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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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인 열전] 이주연 "15년 만의 金, 내 손으로"

기사입력 2010.11.30 04:11 / 기사수정 2010.11.30 08:08

이철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철원 기자]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정상의 실력을 과시한 이주연이 동계아시안게임을 석 달여 앞두고 스케이트 끈을 다시금 동여맸다.

이주연(23, 동두천시청)은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2010/2011 세계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와 2차 대회를 통해 1,500m 아시아 최고의 여자 선수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2007년 중국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주연을 제치고 1,500m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의 왕페이(WANG Fei)를 시즌 개막전에서 제압한 것은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이주연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북한이 1995년 삼지연 동계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 자국 사정으로 대회를 반납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6년 하얼빈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천희주가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노골드'에 머물렀다.

1999년 강원도 동계아시안게임과 2003년 일본 아오모리(백은비 3,000m 은메달), 2007년 중국 창춘(이주연 1,500m 은메달, 이상화 500m 은메달)에 이르기까지 '금메달 갈증'에 시달린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주연을 지난 25일 태릉 국제빙상장에서 만났다. 

- 지난 시즌 1,500m에서 중국의 왕페이, 일본의 호즈미, 마쓰다, 이시노 등에게 뒤졌지만 올 시즌 월드컵에서는 모두 이겼다

정말인가? 아직 시즌 초라서 그런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몰랐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달라진 것이 있나?

올림픽 때는 몸 관리에서 실수가 있었다. 보통 장거리 대표팀은 한 달 전부터 현지 적응훈련에 들어가는데 난 한 달 동안 해야 할 것들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집중도 못했었다.

내 몸 관리 실수로 개인 종목뿐만 아니라 단체종목(팀추월)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 이후로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다시 한번 나를 채찍질하게 됐던 것이 시즌 초 시합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 같다.

▲ 훈련중인 이주연(오른쪽에서 두 번째)

- 올림픽에서 모태범·이승훈·이상화 등 후배들이 금메달을 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림픽에 두 번째 참가한 선수로서 아쉽진 않았나?


아쉽기보다는 감동이었다. 그리고 금메달 리스트들 못지않게 인터뷰도 많이 했다. 동료들의 금메달 획득에 펑펑 울고 있는데 각종 방송사에서 인터뷰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울면서 축하 인터뷰를 많이 했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밴쿠버로 갈 때는 같은 선수입장이었다. 관중석에서 인터뷰를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고생한 선수들이다.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성공한 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도 세계무대에서 할 수 있구나.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 그런데 지인들은 내가 응원단장으로 간 줄 알더라. 매일 응원도구 들고 관중석에 있는 것만 카메라에 잡힌다고(웃음).

- 동계아시안게임으로 가보자. 선발전 1,500m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 욕심이 있는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는 선수라면 누구나 금메달 욕심이 있다.

벌써 4년 전인가? 1초 차이로 은메달을 땄었는데 이번엔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 아시안게임에서 1,500m 외에 어떤 종목 금메달을 노리는가?

팀추월 경기가 기대된다. 지난달 열린 선발전을 통해 1,500m 1위와 2위자인 나와 노선영(21, 한국체대)이 팀추월에도 동시에 선발됐다. 12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 장거리 종목 대표 선발전에서 3,000m 1위가 팀추월 대표에

합류하는데 현 대표팀 동료인 박도영(17, 덕정고)이 유력해 보인다. 이 3명은 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팀추월 종목에서 기대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

- 아시아 여자 중장거리에서는 최상위 랭커지만 아직 세계무대와는 격차가 있다. 언제쯤이면 세계무대 1등이 가능할 것 같나?

사실 내 마음가짐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직 여자 중장거리에서 세계의 벽은 너무 높다.

열심히 시즌을 준비해서 '이 정도면 격차가 좁혀지겠다' 싶으면 서양 선수들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 그래서 매년 세계대회에 나갈 때마다 충격을 받는다. 거리가 좁혀질 듯 안 좁혀지니까 좌절감도 느끼고.

하지만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목표를 크게 가지고 노력한다면 단거리의 이상화(21, 한국체대)처럼 중장거리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 기자의 기억으로는 아주 어릴 적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 같다

원래 중학교 선수부터 상비군에 선발되는데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특별한 케이스로 상비군에 선발됐다.

어린 나이에 여자 5,000m 한국신기록을 내기도 했었다(확인결과 중학교 2학년 때). 하지만 그 시즌에는 나이제한에 걸려서 성인 대표팀에 합류를 못 했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대표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대표팀 경력으로 따지면 고참 선수급이다. 오랜 시간 대표팀에 있으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어느덧 대표팀 10년차다. 연수로만 치면 남자 단거리 대표팀의 이규혁 오빠와 문준 오빠에 이어 넘버 3쯤 될듯하다(웃음).

처음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촌에 들어가서 생활하는게 마냥 신기하고 설렜는데 1~2년 지나니 무뎌지더라. 집보다 더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 선수촌이 집보다 편하다. 대표팀 생활이 긴 것은 어떻게 보면 장점 일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단점 일수도 있다.

장점을 먼저 말하자면...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긍심이 생겼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단점을 꼽자면 선수촌이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긴장감이 풀어졌다. '마음가짐이 느슨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지금은 후배들이 많이 성장해 자신의 위치를 넘보지만 어린 시절에는 국내에 따라올 적수가 없었다. 어릴 적 라이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솔직히 말해서 어릴 때는 독보적이었다. 선배들을 제치고 1등 하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같이 경쟁할 수 있는 라이벌이 있었다면 기록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게 됐다.

지금은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서 나에게 패배를 안겨준다. 그 후배들이 내가 다시 열심히 할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줘서 고맙다.

- 오랜 시간 대표팀에 있으면서 셀 수 없을 만큼 국제시합을 뛰었을 것이다. 최종목표는 무엇인가?

최종 목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 상화가 여자대표팀에게 15년 만의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먼저 안겨줄 가능성이 높지만 나도 꼭 해내고 싶다. 그래서 연금수를 채우고 싶다(웃음).

항상 결정적인 국제대회에서 은메달, 동메달만 수두룩하게 따냈다. 그렇기에 지쳐가는 것도 사실이다. 은메달과 동메달에 대한 설움을 벗고 후련해지고 싶다. 만년 2등, 3등은 지겹다. 나 자신에게 금메달을 선물해주고 싶다.

- 지금 한국은 얼짱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코치들이 "주연이는 또 한 명의 얼짱 선수가 될 것"이라고들 하시더라.

얼짱으로 주목받은 선수들을 선수촌에서 거의 다 봤다. 특히 손연재는 정말 예쁘더라. 우리(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는 웬만하면 같은 여자 선수를 칭찬 안 하는데 손연재는 칭찬을 넘어서 '찬양'하고 있다(웃음).

그리고 내가 얼짱 스타 가능성이 있다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그런 내용이 나가면 괜히 '악플'에 시달릴 것 같다. 자제해달라(웃음).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통해 스피드스케이팅은 인기 종목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주연은 '비인기종목'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다. 종목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국제대회에서 만년 2~3등에 머물렀던 자신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이주연을 봤을 때, 다가오는 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스스로를 '인기종목'의 선수로 재정의할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엑스포츠뉴스 기자들이 이주연에게 묻는다

- 이철원 기자 "운동 외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전지훈련이나 해외시합이 많다. 장기적으로 해외에 체류하기 때문에 다들 외로움을 많이 탄다. 싸이월드에 동료들과 함께한 셀카를 올리는게 낙이다. 딱히 할게 없으니 사진 찍고 올리고만 반복하는데 특히, 모태범-이상화와 함께 '엽기' 사진을 자주 찍는다.



▲ 이주연 미니홈피의 사진들

쉬는 시간이 다섯 시간 생기면 한 시간 정도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꽤 받는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시합준비하기도 바쁜데 과제 발표준비도 해야하고...몰입해서 하기도 힘들다.

이번 학기에 휴학을 했어야 하는데 못했다. 후회중이다(웃음).

- 이준학 기자 "검색창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봤는지?"

프로필 사진 말하는 건가? 사진이 조금 웃기긴 하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포털사이트에서 언제든지 바꿔준다고 했는데 아직 시도는 안 해봤다. 처음엔 '이게 뭐야!'라며 놀라기도 했는데 이제는 웃어넘긴다.

- 이준학 기자 "이주연에게 검색창에 함께 뜨는, 심지어 동갑인 애프터스쿨의 이주연이란?"

굉장히 예쁜 사람과 비교 돼 속상하다. 마음이 아프다.

애프터스쿨의 이주연이란...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

- 이나래 기자 "이상화 선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봐왔고, 지금도 룸메이트라서 딱히 별다른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운동할 때나 시합 전의 상화를 보면 나보다 어리지만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다. 프로의식? 그런 것들을 보면서 배울게 많다고 생각한다.

[사진 = 이주연 (C) 이철원 기자]



이철원 기자 b3031@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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