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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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받는 은혜 씨'…서동일·장차현실 "가장 감동 받은 건 우리 부부죠" [엑's 인터뷰②]

기사입력 2022.06.18 10:50 / 기사수정 2022.06.18 03:59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카페에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를 입은 정은혜가 영화감독이자 아버지인 서동일 감독, 만화가이자 어머니인 장차현실 프로듀서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배우로 직접 참여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에 이어 23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감독 서동일)의 개봉을 앞두고 쏟아지는 방송 출연 요청 등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정은혜는 샌드위치와 음료로 늦은 아침을 마저 먹으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날도 경기도 양평 집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바삐 움직였다고 말한 서동일 감독은 "다행히 오늘은 차가 많이 안 막히더라고요. 아침마다 전쟁이죠. 은혜 씨가 새벽 2, 3시에 잠들거든요. 원래는 안 깨우면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 일어나요. 지금은 저희가 (같은 양평이지만 집은 다른) 따로 살고 있거든요. 요즘에는 이런 인터뷰 일정들이 생기니까, 이전에는 '은혜야, 일어나야지' 했는데 지금은 '은혜 씨, 7시예요. 일어나시고 준비하세요. 데리러 갈게요' 그러죠. 로드 매니저 같은 역할이라고 해야 할까요"라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각자의 개성을 아름답게 표현해 온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의 통통 튀는 일상을 담은 '니얼굴'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2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및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우수상, 2021 씬라인페스트에서 인터내셔널인스퍼레이션어워드를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3년여 간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활동하며 약 4천 명의 미소를 그려온 정은혜의 작품세계부터, 남다른 긍정 에너지로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포착한 '니얼굴'은 아티스트이자 인간 정은혜의 생동감 넘치는 일상을 전하며 시선을 모은다.

정은혜는 "사람이 다 다르게 생겼잖아요. 나쁘게 생긴 얼굴은 없었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바빠진 일정에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그림을 많이 못 그려요"라고 덧붙이는 정은혜의 말에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지금 그려야 할 그림이 많이 밀려있어서 큰일이네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샌드위치로 요기를 마친 정은혜는 말을 이어가며 동시에 뜨개질을 시작했다. 초록빛과 보랏빛이 담긴 털실로 능숙하게 뜨개질을 이어가던 정은혜는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이에요"라며 계속 바삐 손을 움직였다. 


서동일 감독은 "은혜 씨가 동료작가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 월급을 받으면서 그리는 것이죠. 매일 출근해서 4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퇴근하는데, 그 직장 생활을 20명의 동료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그 현장에 전담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휠체어를 타신 분이 전담 인력을 맡고 있는데, 그 분의 여자친구를 주려고 하는 것이죠"라고 설명을 더했고, 정은혜는 "친하고 좋아해요"라고 또박또박 얘기했다. 

'니얼굴'에서는 여름과 겨울까지 덥고 추운 날씨를 가리지 않고 그림에 매진하는 정은혜의 모습이 등장한다. 현재는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11기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인 정은혜가 한겨울 추운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며 더욱 거칠어진 손이 화면 밖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안타까움과 걱정을 함께 안긴다.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예전에는 뜨개질을 많이 해서 손에 있는 굳은 살이 떨어져나가기도 했어요.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피부가 많이 건조하거든요"라며 "눈보라가 치는데도 마켓이 열린 때가 있었어요. 그 마켓의 모토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계속 열리는 것이거든요. 텐트가 붕 날아갈 정도가 됐는데도, 은혜 씨는 그걸 붙잡고 매달리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인 것 같다'는 말에 서동일 감독은 "지금도 강해요. 그 현장을 견뎌냈기 때문에 지금의 은혜 씨가 있을 수 있었다고 보죠"라고 조용히 한마디를 거들었다.


정은혜의 그림 재능을 확실히 보게 됐던 때를 떠올린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정확히 기억해요. 2013년 2월 23일이었나요. 제가 운영하는 화실에 은혜 씨가 왔어요. 그 전에는 그냥 화실에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좋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은혜 씨가 그린 향수 광고 모델 초상화를 본 순간 '이 사람이 엄청난 재능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소름이 돋았죠. 저희 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 그래서 서 감독님은 카메라를 든 것이고 저는 만화를 그린 것이에요"라며 웃었다.

이어 "부모인 우리조차도 이 사람에 대한 선입견, 고정관념들이 있었구나 싶었어요. 가장 먼저 감동받은 것은 우리 부부일것이에요. 은혜 씨의 이런 여러 가지 활동에 있어서 1차적인 감동을 받은 존재들이요. 저희는 지금 그것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하는 것이죠"라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은혜 씨가 어머니의 그림 실력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에는 "은혜 씨는 더 원초적인 방식의 그림을 그려요. 직관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못 따라가겠어요. 제가 주눅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은혜의 그림들을 보면서 가끔 몰래 흉내내기도 해봐요. 한동안은 나의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었는데, 저는 사실 지금이 행복한 것 같아요. 은혜 씨와 같은 발달장애인들과 같이 그림 작업을 하고 기회를 이끌어내는 것이요"라고 미소를 보였다.

서동일 감독과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인터뷰 내내 딸 정은혜를 '은혜 씨'라고 깍듯한 존칭을 사용해 불렀다.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혹시나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조심스레 묻는 말에 서동일 감독은 "'은혜 씨'라는 호칭은 엄마(장차현실 작가)가 먼저 썼어요. 어느 댓글에, 엄마가 딸을 '은혜 씨'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딸을 존중하는 것 같은 모습이 좋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그렇게 부르게 됐죠"라고 말했다.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은혜가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인데, 어디를 같이 가면 아이 취급을 받기도 하죠. 생각의 정도가 낮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린아이 대하듯 그렇게요. 그래서 일단 가족이, 엄마가 먼저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성인이에요'라는 생각으로 '은혜 씨'라는 호칭을 부르게 됐어요. 그러면 은혜 씨 본인도 '내가 어른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얘기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 이어 '니얼굴' 개봉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대중의 응원을 받으며 힘을 얻고 있는 요즘이다. 장차현실 작가는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희망이 돼요'라는 말이에요. 저도 그랬고, 장애인의 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가늠할 수가 없잖아요. 젊은 어머니들은 롤모델을 찾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은혜 씨가 좋은 롤모델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은혜는, 삶이 탄탄대로가 아니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나서 겪어야 할 어려움과 힘듦은 다 겪은 것 같아요"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어 "저희의 바람도 그런 것이죠. 결국은 시선의 문제잖아요. 영화를 보면 어떤 엄마의 잘 키워진 딸이 아니고, 그 사람 본연의 힘과 에너지를 갖고 스스로의 삶을 갖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주변의 사람과 그 가족들도 그 사람을 대하는 시선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주 작은 자발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부분이 시작이라는 그런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그리고 결국은, 이것이 부모나 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장애의 불행은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 준 불행이라는 것이 더 강하죠"라고 덧붙이며 이러한 시선을 담아낸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서동일 감독도 "자기 반성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과거에 특수교육을 하셨던 분이나 발달장애와 연관된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 과거에 잘 해주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반성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알고 있고요. 특히 형제자매가 있으면 그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그런 계기도 된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오는 8월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 전시회 제목은 '포옹전'으로, 그동안 정은혜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 포옹한 모습들을 담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준비는 다 했냐'는 말에 "많이 그려놨죠"라고 쑥스럽게 답한 정은혜는 "(전시회 같은 행사를 하면) 사람들 만나는 것 좋아요.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좋죠. 같이 커피도 마시고"라고 수줍게 말을 더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정은혜가 걸어갈 길에 묵묵하고 또 당당하게 함께 할 장차현실 프로듀서는 "공교롭게도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가 방송되는 시점에 장애인과 관련한 여러 안 좋은 소식들을 뉴스에서 많이 접하게 됐었죠. 그런데 드라마로, 은혜 씨를 통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와 동시에 또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발달장애인이 갖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라고 짚었다. 

이어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의 불행은 그들이 정말 불행해서가 아니고, 사회가 만들어 준 불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것이 좋은 시작이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그런 관심의 시작점이 되고 또 관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게 된다면 더 좋겠죠. 만약 내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졌을 때 울면서 '도와 달라'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매너 있게, 장애인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선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더 손을 내밀어준다면 왜 그렇게까지 불행하겠어요. 그런 세상이 좀 앞당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은혜 씨도, 그런 세상에서 노년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라고 진심을 표현했다.

사진 = (주)영화사 진진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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