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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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마, 장미밭과 가시밭 사이에서 마주한 '범인(凡人)' [HIP:질의]

기사입력 2020.01.12 10:10 / 기사수정 2020.01.12 01:45

이덕행 기자
[HIP:질의]는 힙찔이라는 조롱과 랩스타라는 화려함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힙합 아티스트를 만나보는 엑스포츠뉴스의 코너입니다.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HIP:질의]가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이덕행 기자] "우리의 삶이 다 밭이었네"

지난해 9월 오도마의 정규 1집 '밭'이 발매됐다. '밭'은 오도마가 힙합신에 속한 래퍼로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아낸 앨범이다. 화려한 장미밭을 꿈꾸며 들어온 힙합신은 알고 보니 가시밭의 연속이었고 이 개념을 신 전체뿐만 아니라 사회로 확장하며 듣는 이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크라우드 펀딩과 단독 콘서트 등 '밭'과 관련된 콘텐츠가 마무리된 지난 1월 2일 마포구의 한 카페에 오도마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앨범을 낼 때 다들 많은 활동을 꿈꾸고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할 텐데 실제로 많은 활동을 무사히 마쳐서 뿌듯하다. 이제 진짜 한 앨범으로서의 활동을 끝낸 느낌이다. 앨범을 내고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했는데 큰 경험이 됐다.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잘 끝낸 저를 칭찬해주고 싶다"

두 차례 Mnet '쇼미더머니'에 참가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던 오도마는 그 외에는 뚜렷한 작업물이 없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첫 EP로부터 정규 앨범까지 3년이라는 기간이 걸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규 앨범을 기획한 건 3년 정도 됐다. 사실 처음 2년은 전혀 다른 기획이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3분의 2 정도 데모가 나온 상태였다. 그런데 총괄 프로듀서인 건배 형이 '밭'이라는 주제를 제안했다. 2년 동안 작업한 것을 버리고 새롭게 작업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생각인데 그 주제를 듣는 순간 무언가 강렬했다. '세상의 이면을 그려내는 앨범을 만들자'는 말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서 전의 주제를 버리고 1년 정도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자'는 대주제는 유지했지만, 소주제는 많이 바뀌었다. 정말 제가 살고 있는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제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선별했다"


음원사이트에는 '홍등가' '범인' '밭' '가시밭' 등 무려 네 곡이 타이틀곡으로 등재되어 있다. 많은 아티스트가 앨범을 관통하는 한 곡 혹은 두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과 비교해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사실 타이틀 곡을 뽑지 않고 싶었다. 이 앨범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이 앨범의 주제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런데 많은 분이 여러가지 이유로 타이틀 곡 위주로 듣기 때문에 주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유통사에 이야기를 하니 타이틀 곡으로 최대 4곡을 선정할 수 있다더라. 그래서 앨범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이 앨범이 어떤 앨범이라고 알 수 있을 만한 곡 네 곡을 타이틀로 선정했다"

2번 트랙 '비정규직'은 래퍼 오도마로서의 자아와 옷가게 직원으로서의 자아가 겹치며 현실적인 가사가 눈길을 끄는 트랙이다. 특히, 지인 DC를 요구하는 한 아티스트와 이를 안내하는 오도마의 생생한 대화가 인상적이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 콸라 형이 운영하는 '90웨이브'라는 브랜드의 옷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콸라 형이 힙합신의 마당발이라 음악 하시는 분들이 많이 왔다. 음악 하는 분들에겐 특별 DC를 해드리는데 실제로 인사까지 했던 분이 저를 기억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분의 잘못은 아니고 자격지심이 많았던 저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다"

'비정규직'을 비롯해 '홍등가' '급' '범인' 모독' 등 앨범의 전반부에는 화려한 성공을 꿈꾸며 힙합신에 들어왔지만, 현실에 부딪힌 래퍼 오도마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오도마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세상을 탓하거나 혼자만 고결한 척하지 않는다. 오도마는 덤덤하게 자신을 '홍등가' 속 래퍼 한 명에 비유하고 그 사이에서도 '급'을 나누는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런 기획을 가사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프로듀서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끼리 고민을 하며 냉정하게 자가 진단을 했다. 구 슬릭오도마, 현재 오도마라는 인물은 스물 셋에 지금까지 낸 앨범이 잘 된 적 없고, 손익분기점을 넘긴 적도 없고, 힙합이라는 영역 안에서 조금 알아주는 것도 큰 의미는 없고 동창들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저를 조금은 과장해서 보여줘야지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줄 것 같았다. 술 먹고 토하고 또 유리를 깨고 이런 소리를 통해 제 내면을 과장하게 표현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렇게 해야지 반응이 올 것 같았다"


앨범 후반부에는 이 같은 물음을 자신이 속한 힙합신을 넘어 앨범을 듣고 있을 사람의 사회로 확장한다. 이 앨범을 들은 사람에게 '과연 당신의 밭은 어떤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사실 그건 듣는 사람 나름인 것 같다. 저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저에게 '밭'은 힙합신이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사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찾을 때는 동경이 깔려있다. '저거는 좀 그래'라고 말하면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느냐. 그런데 장미밭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사회가 막상 들어가 보니 힘든 일이 많고 찔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 그 장미밭이 정말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끝까지 들은 분들이 이런 점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오도마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지적하고 그것을 담담하게 뱉어낸다. 다만 이 같은 차이 속에서 섣불리 결론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제 앨범의 결론이 '힙합은 나쁜 것이다. 혹은 나쁜 것이 아니다'가 아니다. 사실 실존주의와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이상적인 꿈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면서 꿈과 힙합을 이야기하는 저의 자아 성찰을 담고 싶었다. 또 제가 가진 현실은 이렇지만 다른 래퍼들이 가진 현실은 다를 수도 있다.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같은 현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런 앨범들이 많이 나오면 힙합의 파이가 커지고 저희가 사는 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원 사이트를 통해 앨범을 발매한 오도마는 피지컬 앨범 발매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아티스트에게 정규 1집이 주는 의미는 엄청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피지컬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제작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예산을 벗어나 빚까지 진 상황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연히 QM형을 만나 '형은 해본 적이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QM형이 좋은 생각이라며 씨앗이라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주셨다. 그것에 확신이 들어 바로 시작했다.

앨범 크라우드 펀딩과 관련돼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래퍼 염따다. 오도마는 앨범 홍보를 위해 더콰이엇과 염따가 진행하는 '랩하우스 온에어'에 출연해 크라우드 펀딩 사실을 공개했다. 이를 듣던 염따는 즉석에서 펀딩 비용 전액 330만 원을 지원해 훈훈함을 안겼다.

"사실 그 방송이 목요일에 됐지만 촬영은 월요일에 했고 크라우드 펀딩은 화요일에 시작됐다. 당시 녹화장에서 이야기를 꺼내니 염따 형이 '얼만데? 내가 줄게'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정신이 나가서 말을 못했다. 쉬는 시간에 염따 형이 '내가 현찰이 없으니 계좌이체로 보내줄께'라고 하셨다. 그런데 더콰이엇 형님이 "나 돈 있어"라면서 바로 현금을 꺼내셨다. 펀딩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제작비를 마련한 것이다. 방송이 나올 때까지 말은 못했지만 너무 뿌듯했다. 최근 '랩 하우스'에 다모임 형님들이 나오셔서 록스펑크맨이 딥플로우를 샷아웃한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때 염따 형님이 '오도마는 까먹었냐'고 하셨는데 물론 잊지 않았다. 새해 선물도 보내드리고 샷아웃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염따의 지원을 빼더라도 오도마가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은 목표액의 264%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각종 힙합 커뮤니티의 호평으로 이러한 성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의 반응도 다 살펴보긴 살펴봤다. 총괄 감독을 맡은 건배 형은 음악적인 스승이자 함께 동고동락한 형인데 평소에 커뮤니티의 관심이나 상업적인 수익을 위해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본인도 처음으로 총괄이라는 직책을 맡으니까 '너를 한국 힙합 역사에 남게 해줄게'라고 떵떵거렸다. 첫날 반응은 형의 생각보다 미미했다. 전 '듣긴 듣는구나'하고 말았는데 오히려 건배 형이 '조금 있으면 터질 거야'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다 많은 분들이 앨범을 듣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장문의 글로 앨범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신 분도 계셨다. 앨범을 디테일하게 듣고 피드백을 받는 경험은 처음이라 너무 좋았다"


지난해 12월 14일 단독 콘서트도 진행했다. 단독 콘서트에는 더콰이엇을 비롯해 염따, 팔로알토, 오사마리 크루 등 다양한 래퍼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힘을 실어줬다.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봤는데 많은 분들이 손을 들며 제 티셔츠의 손가락 모양을 해주셨더라. 그런 것 하나하나를 보면서 정말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가 랩을 시작하며 아둥바둥하던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제 노래에 더블링이 들어오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도마는 "이번 앨범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보여준 것 같다"며 다음 앨범을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한 팬은 오도마에게 다음 앨범 발매 계획을 물었는데 오도마는 "언제보다는 좋은 음악이 먼저"라며 당장의 상승세를 이어가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밭'이라는 앨범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건 많이 보여 줬기 때문에 다음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20년에는 정규 앨범이 아닌 EP 앨범을 기획하고 있다. 사실 다음 작업물은 손도 못 대고 생각만 계속하고 있다. 확답은 못하지만 목표는 2020년 발매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왜 프로냐'라는 질문에 '우리에겐 데드라인이 있어서다'라는 대답을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것에 집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좋은 앨범이 먼저라면서도 그렇게 못해왔었고 '밭'이 유일했다. 사실 앨범을 내기 전에 '좋은 앨범에 반응해줄까'라는 의심이 많았는데 제 눈으로 떳떳이 봤다. 그래서 다음 앨범도 '언제'보다는 '좋은 앨범'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하는 방식은 바뀔지 언정 태도는 바뀌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장미밭'과 '가시밭' 사이에서 만난 오도마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저를 향한 관심에 너무 감사드린다. 지금 제가 받는 관심이 잠깐의 관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라는 인물이 아닌 제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게 감사하다. 사실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참는 편이다. 음악가이기 때문에 음악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음악 많이 들어주시고 왜 좋고 나쁜지 가차 없이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다"

dh.lee@xportsnews.com / 사진 = 오도마
 

이덕행 기자 dh.le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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