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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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감독 별세…'붉은 악마' 알린 지도자

기사입력 2023.10.08 12:39 / 기사수정 2023.10.08 13:02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끌면서 세계 축구계에 '붉은 악마'를 알린 박종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5세.

대한축구협회는 8일 "박종환 원로가 7일 오후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박 감독은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를 졸업하고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선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와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박 감독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었던 전남기계공고 지휘봉을 잡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다. 이후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차례 국내 무대 정상 등극을 이뤘던 박 감독은 1980∼1983년 청소년대표팀(현 U-20 대표팀)을 맡아 두 차례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박 감독은 처음 나선 1981년 호주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선 1승2패로 물러났으나 첫 경기에서 유럽 최강 이탈리아를 4-1로 대파해 시선을 모았다. 최순호 현 수원FC 단장이 당시 이탈리아전에서 두 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면서 대승의 주역이 됐다. 이후 루마니아에 0-1, 브라질에 0-3으로 패하고 귀국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선 달랐다.

한국은 16개 팀이 본선에 오른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져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홈팀 멕시코를 2-1로 잡은 뒤 호주도 2-1로 이겨 스코틀랜드에 이어 A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이어 열린 준준결승에선 신연호 현 고려대 감독의 멀티골에 힘입어 성인 월드컵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한 우루과이를 2-1로 따돌리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박 감독이 대회가 고지대 멕시코에서 열리기 때문에 한국에서부터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도록 한 것은 유명하다.

준결승에서 둥가와 베베투 등이 포진한 '최강' 브라질을 맞아 1-2로 졌지만 이 대회에서 보인 한국 축구는 기동력과 패스워크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는 현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 이름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박 감독은 4강 신화 뒤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했으나 성적을 썩 좋지 않았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도중 하차, 라이벌 김정남 감독이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이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는 일도 있었으며,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선 4강에서 이란에 패해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은 그의 대표팀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쓴 맛을 본 무대였다. 박 감독은 1989년 신생 프로팀인 일화를 맞아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1993년부터 3년 연속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해 지도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런 상승세를 이어받아 1996년 초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으며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8강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상대 간판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에 4골이나 내주는 치욕을 맛봤다. 이란 축구팬들이 지금도 한국전을 떠올릴 때 거론하는 경기다.

이후 박 감독은 1999년 여자축구팀 숭민 원더스 단장을 맡아 여자축구와 인연을 맺었고 2001년 창립한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엔 월드컵 붐과 함께 새로 생긴 대구시민프로축구단(대구FC) 초대 감독, 2013년 일화 해체 뒤 시민구단으로 재탄생한 성남시민프로축구단(성남FC) 초대 감독에 연달아 오르며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대구FC에선 나름 강팀 잡는 다크호스로 팀을 조련해 각광을 받았다. 성남FC에선 선수 폭행 논란에 연루돼 조기 하차했다.

박 감독은 수원 유신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 생활도 했으며, 1971~1979년 국제 축구 심판으로도 활동할 땐 주심으로서의 능력도 인정 받아 당시 국내 최대 라이벌전이었던 연·고전 축구 심판에도 단골로 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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