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황수연 기자]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를 통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설명했다.
6일 오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박찬욱 필름메이커 토크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모더레이터로 김혜리 평론가와 박찬욱 감독이 참석했다.
박찬욱 감독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적립해 왔을까. 이날 박 감독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와 '박쥐'(2009) 두 편에서 본인이 사랑하는 영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시퀀스를 선택하고, 그 시퀀스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두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파렴치한 유괴범에 부모들이 집단 복수극을 하는 장면을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골랐다. 그는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반부에서 금자씨는 거의 조연이 된다. 뒤로 물러나서 구경하는, 또는 잘못될 경우에 개입해서 조율을 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구경꾼의 위치로 퇴각시키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를 구상할 때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요체,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연히 복수극의 주인공일 줄 알았던 사람(금자씨)이 물러나고, 조연이라고 보여졌던 유족들이 전면에 드러나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였다. 그들이 금자씨가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복수의 드라마를 펼쳐가는지를 담으려고 했다. 제가 잘 구현됐다고 생각한 장면이었고, 여러 요소들이 조화롭게 결합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마침 강원도에 있는 폐교를 구해서 손을 거의 안 대고 촬영할 수 있었다. 또 제가 좋아하는 게 교실 천장의 상태였다. 천장에 마감 재료들의 떨어지고 갈라지고 구부러져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미술팀이 꾸미기 어려운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로케이션을 찾는 일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고 말했다.
'뜨거운 것이 좋아' 오마주 비하인드도 전했다. 박 감독은 "각본을 쓸 때 최민식 씨가 연기하는 백선생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저는 그것이 이 영화의 회심의 대사였다. 그런데 영화를 개봉해놓고 생각해보니까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대사더라. 세계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인데 완전히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머릿 속에 남아 있으니까 썼을 것 같다. 무의식에서 오마주를 하게 된 경우였다"며 "모든 걸 내 머리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상당히 많은 것들이 내가 본, 읽은 들은 이야기가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좋은 예였다"고 털어놨다.
또한 박 감독은 "영화 형식으로도 화면 종횡비가 긴 와이드스크린을 활용하려고 했다. 이 장면이 그게 잘 적용됐다고 생각한 장면이었다. 편집에서도 처음 칼을 들고 오는 여성이 교실 문 앞에서 섰을 때 카메라 패닝을 하면 이미 앞에 서 있는, 시간 경과를 패닝을 통해서 단축하는 기법을 썼다.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은데 편집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단축하려고 신경썼던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금자씨의 트레이드마크인 트렌치코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박 감독은 "영화 속 의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금자씨의 트렌치코트다. 프리프로덕션을 할 때 의상 디자이너랑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이다. 금자씨가 깃을 내리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깃을 올리고 단추를 다 채우면 입 위로 올라와서 눈만 보이게 얼굴의 반을 가린다. (학부모들의 복수극) 장면에서 처음으로 단추를 채우는데 금자씨는 이 단계에서 관찰자가 된다.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라는 핵심적인 요소를 도드라지게 강조하려고 했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오로지 본다는 의미였다. 그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 디자인한 옷이었다"고 설명했다.
유머코드를 활용하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서도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유머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웃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슬픔과 분노, 부조리함과 결합됐을 때 그 유머가 슬픔, 분노, 부조리함을 더 강조하고 살려주는 역할을 하길 바라는 편이다. 유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영화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제가 이 장면을 통해 가장 원했던 관객 반응은 오광록 씨가 도끼를 조립하는 장면에서 웃고, 그의 행동을 조금 더 보다보면 내가 웃은 것이 미안해지면서 내가 경솔하게 웃었나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죄 의식이 관객의 마음 속에 생기는 것이 제가 바라는 최상의 관객 반응이었다"고 털어놨다.
'박쥐'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는 송강호(상현 역)가 김옥빈(태주)의 죽음을 슬퍼하다 피를 빨아먹고, 다시 자신의 피를 내주면서 뱀파이어가 되는 신을 꼽았다. 박 감독은 "'박쥐'를 구상하고 찍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머릿 속에 조금씩 햇빛을 쬐어주고 물을 주며 키워온 작물같은 작품이다. 저로서는 유일하게 오래 걸렸다.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첫 장면이 이것이었다. 마치 씨앗과 같은 장면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선한 일을 하려던 신부가 뱀파이어가 됐고, 그때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 그녀와 싸우고 죽이게 된다. 죽이다 보니 피가 나지 않나. 죽인 행동을 의식하는 순간 충격받고 죄의식에 사로잡히는데 그러자마자 피의 향기가 그를 사로잡게 된다. 죄의식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욕망이 채워지고 그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평소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자기가 죽이고 심지어 사랑하는 여자의 피를 빤다는 것이 상상의 첫 단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신부가 그녀를 되살릴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뱀파이어로서의 삶이 권장한 삶은 아니지만 사랑한 여인을 되찾기 위해 자기 피를 주면서 되살리고 상처를 내서 그녀가 빨게 해주게 됐다. 서로가 손목을 빨면서 피가 순환하게 되는 것"이라며 "단 여기서 혈액형은 따지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송강호와 김옥빈의 흡혈 키스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친 광기에 갔을 때 피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일심 동체가 아니라 하나로 피로 합쳐진다는 궁극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혀에 상처를 내서 키스를 하고 그녀로 하여금 마음껏 흡혈하게 해주는데 이것이야 말로 키스 중의 키스, 궁극의 키스가 아닌가 싶었다. 영화 역사상 이 장면이야 말로 궁극의 키스 장면이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웃었다.
'박쥐' 속 나여사(김해숙 분)의 시선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박 감독은 "두 사람이 햇빛에 타서 소멸되는 걸 나여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나여사의 시선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도덕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는 상현이라는 남자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게되는 시선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상현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거기서 피를 빠는 행동을 통해 본인은 몰두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시선이 이 사람을 흡혈귀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괴로워하고 죄의식을 가지게 해 괴롭히게 하면서 이 남자를 숭고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신부는 존댓말과 반말을 왔다갔다 한다. 기본적으로 나이 어린 여성인 태주(김옥빈)에게 항상 존댓말을 쓰는데 어떨 때는 자기가 말해 놓고 놀라는 반말들을 한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잔인한 포식자, 야수 같은 존재가 됐다는 뜻이었다"고 덧붙였다.
관객들과의 대화에서는 영화 꿈나무들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박 감독은 영화 음악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했고, 시나리오를 잘 쓰는 법에 대해 "엉터리 각본이라도 마지막신까지 일단 써보면 고치기가 쉽다. 초고부터 걸작을 만든다는 생각을 버려라"라는 조언을 건넸다.
한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3일부터 12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5개 극장, 37개 스크린에서 월드프리미어 120편(장편 97편, 단편 23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부문 30편(장편 29편, 단편 1편) 등을 포함해 85개국 303편이 상영된다.
hsy1452@xportsnews.com / 사진 = 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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