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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기자단] 늘 푸른 소나무 이영표, 그를 떠나 보내며

기사입력 2011.02.15 12:55

엑츠기자단 기자

[엑츠기자단=김승현] 우리는 늘 박지성, 이영표. 이 두 선수의 이름을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팀에서 은퇴를 한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향기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항상 처음으로 오르내리는 이름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 선수인 박지성이며, 이영표는 두 번째로 언급이 된다. '박지성, 이영표'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영표, 박지성' 같이 이름을 바꾸어 놓은 것에 유감스럽게도 약간의 어색함을 느낄 수도 있다.

늘 한국 축구하면 간판은 박지성이었고, 2인자는 이영표였다. 하지만, 그는 박지성의 그늘마저 사랑했다. 인터밀란에 늘 푸른 소나무인 하비에르 사네티가 있다면 한국 축구에서는 이영표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늘 자신의 위치를 수호하며 최정상의 실력을 보인 그는 겨울에도 지조를 잃지 않는 소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10여 년 넘게 대표팀 생활을 해오면서 좌측면의 지배자는 12번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의 '좌영표, 우진섭',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좌영표, 우종국',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이영표, 차두리' 등 우측면의 선수가 바뀔 때도 그는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성실히 지켰다.

2006년 월드컵 당시엔 우측면에 적임자가 없어 아드보카트 감독이 김동진을 왼쪽에 세우고 자신은 오른쪽에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레이어 답게 자신의 실력을 떨쳐 보였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지속적으로 수준급의 윙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질의 크로스와 개인기를 겸비한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1대 1 개인기에서 이영표의 헛다리 집기 드리블은 축구인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토트넘 이적 첫 경기에서 리버풀의 오른쪽 수비수를 상당히 괴롭혔고,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카푸를 앞에 두고 크로스를 올린 장면은 지금도 회자 된다. 또한 영리한 움직임으로 수비수들을 곤혹스럽게 했는데,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다시피 하였다.

이영표를 생각하면 '초롱이, 헛다리 집기'를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그에게선 '리옹 천적'의 냄새가 난다.

04~05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인트호벤 소속의 이영표는 리옹의 오른쪽 날개인 시드니 고부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리옹 수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당시 리옹은 막강한 화력을 지닌 유럽의 떠오르는 신흥 강호였었기에 그의 활약은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3개월 뒤에 피스컵에서 두 팀은 재대결했는데, 이영표는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면서 리옹 천적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드니 고부를 잘 막아낸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서 "이영표, 그는 강한 선수다. 특히 너무나 많이 뛰는 선수다"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포지션상 이영표와 자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고부는 이영표에게 번번이 뚫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축구 영웅의 아름다운 퇴장

박지성과 함께 한국 축구의 전설인 그는 어린 나이에 한일 월드컵 4강을 경험했고, 중간자의 입장으로 2006 독일 월드컵 원정 첫 1승, 노장으로서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첫 16강을 이루어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며 초롱초롱했던 그는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이 끝난 후 16강의 부담에 대한 짐을 내려놓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그는 16강이 확정된 후 "우리는 오늘 어떠한 비판도 거부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2002 아시안 게임 이란과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픈 마음에 마지막 키커로서 의욕적으로 찬 공이 골대를 맞고 나와 결승행이 좌절되었을 때와, 04~05 UEFA 챔피언스리그 AC 밀란과의 4강 2차전에서 암브로시니에게 골을 허용해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아쉬움에 머리를 움켜 잡았던 장면은 축구팬들의 뇌리에 아직까지 박혀있는 명장면이다.

그의 플레이는 축구팬들의 희로애락을 책임질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이 시점에서, 포스트 박지성보다 포스트 이영표에 대한 근심이 더 많다.

그만큼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비라인의 지휘와 측면 지배를 암묵적으로 성실히 해왔던 것이다. 스웨덴의 라르손과 네덜란드의 반 데 사르, 프랑스의 지단과 같이 백의종군의 각오로 대표팀에 복귀해 또 한 번의 영광을 누린 적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떠올릴 만큼 필자를 비롯한 팬들은 그의 은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2인자였지만 1인자 못지않게 감동을 주었던 선수. 전성기 기량에서, 분명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지만 손뼉칠 때 떠난 이영표는 진정한 대인배라 할 수 있다.

그의 아름다운 퇴장을 기념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며, 축구팬의 인간적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못하겠다' 그가 대표팀에 뿌린 향기가 지워질 정도의 후계자가 빨리 나타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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