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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규 "'원피스' 루피처럼, 좋은 동료들을 많이 모으고 싶어요" [낡은 노트북]

기사입력 2021.02.21 10:00 / 기사수정 2021.02.21 01:29


[낡은 노트북]에서는 그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났던 배우들과의 대화 중 기사에 더 자세히 담지 못해 아쉬웠던, 하지만 기억 속에 쭉 남아있던 한 마디를 노트북 속 메모장에서 다시 꺼내 되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나도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겠지' 이런 바람이 있었죠. 즐기다 보면 언젠간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됐잖아요?(웃음) 제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하려 했고 그것을 도와준 동료들이 있었어요. 점점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아마 앞으로도 더 그렇겠죠?  저는 정말 '원피스'의 루피처럼, 그런 좋은 동료들을 많이 모으고 싶어요.(웃음)" (2019.01.17. '극한직업' 인터뷰 중)

강렬한 삭발 헤어스타일에 너무나 리얼했던 연기까지, '실제 조선족을 데려온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실감나는 활약을 펼치며 영화 '범죄도시'(2017)의 흥행에 힘을 보탰던 사람. 배우 진선규입니다.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출신 흑룡파 장첸(윤계상 분)의 오른팔 위성락으로 열연하며 대중의 눈을 한순간에 사로잡은 진선규는 이후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개성 있는 연기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9년 1월 개봉해 1626만 명의 관객을 모은 '극한직업'은 진선규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기도 했죠. 진선규는 마약반의 트러블 메이커 마형사 역을 맡아 수원 왕갈비집 아들 출신다운 요리 실력을 선보이며 위장 창업한 치킨집을 단숨에 맛집으로 탈바꿈시키는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선규를 포함해 마약반 5인방으로 활약한 류승룡, 이하늬, 이동휘, 공명은 영화 개봉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며 안팎에서 끈끈함을 보여주고 있고요.

'극한직업' 개봉을 앞두고 진선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범죄도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고마운 분들께는 순차적으로 연락하겠다'면서 울다가 웃다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던 수상 소감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죠.

자신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자리한 취재진을 보며 "이런 라운드 인터뷰는 처음이다"라고 선한 미소와 함께 연신 긴장한 모습을 보이던 진선규는 질문이 하나하나 이어질수록 조근 조근 입담을 발휘하며 취재진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습니다.

진선규가 허심탄회하게 전하는 자신의 인생 얘기를 들었던 것도 이때였죠. '극한직업' 멤버들과의 남달랐던 합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연기를 대하는 본인의 마음가짐을 언급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음…. 제가 연기를 대하는 스타일이기도 한데, 그 스타일을 저희 다섯 명이 골고루 다 갖고 있더라고요. 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 것만 열심히 한다기보다,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내 연기를 '탁' 하면 이 사람이 제게 주는 리액션으로 제 캐릭터가 사는 것이요. 기본적으로 각자의 말투 같은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게 잘 어우러진 건 서로를 잘 믿고 '이 사람을 위한다'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어요. 제가 연극을 했을 때도 그랬었지만, 만약 제 분량이 있어도 분량이 없는 분들의 것까지 잘 듣다 보면 제 캐릭터가 계속 더 축적되고 쌓여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좋은 연기'라는 것, 그게 지금 연기를 대하는 저의 마음이죠."


고향 경남 진해에서 아무 연고도 없었던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후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만들며 연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진선규는 당시의 자신을 '봇짐장사'라고 표현하며, 서울 지인들이 머물고 있던 이곳저곳을 떠돌던 과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젊으니까 할 수 있다'는 패기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결국 일주일 동안 한 숨도 못 잔 채 지하철에서 문을 차는 '펑!'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도 했죠. 밥까지 제공해주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학교 식당 급식 설거지 일까지 적극적으로 나섰고, 군 제대 후 복학한 뒤 3개월 동안 공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첫 자취집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또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까지, 들을수록 묘하게 더 집중하게 되는 진선규의 말에 한 취재진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고 애정 어린 농담을 던졌죠.

진선규는 "주위에서도 '짠규(짠한 선규)'라고 많이 말하세요. 선규 얘기를 들으면 도와주고 싶고 그렇다고요. 옛날엔 다 그랬잖아요. 젊었을 때니까요. 아, 약간 '인간극장' 같은가요? 목소리가 이래서 더 슬퍼 보이나 봐요"라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연극을 함께 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진선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연기 활동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진선규는 "제가 아마 죽을 때까지 인터뷰에서 계속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요. 군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만났던 학교 친구들, 저와 동갑내기인데 지금 제가 소속돼있는 극단의 대표기도 하고 제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죠.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냥 즐거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을 이었죠.

'우리 운동 동아리 만들어서 운동하고 재밌게 놀자'고 하다가, 졸업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지면 아쉬우니 작품을 하나 만들어보면 어떻겠냐 말했던 것이 일명 '진선규 연기의 시초'였습니다.

"전 연기를 못하는 애였어요. 그런데 졸업을 하면서, 우리끼리 만들었던 그 워크숍의 스타트가 정말 재미있었던 것이죠. 말하는 것이, 또 상대방과 이렇게 호흡을 맞추는 것이 재밌다는 것을 그 때 느꼈어요. '난 훌륭하고 유명한 배우가 될 거야' 이런 다짐은 없었죠. 그저 '재미있게 놀자! 우리 같이 있을 수 있어!' 이런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렇게 친구들이 늘어가면서 그 공연이 정기화되고, 남들 눈에 상업적이진 않았지만 소위 말하는 '대학로 선수' 분들이었던 차이무의 이성민 선배님 같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기도 했었거든요.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하면서 왔던 것이 15년이 지난 것이죠.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많이 좌절했을 것이에요."

진선규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나도 드라마에 나오고 언젠간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겠지'란 마음으로 연기를 이어왔다고 했습니다.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도 없었다고 덧붙였죠.

"즐기다 보면 언젠간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됐잖아요?"라고 환한 표정을 지은 진선규는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 속 캐릭터 루피를 언급하며 "제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하려 했고 그것을 도와준 동료들이 있었어요. 점점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아마 앞으로도 더 그렇겠죠? 저는 정말 '원피스'의 루피처럼, 그런 좋은 동료들을 많이 모으고 싶어요"라며 밝게 말했습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원피스'는 많은 캐릭터들이 주인공 루피와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죠. 연기를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루피가 여행하며 친구들을 모으는 과정에 비유한 진선규의 순수함이 엿보였던 때였습니다.

"저는 원래 정말 부족한 점이 많거든요. 재치가 있고 재능이 있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옆에서 누군가가 저를 도와주고 하면 저도 모르게 나아지는 그런 부분이 있더라고요"라고 겸손하게 말을 이어가던 진선규는 "이러다가 어느 순간 멜로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며 취재진의 반응을 살피다, 이내 "제가 너무 자만했나요"라고 너스레를 더하면서 소탈한 인간미를 보여주기도 했죠.

진선규의 바람처럼, '극한직업' 이후에도 그는 '사바하'(2019), '돈'(2019), '롱 리브 더 킹:목포영웅'(2019), '암전'(2019), '퍼펙트맨'(2019)과 연극 '나빌레라'(2019), '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2020) 등 스크린과 무대를 오가며 누구보다 바쁜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났죠. '좋은 동료들을 얻고 싶다'는 소망은 송중기와 김태리, 유해진 등 실제로도 남다른 팀워크를 자신했던 '승리호' 멤버들과 어우러지며 이룰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투박한 언변이더라도, 진심으로 솔직하게 소통하려고 하는 인터뷰이의 마음은 듣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진선규는 '극한직업' 속 요리하는 캐릭터를 위해 닭 발골을 배웠다면서, "일단은 닭을 자르고, 발골하는 방식이 다 있거든요. 그게 16조각을 내려면 칼을 닭의 어떤 부위에 찔러야 하는지도 다 다르더라고요. 집에도 닭을 30마리씩 가져가서 연습했었어요"라고 닭 발골하는 모습을 손으로 묘사해보였죠. 녹취록 속에는 진선규의 말을 들으며 '오~' 하이톤의 리액션으로 그의 말에 일제히 호응하는 취재진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인터뷰를 해도 예전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기 어려워진 지금, 당시 대화 도중 몇 번의 헛기침을 이어가던 진선규가 인터뷰 말미 자신 앞에 놓인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했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 제가 A형 독감에 걸려가지고요. 1월 1일 날 걸렸었고, 약 먹었어요! 지금이 1월 17일이니까…. 다 나았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공기가 건조해지면 기침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침이 난 것이에요. 절대 전염 안 됩니다. 어? 갑자기 다 멀어지시는데요?(웃음)"

멋쩍을 수 있는 상황을 재치 있고 유연하게 넘길 줄 아는 센스, 그리고 그 뒤에 다시 이어지는 취재진의 웃음소리까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뭔가 아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자의 일로 마주앉았던 자리지만, 그 속에서도 왁자지껄하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순간들이 진선규와의 2년 전 인터뷰를 통해 문득 다시 떠오릅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SBS 방송화면, 넷플릭스, 각 영화 스틸컷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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