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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볼피아나·비대칭 스리백' 싹 사라졌다…모레노 담백한 첫 인사 "한국 위해 일할 것, 경기장에서 말하겠다"

기사입력 2026.09.04 18:37 / 기사수정 2026.09.04 18:57



(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에 선임된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이 화려한 전술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짧고 담백한 메시지로 한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모레노 감독은 4일(한국시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맡게 된 소감을 밝혔다.

눈길을 끄는 건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모레노 감독의 짧은 글에는 전임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당시 화제가 됐던 '라볼피아나'나 'MIK(한국축구기술철학·Made In Korea)' 같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2024년 홍 감독을 선임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후방으로 내려와 빌드업에 가담하는 '라볼피아나'와 비대칭 백3 등을 전술적인 장점으로 꼽았다. 당시 연령별 대표팀부터 A대표팀까지 일관된 축구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한 MIK와의 연계성도 거론됐다.



그러나 2년 뒤 새롭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모레노 감독은 복잡한 전술 용어나 거창한 축구 철학을 꺼내지 않았다. 한국 축구를 존중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짧고 담백하게 전했다.

모레노 감독은 "영광이고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수년 동안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었고 존중해 왔다"라며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결과를 약속하지 않겠다. 대신 노력의 진정성과 존중을 약속하겠다"라며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경기장에서 하겠다"고 덧붙였다.

모레노 감독이 이름을 알린 건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참모로 활동하면서부터다. 2014년 바르셀로나에서 엔리케 감독을 보좌하기 시작했고 이후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함께했다. 엔리케 감독이 가정사로 대표팀을 떠났을 때는 직접 지휘봉을 넘겨받기도 했다. 선수로 프로 무대를 밟은 경험 없이 지도자로 정상급 무대까지 올라왔다는 점도 모레노 감독의 독특한 이력 중 하나다.



독립한 뒤에는 AS모나코(프랑스)와 그라나다(스페인)를 거쳐 PFC소치(러시아)를 이끌었다. 소치에서는 2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지만 계속 지휘봉을 잡아 한 시즌 만에 1부리그 복귀를 이뤄냈다. 이후 2025년 9월 팀을 떠났다.

소치 재임 시절엔 뜻밖의 논란도 있었다. 영국 '더 선'은 모레노 감독이 선수 영입과 훈련 일정 등을 짜는 과정에서 챗GPT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거리 원정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이 무려 28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는 계획이 만들어졌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모레노 감독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챗GPT를 러시아어 번역에 활용했을 뿐 훈련 계획이나 선수단 운영을 AI에 맡긴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주목한 부분은 오히려 모레노 감독의 데이터 활용과 상대 분석 능력이었다. 협회는 세계 정상급 클럽과 스페인 대표팀에서 쌓은 경험에 더해 데이터를 활용한 전술 설계와 상대팀 분석을 그의 장점으로 평가했다.



한국과 모레노 감독의 인연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모레노 감독은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떠난 뒤 새로운 사령탑을 찾던 2023년에도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년여가 지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클린스만 체제에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정상 도전에 실패한 한국은 이후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홍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다시 사령탑을 찾아야 했다.

협회는 이번에는 공개 채용 절차를 거쳤다. 서류 평가와 온라인 면접, 대면 미팅 및 계약 조건 협상 등을 진행한 끝에 모레노 감독에게 오는 11월 27일까지 대표팀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예정된 친선경기 6경기를 지휘한 뒤 평가에 따라 2027 AFC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도 포함됐다.

첫 시험대도 멀지 않았다. 한국은 오는 24일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28일 우루과이, 다음 달 2일 베네수엘라, 6일 우즈베키스탄과 차례로 맞붙는다.



모레노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갈 예정이다. 천안 코리아풋볼파크 인근에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K리그 현장도 직접 살펴볼 계획이다. 취업 허가와 비자 문제 등을 해결한 뒤에는 대표팀 명단 발표에 맞춰 공식 기자회견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모레노 감독은 별도의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복잡한 전술 설명이 아니라 한국 축구를 존중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며, 결과는 경기장에서 보여주겠다는 모레노 감독의 간결한 약속이 그라운드에서 어떤 축구로 나타날지가 관심을 모은다.


사진=모레노 SNS / 연합뉴스 / 대한축구협회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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