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삼성생명·세계 1위)이 마침내 세계 정상에 다시 섰다.
왼쪽 발 부상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디펜딩 챔피언'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세계 2위)를 완파하며 3년 만에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드민턴 여자단식 세계 1위 안세영은 23일(한국시간)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야마구치를 게임스코어 2-0(21-17 21-14)으로 제압했다.
이날 승리로 안세영은 생애 두 번째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챔피언이 됐다.
2023년 남여 통틀어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 위업을 일궈냈던 안세영은 이제 두 번째 금메달까지 목에 걸면서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아울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2023년 개최), 2024 파리 하계올림픽 금메달, 지난 4월 2026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일궈낸 '커리어 그랜드슬램' 위에 또 하나의 그랜드슬램 쌓아나갈 기반을 마련했다.
안세영의 이번 대회 우승은 무엇보다 불의의 부상을 딛고 일궈낸 쾌거 아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안세영은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왼쪽 발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 여파로 지난달 일본 오픈(슈퍼 750)을 도중에 기권했고 중국 오픈(슈퍼 1000)에도 출전하지 않으면서 세계선수권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세계선수권 개막 앞두고도 안세영의 몸 상태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안세영은 대회 직전 훈련과 기자회견 등에서 통증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밝히는 등 스스로도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안세영은 경기력으로 우려를 지웠다. 경기를 치르면서 컨디션이 살아나고 부상 트라우마를 지우며 자신감이 솟아 올랐다. 4강까지 모든 경기를 2-0으로 이기며 결승에 올라갔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야마구치를 완파하며 정상 탈환을 해냈다.
야마구치와의 대결 역시 수비와 체력이 좋은 안세영이 1게임 상대의 저항을 뚫은 뒤 2게임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다만 달라진 것은 안세영이 156cm 단신 야마구치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공세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안세영은 먼저 2점을 연달아 따내면서 기분 좋게 1게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야마구치가 곧바로 따라붙으면서 4-4 동점이 됐다. 4-5로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7-6으로 다시 앞서갔다.
안세영은 7-7 동점 상황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다시 흐름을 탔다. 10-8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야마구치의 범실을 유도했고, 11-8로 앞선 채 인터벌에 들어갔다.
위기도 있었다. 휴식을 마친 뒤 12-9에서 야마구치에게 3점을 연달아 내주면서 12-12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흐름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에서 안세영은 곧바로 3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다시 달아났다.
야마구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끈질기게 안세영을 추격하면서 다시 리드를 가져오는 등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다행히 안세영은 16-17에서 야마구치의 연속 범실 등을 묶어 4점을 연달아 따내고 전세를 뒤집은 것은 물론 순식간에 게임포인트를 얻었다. 이어 야마구치의 샷이 라인 밖으로 벗어나면서 21-17로 1게임을 가져갔다.
2게임에서 선취점을 가져간 건 야마구치였다. 야마구치는 먼저 3점을 연달아 따내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안세영은 빠르게 따라붙었다. 5-6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해 2게임 들어 처음으로 리드를 잡았다. 야마구치가 곧바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안세영은 다시 4점을 연달아 따내며 11-7로 달아났다.
이로써 안세영은 1게임에 이어 2게임에서도 리드를 잡은 채 인터벌에 들어갔다.
인터벌 뒤부턴 안세영의 쇼가 펼쳐졌다.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찌르는 안세영 공격에 야마구치는 몇 번이나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야마구치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무너트린 안세영은 20-14를 만들어 매치포인트에 접어들었다. 이후 마지막 1점을 얻어내자 양 손을 펼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번 우승은 안세영이 2026년에도 여자단식 최강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결과이기도 하다.
안세영은 올해 국제대회에서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시즌 초부터 연이어 결승에 진출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경쟁자들과 격차를 벌렸다.
그런 안세영에게 세계선수권은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과 함께 배드민턴 선수에게 가장 권위 있는 무대 중 하나다. 안세영 역시 다시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부상 이후 월드투어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까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고, 이는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결과로 돌아왔다.
안세영은 올해 국제대회에서 44승1패, 승률 97.78%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3월 전영 오픈(슈퍼 1000) 결승에서 왕즈이에 0-2로 딱 한 번 패했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 야마구치를 꺾었다는 점도 이번 우승의 의미를 더했다.
안세영과 야마구치는 오랜 시간 세계 여자단식 정상에서 경쟁해 온 라이벌이다. 안세영이 지금처럼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성장하기 전에는 야마구치가 좀처럼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다.
커리어 초반 안세영은 야마구치를 상대로 연이어 고전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향상되면서 조금씩 격차를 좁혔고, 최근에는 오히려 야마구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세계선수권 결승이라는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다시 만난 두 선수의 승부에서도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안세영이었다.
안세영은 이번 승리로 야마구치와의 통산 상대전적을 20승15패로 벌리는 동시에 최근 맞대결 연승 기록도 6경기로 늘렸다.
무엇보다 야마구치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던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안세영은 세계선수권 왕좌를 지키려는 야마구치를 결승에서 직접 쓰러뜨리고 3년 만에 정상 자리를 되찾았다.
더불어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통산 우승 횟수를 2회로 늘리면서 한국을 넘어 세계 여자단식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했다.
특히 이번 우승으로 안세영은 세계랭킹 1위의 자격을 다시 한번 결과로 증명했다. 2024 파리 하계올림픽에 이어 세계선수권에서도 다시 정상에 오르면서 여자단식 최강자의 위상을 더욱 굳혔다.
안세영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천위페이(현 세계 4위)를 만나 0-2로 충격패를 당하고 3위에 그쳤다. 천위페이가 경기하다가 발목을 삐는 악재까지 맞았음에도 무너졌다.
이번 우승으로 지난해 세계선수권 아픔도 말끔히 지웠다.
안세영이 놀라운 점은 그가 아직 24세라는 점이다. 이미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무대에서 정상에 오른 안세영은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나이에도 세계 배드민턴 역사에 남을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안세영은 귀국 뒤 남은 부상 재활 프로그램 등을 소화한 뒤 다음달 19일 일본에서 개막하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나선다.
관건은 9월1~6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BWF 월드투어 중국 마스터즈 출전 여부다. 단식 세계 1~15위가 의무 참가해야 하는 슈퍼 750 레벨의 대회로, 안세영은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데, 코칭스태프는 쉬어가는 쪽을 권유하고 있다. 반면 안세영은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서 출전하는 쪽을 고려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