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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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겸 감독이 진짜 책임을 지는 방법

기사입력 2007.03.30 08:56 / 기사수정 2007.03.30 08:56

김민숙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민숙 기자] 대전 시티즌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대전의 아나운서는 그날 출전하는 대전 선수들을 소개한 후 마지막으로 최윤겸 감독을 소개한다. 그때가 되면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커지고 한층 더 우렁차진다. 그리고,

"대전의 역사를 새로 쓴, 최윤겸 감독님이십니다!!"

라는 소개가 끝나면 퍼플크루는 나팔을 불고,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면서, 대전의 팬들은 생각한다. 자신들의 감독을 소개하기에 ‘대전의 역사를 새로 쓴’이라는 것보다 더 적절한 형용사는 없을 거라고 말이다.

최윤겸 감독이 대전 시티즌에 부임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1997년에 창단한 대전 시티즌은 2002년까지만 해도 만년 최하위 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전 시티즌이 최윤겸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 어떤 팀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중위권 팀으로 도약했다. 

대전 시티즌은 2003년 K리그 12개 팀 중 가장 높은 홈 승률을 기록했고, 홈에서는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최윤겸 감독이 부임한 후, 대전은 어느 도시보다도 축구 열기가 뜨거운 ‘대전 축구 특별시’가 되었다.

그 이후 대전 시티즌은 김은중, 김성근, 이관우와 같은 팀의 주축이 되던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켰지만 그럼에도 다시 리그의 꼴찌 팀으로 추락하진 않았다. 자신들의 스타를 잃은 후에도 대전팬들은 여전히 팀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잃지 않았고, 그 희망과 신뢰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최윤겸 감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최윤겸 감독이 지난 28일 대전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올 시즌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임을 표한 진짜 이유는 이영익 코치에 대한 폭력 행사라고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평소 지장이자 덕장으로 소문난 최윤겸 감독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데에 대해 대전 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최윤겸 감독은 자신이 손을 든 것은 사실이라며 잘못을 시인했고,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 대전 팬들로서는 최윤겸 감독의 이러한 태도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팀이 부진에 빠졌을 때, 서포터가 경기장에 난입했을 때, 팀이 벌금을 물어야 했을 때, 최윤겸 감독은 언제나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렸다. 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노라 말해왔고, 실제로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함께 구설수에 휘말린 이영익 코치는 시종일관 두둔하며 자신의 잘못만을 이야기하는 최윤겸 감독의 모습에서, 대전 팬들은 자신들이 익히 알고 있는 책임감 있는 자신들의 감독님을 엿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최윤겸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자질보다도 도덕성을 더욱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폭력 문제로 구설수에 휘말리면 대중은 언제나 등을 돌려 왔다. 그럼에도, 현재의 최윤겸 감독에 대한 대전 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믿는다'는 것이다. 대전 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의 퇴진을 반대하고 있으며, 오히려 두 수장을 이 지경까지 내몬 구단의 무능함을 탓하고, 두 수장이 자신들의 팀을 저버리지 않길 바라고 있다.

선수단 또한 다르지 않다. 대전 시티즌 선수단은 29일, 기자 간담회가 열리기 직전 구단을 찾아가 최윤겸 감독의 퇴진 철회를 요청했다. 선수들은 감독님을 믿는다고 밝히며, 반드시 최윤겸 감독이 돌아오길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와 같은 팬들과 선수단의 최윤겸 감독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에 대전 구단은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보인다. 최윤겸 감독의 사표를 수리하며, 사건을 일단락하려던 대전 구단은 사표를 수리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거라 판단하고 현재 사표 수리를 유보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대전 구단은 이 사표를 반려하며, 최윤겸 감독에게 다시 한 번 팀을 맡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다시 한 번 최윤겸 감독의 몫으로 돌아간다. 사실 최윤겸 감독에게는 이 사건이 자신의 지도자 생활에 큰 흠집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큰 짐을 내려놓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마음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대전 시티즌의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그동안의 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버리기엔 최윤겸 감독에 대한 선수들과 팬들의 신뢰가 너무 크다. 최윤겸 감독은 언제나 모든 사건의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말해왔고,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 반드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최윤겸 감독이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 버리면, 대전의 선수들과 팬들이 입을 상처가 너무 크다. 최윤겸 감독을 보내고 나면 대전은 사실상 올 시즌을 버려야 하며 시즌 초반에 한 시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분명히 못할 짓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 최윤겸 감독이 이번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책임을 지고 싶다면, 최윤겸 감독은 대전 시티즌을 떠나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최윤겸 감독은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도, 팬들도 언제나 최윤겸 감독을 믿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최윤겸 감독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평소의 그 책임감을 보여야만 한다.

떠나는 일은 쉽다. 하지만, 남아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대전 팬들이 무엇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언제나 그래 왔듯 최윤겸 감독이 이번에도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이다. 

최윤겸 감독은 본인은 분명히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남아서 다시 한 번 대전이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자신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고 있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답하는 길이다. 그것만이 대전의 역사를 다시 쓰면서 현재의 대전을 만든 이 다운 처사이다. 그것만이, 최윤겸 감독이 이번 사태를 진짜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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