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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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 세계] 촌놈 양길영, 합기도 관장 꿈꾸며 상경

기사입력 2011.03.16 23:53 / 기사수정 2011.03.16 23:53

무카스 기자

양길영 무술감독
양길영 무술감독
[엑스포츠뉴스/무카스=양길영 객원 칼럼리스트(무토액션스튜디오 무술감독)] “스턴트 세계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우리할 일을 했을 때 더욱더 빛이 난다” 양길영 무술감독의 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턴트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중 “다시 군대에 온 것 같다”, “생각보다 위험하다”,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한다. 또 스릴을 즐기기 위해 하는 젊은이들도 있으나, 스턴트 인들은 부상을 항상 달고 산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며, 누구도 알아보지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스턴트인’들이다. 20여 년의 스턴트 인생, 잔뼈가 굵은 양길영 무술감독과 스턴트 세계로 떠나보자. <편집자 주>

무술계의 입문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친한 친구가 무술 도장을 다니기에 저도 따라 배웠습니다. 한참 무술에 호기심이 많은 나이,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외아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되는 마음에 보내주셨죠. 그런데 지금은 “합기도장에 보내신 일을 가장 후회 하신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그때부터 무술에 푹 빠졌던 것 같습니다. 제법 운동신경도 있었고, 자신감도 넘쳤죠. 그렇게 무술에 푹 빠져 있던 시절, 저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합기도장 관장이 되는 것이었죠. 다소 소박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무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공부는 뒷전이고 학교가 끝나면 쏜살 같이 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시절이라 밤늦게까지 합기도장에서 수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였습니다. 1시간 정도를 자전거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인데도 정말 힘든 줄 모르고, 매일같이 다녔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수련하는 날이면 집안은 발칵 뒤집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서 그만두기를 권유했지만, 저는 꿈을 위해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때 머릿속에는 관장님이 최고였고, 관장님처럼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혈기왕성한 20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꿈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도장을 차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참 이상만 쫒고, 현실을 보지 못한 제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돈을 벌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에 사회생활의 첫 경험이 시작됐죠. 진짜 열심히 일했습니다. 낮엔 남원에 위치한 상 만드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밤엔 도장에서 수련을 했습니다. 다시 한발 한발 꿈을 키워나갔죠.

그렇게 열심히 일과 수련을 계속하던 어느 날,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나뭇결을 미는 전기 대패에 왼손검지 끝이 잘려나가는 부상을 당했죠.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전부 잘려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관장님과 선배님들이 서울에 있는 도장을 소개해 주시며 올라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 당시 시골 도장에는 월급을 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서울은 월급도 주고 더 많은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서울에 있었죠.



그렇게 1992년 2월 9일, 단돈 2만 원을 주머니에 넣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니까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난 늘 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세상엔 네가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렇게 강남역 뒤편에 있는 합기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날로부터 새벽 5시 반부를 가르치고, 바로 도장 옆 운전학원에서는 종일 전진, 후진 교육을 시키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저녁 7시 반과 9시 반부가 끝나면 그때서부터 개인수련을 하다 도장 매트 위에서 곯아떨어지곤 했습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힘들게 일하고 지쳐 자는 장면이 나오면, 이때를 떠올리며 코끝이 찡해지곤 합니다. 정말 이때는 힘들기는커녕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촌놈이 서울 생활이 그리 넉넉지 않았고, 만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생전 처음 타는 지하철은 낯설고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조그마한 시골에서만 생활하던 촌놈이 강남 생활은 너무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적응이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합기도장을 찾았을 때 가슴을 뛰게 했던 것처럼 제 마음을 설레는 일이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 내 꿈을 뒤로 미룰 만큼 내 마음을 잡아끄는 일을 말이죠.

[글] 무카스 제공

 



무카스 양영길 객원 칼럼리스트(무토액션스튜디오 무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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