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6-09-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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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그기 귀순’ 이웅평, '반공 아이돌' 됐지만...15억 안 쓰고 북 가족 그리다 48세로 별세 (꼬꼬무)[종합]

기사입력 2026.09.04 17:15

정연주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엑스포츠뉴스 정연주 기자) '꼬꼬무'가 대한민국 전체를 발칵 뒤집었던 '이웅평 대위 미그기 귀순 사건'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의 안타까운 삶을 조명했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239회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으로 꾸며졌다. 

이날 방송에는 리스너로 온앤오프 효진, 가수 청하, 배우 윤유선이 함께해 감시와 공포,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 이웅평의 삶을 따라갔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북한의 초엘리트 군인이자 공군 대위였던 이웅평은 휴가지에서 우연히 라면 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라면 봉지 뒷면에 적힌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은 즉시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남한에서는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에 커다란 의문을 품게 된 것.

여기에 친척 문제로 아버지가 숙청당하면서 북한 체제의 모순을 직감한 이웅평은 결국 목숨을 건 귀순을 결심했다.

1983년 2월, 당시 29세였던 이웅평은 비행 훈련 중 편대를 이탈해 레이더망을 피하는 초저공비행을 감행했다.

대한민국 수도권 전체에 대공 경계경보가 울렸고, 서울 상공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이 그를 에워싸자 이웅평은 항복 신호를 보냈고, 수원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북한의 비밀을 폭로하러 왔다"며 귀순한 이웅평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당시 구소련의 주력 전투기였던 미그기를 통째로 확보했다.

그는 북한의 군사 기밀을 제공한 대가로 당시 고급 아파트 78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인 15억6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고, 공군 소령으로 정식 임관했다.

이웅평의 극적인 귀순 과정에 청하는 "소름 돋는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목숨을 걸고 자유를 선택했지만, 이웅평에게 귀순은 또 다른 두려움과 그리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후 이웅평은 한 해 900회가 넘는 안보 강연에 나서고, 한 행사에 150만 명이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며 이른바 '반공 아이돌'로 불렸다.

하지만 화려한 삶 뒤에는 끊임없는 공포가 따라다녔다. 암살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독극물 테러를 걱정해야 했고, 국가기관의 감시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웅평은 첫눈에 반한 과외교수의 딸 박선영 씨와 결혼했다. 아내 박선영 씨는 신혼집에 설치된 도청 장치를 직접 뜯어내고 보안 사령관을 찾아가 항의하는 강단을 보였고, 이웅평은 아내의 도움으로 비로소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웅평은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탈북민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7년 함경북도 청진 의과대학 의사 김만철 씨 일가 11명이 일본 해역에서 표류한 끝에 대만으로 이송됐을 당시에는 정부의 비밀 특사로 대만에 파견돼 김만철 씨를 설득, 대한민국 귀순을 이끌어냈다.

이후 귀순 군인은 물론 간첩까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일상을 공개하고 전향을 돕기도 했다. 북한 주민과 군인들이 자유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절마다 가족사진을 찍어 대북 전단에 실어 보내기도 했다.

이를 들은 윤유선은 "굉장히 용감하다"며 두려움 속에서도 행동으로 옮긴 이웅평의 삶에 감탄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전투기 한 대와 함께 자유를 찾아왔던 29세 청년은 이후 평생 고향에 남은 가족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러나 1997년 간경화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이웅평은 또 한 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였다.

아내의 노력 끝에 당시 국내에서는 최초나 다름없었던 간이식 수술을 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수술을 앞둔 이웅평은 "통일을 못 봤다"며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던 누나를 비롯해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남한에서 얻은 명예와 부가 커질수록 북에 남겨둔 가족을 향한 그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귀순 당시 받은 15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일 이후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남겨뒀을 만큼 가족을 향한 그의 마음은 컸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이웅평은 2002년 향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를 본 윤유선은 "너무 허망한 죽음"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방송 말미 이웅평의 아내 박선영 씨는 "그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과 울림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남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해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방송 이후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웅평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 흘리면서 봤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했다는 게 마음 아프다", "이웅평과 아내의 러브스토리도 한 편의 영화 같다", "자유란 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얻기 힘든 것",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용기가 대단하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사진 = SBS 

정연주 기자 jyj420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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