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엑스포츠뉴스 정연주 기자) 한때 1000만 회원을 거느린 IT 업계의 성공 신화였던 전제완이 현재 강원도 양양에서 펜션 청소를 하며 지내는 근황을 전했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닷컴 벤처 열풍의 중심에 섰던 '프리챌'과 창업자 전제완의 성공과 좌절을 되짚었다.
프리챌의 성장과 쇠퇴를 모두 겪은 전제완의 행보는 국내 인터넷 산업이 급변했던 시기와 겹쳐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90년대 후반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훗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이끈 젠슨 황이 직접 그래픽카드를 판매하며 발로 뛰고 있었다.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초고속 인터넷으로 전국을 연결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고, 젠슨 황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한국의 PC방 문화를 접한 젠슨 황은 IT 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PC 통신 시대를 지나 1998년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대한민국에는 닷컴 벤처 열풍이 불었다. 그 중심에는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이 있었다.
서울대 출신으로 삼성물산에 입사한 전제완은 삼성전자 인사 시스템 전산화 등 IT 관련 업무를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삼성을 떠나게 됐다.
이후 전제완은 벤처기업 자유와 도전을 설립했다. 당시 전제완은 26세의 조수용 전 카카오 공동대표 등 뛰어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실리콘밸리식 조직을 꾸렸다.
토니안은 이를 두고 "그렇게 작은 회사에 대단한 인재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데, 삼국지의 유비에 버금가는 인재 영입 능력"이라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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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1일 출범한 커뮤니티 플랫폼 프리챌은 빠르게 성장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듯 온라인에도 모임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발한 프리챌은 조수용이 디자인한 세련된 UI와 무제한 용량, 전면 무료 정책 등을 앞세워 오픈 3개월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110만여 개의 자생적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고 회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GE 캐피털의 투자까지 유치하며 프리챌은 당시 대표적인 IT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막대한 적자가 있었다. 회원 수가 늘어날수록 서버와 하드웨어 유지 비용도 증가했고, 투자금이 소진된 상황에서 닷컴 버블 붕괴까지 겹치며 추가 투자 유치도 어려워졌다.
빠른 이용자 증가가 프리챌의 영향력을 키운 동시에 서버 비용을 늘리면서 무료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도 시험대에 올랐다.
결국 전제완은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커뮤니티 개설자를 대상으로 '월 3000원의 유료화'를 단행했다.
인터넷 서비스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당시 이용자들의 반발은 거셌고, 국회에서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그 결과 110만 개에 달했던 커뮤니티는 40만 개로 급감했다.
프리챌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유료화가 이용자 이탈로 이어진 사이, 무료를 내세운 경쟁 서비스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이 틈을 파고든 곳은 싸이월드였다. 2001년 미니홈피를 선보인 싸이월드는 프리챌 유료화 논란 당시 무료 서비스를 선언하며 이탈한 이용자들을 대거 흡수했다.
일촌 맺기, BGM, 사이버 화폐 도토리 등을 앞세운 싸이월드는 회원 수 2500만 명을 거느린 국민 SNS로 성장했고, 프리챌의 시대는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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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2002년 12월 전제완은 자금난을 막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주금 가장 납입 및 120억 원대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됐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재기를 노렸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IT 업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고, 프리챌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전제완은 2016년 과거 경쟁 관계였던 싸이월드 대표로 취임했다. 3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데이터 복구와 재기를 추진했지만 또다시 경영난을 겪었고, 임금 체불로 처벌받는 상황까지 맞았다.
한때 대한민국 IT 업계의 중심에 섰던 전제완은 현재 강원도 양양에서 펜션 청소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전제완은 "인생이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는데, 시름을 잊기 위해 여기서 청소를 하고 있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이를 본 한소은은 "씁쓸하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편하게 IT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제완의 도전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그가 영입했던 인재들과 당시의 경험은 대한민국 IT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사진 = SBS
정연주 기자 jyj4209@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