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대구, 양정웅 기자) 성치 않은 햄스트링을 가지고 한 번에 세 베이스나 내달렸다.
11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팀의 막내였던 구자욱(삼성 라이온즈)이 '레전드'도 놀란 존재감을 그라운드에서 뽐냈다.
구자욱은 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3차전에서 팀의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한국시리즈는 구자욱에게 아픈 기억뿐이다. 군 전역 후 2015년 1군 첫 시즌, 구자욱이 맹활약하며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러나 팀은 1차전 승리 후 4연패에 빠지면서 두산 베어스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2024년 삼성은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한 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구자욱은 플레이오프 도중 무릎 부상을 당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구자욱은 올 시즌 0.371의 타율로 생애 첫 타격왕에 오르는 등 물오른 감각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 9월 30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에서 주루 도중 왼쪽 햄스트링을 다치고 말았다. 자칫 포스트시즌에도 나오지 못할 뻔했다.
그래도 구자욱은 투혼을 펼쳤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면서 재활에 매진했고, 플레이오프부터 곧바로 스타팅으로 나왔다. 물론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기에 지명타자로 나왔고, 초반에는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2~4차전에서 안타 하나씩 치면서 감을 조율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부터 구자욱의 활약이 빛났다. 1차전에서는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KT 선발 데이비스 대니엘에게 7회 투런 홈런을 뽑아내 추격의 서막을 올렸다. 이어 2차전에서도 멀티히트를 터트리면서 2경기에서 4안타를 기록했다.
하루 쉬고 홈으로 돌아온 3차전에서도 구자욱은 좋은 모습을 보였다. 1회 삼성은 김지찬의 안타가 나왔으나 김성윤이 희생번트를 실패해 아웃카운트만 올라갔다. 하지만 구자욱이 소형준을 상대로 볼넷을 골라내면서 1, 2루가 세팅됐다.
이 찬스를 받은 최형우가 좌전 적시타를 터트리면서 삼성은 1-1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이어 2번째 타석에서는 본인이 해결사가 됐다. 2회 삼성은 이재현과 류지혁의 연속 볼넷이 나왔고, 1사 후 김지찬도 4구를 골라내 만루 찬스를 잡았다. 김성윤의 내야 땅볼 때 1루 주자만 아웃되면서 한 점이 들어왔고, 1, 3루 기회가 이어졌다.
여기서 구자욱이 소형준의 가운데 커터를 공략, 우익수 쪽으로 향하는 큰 타구를 날렸다. 안현민이 점프를 시도했으나 타구를 잡지 못했고, 오히려 오른쪽으로 공이 굴러갔다. 주자 2명이 홈으로 들어왔고, 구자욱도 3루로 향했다. 햄스트링 상태가 100%가 아니라 전력질주는 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엉성하긴 한데, 여유있게 3루로 가서 다행이다"라며 "몸에 문제는 없다. 다음부터는 2아웃이라서 2루까지만 가도 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경기 후 구자욱은 3루타 상황에 대해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이어서 고민했다. 좋은 공이 들어올 거라 생각 못했다"며 "타임을 부르고 생각을 가다듬었다"고 밝혔다.
전날 밤부터 소형준의 공을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구자욱은 "1, 2차전에서 몸쪽 커터성 투구에 범타로 물러났다. 그 공이 올 거라 100% 확신했다"며 "전력분석이나 타격코치님이 조언해주셔서 타구를 날릴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만약 햄스트링 부상이 아니었다면 홈까지도 들어올 수 있었겠지만, 구자욱은 "생각은 못했다. 그라운드 홈런을 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끝나고 난 뒤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겠는데...' 생각했다"며 웃었다.
구자욱이 3루로 달린 뒤, 선수들은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구자욱은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만 봤지 뭉클해하는 건 못 봤다"며 "모든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승민 선수도 매 경기 던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감동하고 있다. 이런 게 팀워크 아닌가 생각한다. 선수들 하나하나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한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의 시구자였던 '라이온킹' 이승엽 전 감독은 구자욱의 1군 첫 시즌 팀의 최고참으로서 멘토 역할을 해줬다. 이 전 감독은 경기 전 "이제는 진정한 라이온즈의 리더다.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나와 같이 뛰었을 때는 부족한 것도 많았다. 내 생각보다 더 큰 선수가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구자욱은 "선배님이 말씀해주신 부분은 영광이지만, 난 아직 모자라다. 평생 존경할 생각이다"라며 겸손함을 표시했다.
2차전에도 이 전 감독은 경기를 지켜봤는데, 구자욱은 "끝나고 연락드렸다. 꼭 우승하라고 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오늘 시구를 하셨는데, 좋은 기운을 받았고, 화이팅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배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0-8로 뒤지던 경기를 7회 구자욱의 홈런 이후 추격에 나서며 1점 차까지 따라갔다. 분위기를 끌어올린 삼성은 2연승을 달리며 오히려 앞서나가고 있다.
구자욱은 "오늘만 보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하나의 목표를 다지고 왔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첫 경기 졌지만 포기할 수 없는 힘이 생겼다. 선수들의 의지가 2, 3차전의 승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구자욱이 지명타자로 나서면서, 43세의 노장 최형우가 좌익수 수비를 나가고 있다. 구자욱은 "너무 여유 있게 잘하고 계신다"며 "형우 형이 수비 못하는 선수가 아니다. 타구 판단도 좋고, 안정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끝까지 힘내주시면 좋겠다"고 한 구자욱은 "계속 뭐라고 하셨다. '네가 뭐 한 게 있냐' 하시다가 오늘 처음으로 잘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사진=대구, 김한준 기자 / 엑스포츠뉴스 DB
양정웅 기자 orionbea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