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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되네"…웹툰·창극·드라마까지 다 되는 여성서사 ['정년이' 온다①]

기사입력 2024.01.29 19:50 / 기사수정 2024.01.30 08:24



2024년 갑진년, 여성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꿈의 캐스팅으로 드라마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정년이'가 옵니다. 다양한 여성들이 지지고 볶으며 극을 주도하는 '정년이'에 많은 이들이 성원하고, 응원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성서사'하면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웹툰 '정년이'가 가진 힘, 드라마 '정년이'를 통해 새롭게 더해질 힘까지. 드라마화 '정년이'가 오기 전, 원작 작가들을 통해 먼저 만나봤습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조혜진 기자)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최고의 대중예술로 인기를 얻었지만 수십 년 후엔 실재했다는 사실조차 잊혔던 여성국극이 2019년 웹툰으로 되살아났다. 

2019년부터 4년간 연재된 네이버웹툰 '정년이'(글 서이레, 그림 나몬)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꿈꾸고, 갈등하고, 성장하고, 사랑하며 극을 주도하는 여성서사로 연재 내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 사이 입소문을 탄 웹툰은 2023년 창극으로 살아나 관객과 대면했고, 2024년엔 드라마로도 시청자들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매력적인 '정년이' 속 여성서사를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로 말아주게 만든 주된 소재 '여성국극'은 창극의 한 갈래로 남역(男役)까지 모든 배역을 전원 여자가 맡는다는 것이 특이점.

이레 작가는 "전공 공부를 하다가 여성국극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모든 점이 흥미로웠다. 무대 위에서 남성을 수행하는 여성, 그 여성에게 깊이 매혹당한 여성 팬들, 그리고 여성으로만 구성된 극단 내부 이야기까지. 사람들에게 이런 재미있는 장르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고 이를 소재로 택한 이유를 밝혔다.

나몬 작가는 "과거 상당히 부흥했던 전통 예술이 이렇게 현재 잊혀졌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레님이 말씀하신 특성들이 재밌게 느껴졌고,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것이라 예감했다"고.

그의 예감처럼 때마침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던 흥미로운 소재에 많은 이들이 반응했다. 현재는 잊힌 예술 장르인 여성국극은 웹툰과 창극에 이어 드라마로 더 많은 대중과 만나게 됐다. 연재를 마치면서, 창극을 올리게 되면서, 드라마화를 확정 지으면서 원작작가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뿌듯함도 있었을 터.

이레: 이게 말이 되나?(웃음) 처음 나몬님과 작업을 시작할 때 '무대극이니 무대 위에 올라간 모습을 보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창극 초연을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도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역시 너무 좋다. 감사합니다. 

나몬: 사실 작업 초입에는 '완결만 해내자'가 목표였다. 무대화나 영상화 뭐든 되면 좋지만, 그건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이뤄지는 일도 아니고 큰 기대를 품은 적은 없었다. 창극화는 생각보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 무대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도 그렇지 않을까? 진행이 되고 있음을 알지만 실감이 되진 않는다. 그저... '이게 되네. 너무 신기하다'란 생각뿐이다. 



무대화, 영상화가 실제로 일어나게 만든 건 원작 웹툰 '정년이'가 가진 힘이 분명했기에 다능했다. 주인공 윤정년은 '소리 재능'을 타고나 여성국극단에 입단,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점차 다듬어지며 성장을 이뤄낸다. 이 과정을 끌어가는 정년이를 비롯한 주요 인물은 모두 여자로, '정년이'는 여성들의 꿈과 성장, 사랑과 연대까지 아낌없이 담아내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인물을 만드는 데 주요하게 작용한 것은 '소수자의 경험'이다. 서이레 작가는 일종의 양자매 관계인 여학교 내 'S자매 문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양자매를 맺으면 서로 애틋하게 돌봐주는가 하면 연인 관계처럼 질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혼 소식에 격분하기도 했다. 1920~30년대 조선 여학교에서 여학생들이 S언니와 S동생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문화는 내가 여중을 다닐 때에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는 S자매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소수자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6.25 참전 여군이나 유식자 계층 여성의 기생혐오 등 여성이라서 겪는 일, 심지어 당사자마저도 소홀히 여기곤 하는 감정, 사건을 건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많은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나몬 작가는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정년이'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나온다. 각기 다른 성격과 서사들을 지니고 있는데,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남성을 연기하는 여성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이 해석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들이 관찰한 애티튜드의 차이를 무대마다 잘 갈아입히려 노력했다. 또 실제 여성들이 그러하듯 다양한 외형으로 그리려 했다"는 말로 섬세한 작업 과정을 엿보게 했다.

이처럼 섬세하고 치밀하게 탄생한 캐릭터들이 모여 완성된 '정년이'에 그 시절 여성국극처럼, 많은 여성들이 환호했다.

창극으로, 또 드라마로 계속해서 꺼내지는 '정년이'만의 힘에 대해 이레 작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독자분들이 더 잘 아시지 않을까?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얼떨떨하다"면서도, "내가 '정년이'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인물이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그물처럼 엮인다. 쓰는 입장에서 여러 인물을 다루는 재미가 있었다. 한 인물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면 비로소 그 인물을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몬 작가 역시 "다양한 캐릭터들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각 캐릭터들이 여성 국극을 통해 이뤄내려고 하는 꿈의 형태들이 다 다르다. 욕망과 갈등이 다르다 보니, 같은 목표가 생겼어도 그 풀이 과정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재미가 생기는 것 같다"고 짐작했다.



각기 다른 꿈을 꾸고, 행동하는 방식도 제각각인 여성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처음 웹툰이 나왔던 2019년엔 '정년이'가 여성서사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면, 드라마가 나올 2024년엔 보다 다양해진 서사들이 목을 축이게(는) 해주고 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정년이'로 웹툰계 여성서사 선봉장에 섰던 이들은 대중문화 안에서 여성서사가 얼마나 대중과 가까워졌다고 느낄까.

이레: 2015년쯤 데뷔했다. 데뷔작 '보에'는 여성 두 명이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이야기인데, 당시 악플이 좀 달렸다. 아마 주인공 중 한 명이 유리천장에 부딪혀 퇴사한 배경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남동생이 댓글창을 보고 누나는 어떻게 연재를 하냐고 물어봤다. 그땐 악플도 좋았다. '아무도 관심이 없지는 않구나!' 싶어서. 이후로도 꾸준히 여자들이 나와서 뭔가 하는 이야기를 해왔지만 다들 별 관심이 없었다. '정년이' 연재 직전까지 이직을 고민했다. 그때에 비하면 확실히 지금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에 따른 여러 새로운 문제들도 발생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문제도 안 생긴다. 지금이 낫다.

나몬: '정년이'가 연재를 시작한 2019년쯤이 여성 서사에 대한 갈망이 높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나 역시 더 많은 여성 캐릭터들을 만나길 기대하는 독자 중 한 명이었고. 연재하면서 여성 서사 카테고리로 함께 호명되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남을 느꼈다. 이전엔 드물었던 '여성 서사'라는 타이틀이, 이젠 그렇게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다행이고, 앞으로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몬 작가의 말처럼, 이제는 '별스럽지 않게' 다양한 여성서사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이든 빌런이든 감초든 전형적이지 않은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도 늘고 있다. 여성서사라는 점 하나만으로 괜히 더 반갑게 응원하고, 기대하는 대중도 많아졌다. 이레 작가는 여성서사가 가진 힘을 묻는 질문에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과 tvN '지구오락실2'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레 작가는 그 두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봤다"며 "특히 '사이렌'은 몇 번을 다시 봤나 모르겠다. 사실 포맷만 놓고 보면 비슷한 예능은 얼마든지 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만으로도 새로운 캐릭터와 서사가 생겼다. 숨겨진 존재에게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이 모든 소수자 서사의 힘 같다"고 말했다.

나몬 작가는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라 생각한다"며 "아직 쓰이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들이 많이 있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아직 꺼내질 이야기가 무한하다는 고무적인 관점의 해석을 내놨다.




하나의 이야기 '정년이'는 여러 변신을 거듭하며 여성서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로도 새롭게 다듬어질 작품에 대해 나몬 작가는 드라마 '정년이'의 메시지는 "마지막 화까지 다 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해석을 미뤘다.

이레 작가는 "얼마 전 '씨네21'에 실린 정지인 감독님 인터뷰를 읽었다. 아무래도 웹툰은 여러 인물의 면면을 표현하기 좋지만 드라마는 어려운 것 같다. 보다 윤정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편됐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배우가 생각하는 윤정년이 더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어떤 윤정년을 보여주냐가 메시지와도 연결될 것 같다"는 말로 드라마 정년이를 향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웹툰과 창극, 드라마로 다시금 여성국극이 꺼내진 것처럼, 2024년 '정년이'와 윤정년을 통해 여성서사를 통한 연대의 힘도 계속해서 꺼내지지 않을까.

사진=네이버웹툰, 국립극장 홈페이지, 각 소속사

조혜진 기자 jinhyej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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