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월드컵을 비롯한 FIFA 핵심 대회의 상업적 운영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려던 초대형 프로젝트가 전 세계 축구계의 반발 속에 철회된 데 이어, 그동안 가까운 관계를 과시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선을 그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1일(한국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지분 매각 음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하며, 인판티노 회장에게 굴욕적인 최후를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인판티노는 최근 211개 FIFA 회원협회에 서한을 보내 FIFA 주관 대회의 상업 운영을 담당하는 별도 영리법인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FE) 설립 계획을 공개했다.
FIFA가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면서 최대 21%의 지분을 민간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막대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구상이었다.
월드컵과 클럽월드컵을 비롯해 세계 축구에서 가장 높은 상업적 가치를 지닌 대회들이 사실상 새로운 회사의 사업 기반이 되는 구조였다.
FIFA는 지분 매각을 통해 수십억 달러를 확보하고 회원협회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회원협회가 4년 주기마다 받는 약 800만 달러(약 115억원)의 지원금을 우선 2000만 달러(약 289억원)까지 올리고, 2035년 이후에는 2400만 달러(약 347억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특별 프로젝트 지원금까지 활용할 경우 개별 협회가 최대 4000만 달러(약 58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하지만 곧바로 축구계 반발이 거세게 일엉났다. 가장 강하게 반발한 곳은 UEFA였다.
UEFA는 축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을 사모펀드나 민간 투자자에게 넘기는 행위를 사실상의 '월드컵 민영화'로 규정했다.
회원협회에 거액을 배분하겠다는 제안 역시 프로젝트 승인을 얻기 위한 금전적 유인책이라는 비판까지 제기했다.
UEFA뿐만 아니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과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등도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중대한 계획이 추진됐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인판티노에게 필요한 국제적 지지 기반은 빠르게 무너졌다.
FIFA 내부에서도 반란이 시작됐다. 인판티노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했던 카를로스 코데이로 전 미국축구협회장이 전격 사임하며 자신은 이번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제안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회원협회뿐 아니라 축구의 장기적인 미래에도 해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FIFA 최고위급 관계자들의 공개 반발까지 이어지면서 인판티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민간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JP모건은 프로젝트 자문을 담당했고, 조슈아 쿠슈너가 설립한 투자회사가 투자 그룹을 이끌 가능성이 거론됐다.
조슈아 쿠슈너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동생이다.
이 때문에 인판티노가 트럼프 대통령 및 그의 가족과 구축해온 가까운 관계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는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인판티노의 프로젝트와 거리를 뒀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판티노가 지분 매각 제안에 관해 당신과 이야기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먼저 "누구?"라고 되물었다.
질문이 다시 전달되자 "아니다. 그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인판티노와 트럼프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친밀한 관계를 과시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차가운 반응이었다. 인판티노는 2026 월드컵 막판 "트럼프와 매일 전화헸다"고 할 정도였다.
SNS에서는 즉각 조롱이 쏟아졌다.
한 팬은 인판티노를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 빗대며 "이제 공 하나만 갖고 혼자 남겨진 신세"라고 비꼬았고, 또 다른 팬은 "인판티노, 넌 이제 끝났다"고 적었다.
그동안 인판티노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여겨졌던 트럼프 대통령마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손절'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인판티노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FIFA는 1일 인판티노 회장 명의의 공식 성명을 내고 FFE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인판티노는 "이 프로젝트는 FIFA 회원협회와 세계 스포츠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서 "회원협회 대다수의 지지가 있을 경우에만 추진한다는 것이 처음부터의 원칙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모든 의견을 경청한 결과 이 프로젝트가 처음 설정했던 목표와 맞지 않는 분열을 발생시킨 것이 명확해졌다"라며 "따라서 제안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과 며칠 전까지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백기투항이었다.
문제는 프로젝트 철회만으로 사태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UEFA가 인판티노에게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경우 긴급 불신임 투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UEFA 55개 회원협회는 인판티노의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향후 FIFA 주관 대회 보이콧 카드까지 검토했다.
불신임 투표가 현실화한다면 프로젝트 철회와 별개로 인판티노의 회장직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UEFA가 내년 FIFA 회장 선거에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도 거론된다. 나세르 알켈라이피 파리 생제르맹(PSG) 회장이 인판티노의 대항마로 언급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월드컵을 활용해 수십억 달러의 새로운 사업을 만들겠다고 나섰던 인판티노는 프로젝트를 철회했고, 이제 자신의 회장 자리까지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