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 극찬은 '립서비스'로 밝혀졌다.
어쩌면 이강인도 자신의 입지가 이렇게 흘러갈 것이란 걸 일찌감치 눈치 챘을 수도 있다.
24살로 축구 인생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는 이강인이 중요한 타이밍에 벤치 신세로 전락했다. 한 경기 결장했다고 보기엔 상당히 부정적인 신호가 나왔다. 올여름 이강인이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고 새 팀을 찾아나설 수도 있다.
그의 소속팀인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 생제르맹(PSG)은 지난 6일 프랑스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왕자공원) 구장에서 열린 2024-202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1차전 홈 경기에서 강팀 리버풀을 만나 0-1로 패했다.
리버풀이 이번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위팀이자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를 36개 팀 중 1위로 통과한 팀이어서 고전이 예상됐으나 오히려 PSG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다만 원정팀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가 맹활약한 가운데 후반 43분 리버풀의 선 굵은 플레이에 PSG가 한 방을 얻어맞아 석패했다.
PSG는 오는 12일 오전 5시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뒤집기를 노린다. PSG가 1차전에서 슈팅 수 28-2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기 때문에 2차전이 원정이지만 사력을 다해 붙어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축구팬 입장에선 더욱 쓰라린 한 판이 됐다. 한국 축구의 '뉴에이스' 이강인이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결장했기 때문이다.
엔리케 감독은 이날 경기 앞두고 브래들리 바르콜라, 우스만 뎀벨레,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로 스리톱을 구성했다. 미드필더는 비티냐, 파비안 루이스, 주앙 네베스로 구성했다. 이강인은 엔리케 감독이 극찬할 정도의 멀티 플레이어다.
하지만 스리톱과 중원 3명 모두 이강인이 아닌 다른 선수들이 선발로 나섰고, 후반 교체카드 3장도 이강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엔리케 감독은 바르콜라와 루이스, 흐비차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데지레 두에, 워렌 자이르-에메리, 곤살루 하무스를 집어넣었다.
모두 공격수 아니면 미드필더로 이들 대신 이강인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엔리케 감독은 한국인 미드필더를 선택하지 않았다.
단순한 한 경기 결장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강인 입장에선 뼈 아픈 결장이 됐다.
이강인은 2024-2025시즌 프랑스 리그1(1부리그) 전체 1호골의 주인공으로 시즌을 상쾌하게 출발했다. 전반기엔 부동의 주전은 아니었지만 주포지션인 측면 공격수는 물론 미드필더, 심지어 제로톱 시스템의 최전방 공격수까지 소화하며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반기엔 PSG의 모든 경기에 어떻게든 출전했다.
새해 들어 그의 입지가 급추락했다. PSG는 전반기에 큰 고민을 하나 안고 있었다. 간판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가 이적료 한 푼 내지 않고 스페인 거함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가운데 그의 득점 공백을 메워야 할 뎀벨레가 엔리케 감독과 갈등을 빚은 것이다.
뎀벨레가 챔피언스리그 원정 엔트리에 제외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이강인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뎀벨레 공백을 메웠는데 안타깝게도 PSG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이강인도 제로톱에서의 스트라이커 역할 등 생소한 포지션을 하다보니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전반기 리그1 전체 평점 3위를 차지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 괴력을 선보였다.
새해 들어 그의 입지가 180도 달라졌다. 뎀벨레가 엔리케 감독과의 갈등을 끝내면서 PSG의 고민거리였던 최전방 공격수로 보직을 바꿔 골을 펑펑 쏟아낸 것이다. 뎀벨레는 리그1 22경기 18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른 대회까지 합하면 34경기 26골을 기록하는 중이다.
여기에 프랑스 국가대표 바르콜라가 왼쪽 날개를 차지한 가운데 흐비차가 이강인 주포지션인 오른쪽 날개 주전을 꿰찼다.
흐비차는 2022-2023시즌 김민재와 함께 나폴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할 때 주역이다. PSG는 7000만 유로(1050억원) 거액을 주고 지난 1월 중순 영입했다. 큰 돈을 주고 데려온 선수인 만큼 안 쓰면 이상한 상황이 됐다.
이강인은 뎀벨레가 정상 컨디션을 찾고 흐비차가 이적하면서 전방 스리톱에 설 수 없는 선수가 됐다.
그렇다면 3명의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비티냐, 루이스, 네베스의 수준도 굉장하다보니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최근 4경기는 이강인의 현실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30분, 16분, 15분으로 출전 시간이 줄어들더니 이번 시즌 PSG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 중 하나인 리버풀전에서 아예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댜.
사실 이강인이 전반기에 보여준 기량은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엔리케 감독이 그를 여러 포지션에 쓰면서 철저하게 로테이션 멤버로 한정했음에도 들어갈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이강인은 6골 5도움을 기록 중인데 이 중 골과 도움 몇 개는 월드클래스 극찬을 받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뎀벨레도 이강인의 기량을 인정한 적이 있다.
엔리케 감독은 2023년 여름 부임한 뒤 이강인에 대해 "배고픔이 있는 선수여서 좋다",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어 환상적이다", "이강인은 훌륭한 선수다. 의심하지 말아달라", "축구가 11명으로 하는 게 아쉽다. 이강인을 선발로 쓰지 못하지 않나"라며 좋은 코멘트를 여러 차례 했다. 언론도 이를 믿었다.
하지만 이강인은 엔리케 감독이 데려온 선수가 아니라 구단이 영입한 선수였다. 엔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확보했고 그러면서 이강인이 밀리는 중이다.
흐비차의 입단은 이강인 입지 대폭 축소의 결정타가 됐다.
마침 프랑스 언론도 이강인이 올 여름 구단을 떠나야 하는 방출 대상으로 분류했다.
프랑스 매체 '풋01'은 7일 "이강인은 아마도 PSG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PSG가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강인과 결별하기로 했다"고 단언했다.
매체의 신뢰도를 알 순 없지만 한창 뛰어야 할 이강인이 벤치에서도 4~5번째 선수로 추락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강인은 지난 겨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뉴캐슬, 노팅엄 등 빅클럽 아니면 이번 시즌 상위권에 자리잡은 구단들이었다.
뉴캐슬의 경우엔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이강인을 원하는 모양새다.
러브콜 보도가 전부 다 실체가 있었는지 확인되진 않고 있지만 적어도 이강인이 새 활로를 모색할 만큼 그를 원하는 구단들은 여럿 된다.
내년 월드컵 출전을 위해서라도 이강인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사진=연합뉴스 / PSG / 엑스포츠뉴스DB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