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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 "좋은 배우이고 싶어요"…엄태구의 진심

기사입력 2016.10.05 18:45 / 기사수정 2016.10.05 18:18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제가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는데 밑바탕이 될 수 있는, '밀정'을 만나기 전과 후가 나뉠 정도로 특별한 작품입니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에서 조선인 출신 일본인 경찰 하시모토를 연기한 배우 엄태구는 '밀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스크린 속 강인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에 노트북 모니터에 띄워놓은 하시모토의 사진과 엄태구의 얼굴을 자꾸만 번갈아보게 된다.

그만큼 강렬했던 활약이었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귀화한 하시모토는 신분 상승과 출세에 대한 욕망으로 그 누구보다 의열단을 뒤쫓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극 속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와의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다. '밀정'은 엄태구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탄탄한 스토리에 힘입어 9월 7일 개봉 후 73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했다.


▲ '밀정', 기분 좋은 부담감을 이겨냈던 시간

'밀정'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지만, 배우 엄태구의 시작은 10여 년 전인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7년 영화 '기담' 속 일본군 역할을 시작으로 '악마를 보았다'(2010), '심야의 FM'(2010),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인간중독'(2014) 등 다수의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지난해에는 '차이나타운', '소수의견', '베테랑' 등의 작품에 크고 작은 역할로 등장했다.

엄태구의 이름은 단편영화, 독립영화계에서 일찍이 주목받고 있었다. 제11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단편 '숲'(2012)에 이어 '잉투기'(2013)로 그 존재감을 조금씩 더해내기 시작했다. '숲'과 '잉투기'는 그의 친형인 엄태화 감독과 함께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TV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10여 년 동안 출연한 작품 수는 40편이 훌쩍 넘는다.

그런 그에게 '밀정'은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고민했고, 또 잘 해내고 싶었던 새로운 도전의 출발선이기도 했다.

엄태구는 "제가 촬영을 몇 번 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였어요. 중국 촬영 때는 제 촬영이 없는데도 매일 현장에 갔죠. 이렇게 현장에 자주 간 영화도 처음이었고 스태프 분들, 배우 분들과 친해진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좋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볼살이 쏙 빠져 더욱 날카롭게 와 닿는 하시모토의 얼굴에 대한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제가 살을 빼려고 뺀 게 아니었어요. 중국 촬영 가기 전부터 5~6kg가 먼저 빠져있었거든요. 김지운 감독님이 믿어주고 뽑아주신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그런 마음의 부담감, '송강호 선배님과 어떻게 연기하지'에 대한 부담감, 일본어 대사나 (편집됐지만) 검도 장면이 있어서, 그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살이 저절로 빠졌던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과는 '악마를 보았다'에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라면 무조건, 어떤 역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바람이었다. 오디션에서는 하시모토 역할을 비롯해 상해 정보원, 의열단의 대본으로 김지운 감독과 1대1로 마주했다.

"하시모토가 가장 하고 싶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에 기대감이 올라 올 때마다 그 마음을 버리려고 했죠. 처음에는 너무 긴장했는데, 감독님이 즉흥적으로 주시는 디렉션에 따라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나중에는 벅찬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웃음) 그리고 하시모토 역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정말 기적 같았고 행복했어요."

기쁨도 잠시, 곧바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과의 작업은 물론, 멀리서라도 대선배 송강호의 연기를 보며 배움을 얻고 싶었던 마음이었지만 '믿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못 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던 시간이었다.

엄태구는 "좋은 종류의 부담감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좀 더 필사적으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혼자서 열심히 준비를 해도 현장에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가는데 감독님께선 늘 (상황과 마음을) 열어주셨고, 송강호 선배님도 현장에서 늘 "하시모토 왔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챙김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정말 두 분께 은혜를 입은 기분입니다.(웃음)"

극 중 송강호와 함께 마주하는 신이 대부분이기도 했던 엄태구는 기차신에서 송강호와 한 프레임에 잡혔던 장면을 떠올리며 "사진만 봐도 떨린다"고 엷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대놓고 선배님께 표현은 못했지만, '이래서 최고의 배우이신거구나' 생각했죠. 제 연기가 좋아지고 안 좋아지고를 떠나서, 저런 모습은 닮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연기가 즐겁고,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정말 행복했어요.(웃음)"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가 됐든 다시 한 번 송강호와 만나고 싶다는 엄태구의 바람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금방 이뤄졌다. 송강호가 출연하는 '택시운전사'에 함께 하게 된 것. 비록 짧은 출연 분량이지만, 다시 송강호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기쁨이자, 원동력이 됐다. "'밀정'은 곱씹을수록 또 보고 싶더라고요. 김지운 감독님을 좋아했던 영향도 있지만, '밀정' 자체의 팬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한 엄태구는 "영화가 정말 좋습니다"라고 환한 웃음과 함께 마음속의 진심을 다시 한 번 꺼내놓는다.


▲ 매 순간이 진심…엄태구가 그리는 그림

지난 해 10월 크랭크인 해 촬영을 마치고 올해 9월 완성된 작품을 만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엄태구의 시간도 빈틈없이 빠르게 돌아갔다.

엄태구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시간이 진짜 빠른 것 같아요. 계획하고 생각할 게 없이 지나온 것 같네요"라고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밀정'에 이어 단편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11월 개봉을 앞둔 '가려진 시간', 최근의 '택시운전사' 촬영까지 매 순간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왔던 시간들이었다.

'모태신앙으로 휴일에는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고, 여유시간이 나면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고, 정말 심심하면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엄태구는 "정말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행동은 그대로네요"라고 설명하며 앞에 놓인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마신다. "아메리카노는 써서 못 마셔요"라고 다시 한 번 웃음도 보였다.

계획적인 편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자필로 일기도 쓰면서 하루를 기록해 나간다는 그다. 얘기를 듣다 문득 '밀정' 관련 행사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 화제가 됐던 2G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묻자 "'고장 나면 바꿔야지'라고 늘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바꾸면 언제 배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웃으며 "제 성향이 아날로그인 줄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원래 하던 것이 바뀌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큰 요동침이 아니더라도, 엄태구는 잔잔함 속에서 그렇게 자신만의 색깔을 조용히 발현해내고 있었다. 그는 "그냥 좋은 배우이고 싶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렸다.

"그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잘 해내는, 그것만큼 감사하고 기쁜 일이 없는 것 같아요. 흔히 말해서 고생한 보람이라고 할까요. 그런 관심 같은 것들이 굉장히 힘이 될 때가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또 기분 좋은 부담감을 느끼고, 그 다음 촬영에 임해서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생각하죠. 직업이 배우다 보니까 거기에 충실해야겠다고 마음먹어요. '밀정'에서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 하며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저 역시도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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