국한된 것이지 조수철 같은 농구우등생에게는 감히 덤벼들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루간의 고된 연습이 끝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 정차룡은 서둘러 연무관을 나섰다. 괜스레 꾸물거리다 이창헌 패거리에게 걸리면 피곤해지기 때문이었다.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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