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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퍼 존스와 붙었던 스물둘 막내의 조언 "자기 자신 믿어라" [WBC 리와인드]

기사입력 2023.03.08 12:00



(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2005년 연말. 태국에서 훈련 중이던 전병두 현 KT 위즈 2군 투수코치는 절친한 선배 정재훈(현 두산 투수코치)으로부터 뜻밖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야구 월드컵을 표방한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초대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전 코치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WBC 대회 자체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는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전부인 줄만 알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전 코치는 당시 프로 4년차였다. 2003년 두산에서 데뷔한 이후 2005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KIA로 이적한 뒤 49경기 3승 2패 5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00으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스스로 '국가대표'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투수코치였던 선동열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전 코치의 구위와 잠재력을 믿었다.

전 코치는 실제로 2006 WBC에서 중용됐다. 미국 애너하임에서 치러진 2라운드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3-1로 앞선 4회초 선발투수 손민한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국가대표 첫 등판은 메이저리그 올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한 미국을 상대로 이뤄졌다.

전 코치가 처음으로 마주한 타자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레전드 강타자 치퍼 존스. 전 코치는 긴장한 듯 제구가 흔들리며 볼넷을 내줬다. 

전 코치는 "미국전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선동열 감독님께서 저를 많이 칭찬해 주신 것도 있었고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됐다. 프로 첫 등판 때처럼 긴장을 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눈앞에 치퍼 존스만 보였다"며 "치퍼 존스는 어릴 때 TV로만 봤던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당시에는 크게 생각을 못했지만 끝나고 나니 내가 대단한 타자를 상대해서 영광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 코치는 다음 타자 제이슨 배리텍까지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전 코치의 컨트롤이 잡히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도 석연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타자는 2005 시즌 텍사스에서 43홈런을 쏘아 올렸던 마크 테셰이라였다. 그러나 전 코치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테셰이라를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한국에 귀중한 4회초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한국 벤치는 곧바로 투수를 김병현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병현이 맷 홀리데이와 버논 웰스를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전병두와 한국 모두 한숨을 돌렸다. 이후 4회말 터진 대타 최희섭의 3점 홈런으로 6-1까지 달아나며 승기를 굳혔고 미국을 7-3으로 꺾는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만들어졌다.

전 코치는 "테셰이라까지 볼넷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했다. 심판 콜이 계속 뭔가 이상했는데 약간 빠졌다고 느꼈던 공을 삼진을 줬다"고 웃은 뒤 "김병현 선배님이 뒤에서 잘 막아주셔서 고비를 넘겼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 코치의 가슴 떨리는 순간은 계속됐다. 2라운드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맞선 6회초 등판했다.

선두타자 가와사키 무네노리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스즈키 이치로의 희생 번트로 1사 2루로 상황이 악화됐지만 니시오카 츠요시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아웃 카운트 2개를 책임졌다. 이어 미국전처럼 김병현에 바통을 넘겼고 김병현이 실점 없이 6회초를 매듭지었다.

전 코치는 "미국전이 끝나고 마음이 괜찮아졌다. 일본은 좌타자가 많고 미국 선수들처럼 체격이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당시 이치로를 빼면 일본 선수들을 다 몰랐다. 위압적인 느낌을 못 받았고 내 뒤에 좋은 선배님들이 많으니까 부담 없이 던졌다"고 설명했다.

스물두 살 어린 시절 WBC 무대를 뛰어본 결과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이번 WBC에 출전하는 소속팀 투수 소형준, 고영표 두 사람에 가장 해주고 싶은 말로 "자기 자신을 믿어라"를 주저 없이 꼽았다.

전 코치는 "이번 대표팀에 어린 투수들이 많지만 기량이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뽑혔다. 너무 긴장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어떤 타자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공을 던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덕담을 건넸다.

또 "자기 뒤에 좋은 형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형들의 조언을 잘 듣고 자기를 믿고 게임에 임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WBC가 기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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