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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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메인스트림'을 향해 내민 한 장의 '명함' [HIP:질의]

기사입력 2020.01.28 08:50 / 기사수정 2020.01.28 03:34

이덕행 기자
[HIP:질의]는 힙찔이라는 조롱과 랩스타라는 화려함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힙합 아티스트를 만나보는 엑스포츠뉴스의 코너입니다.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HIP:질의]가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이덕행 기자] "이 앨범이 나를 대신했어 봐 이 앨범이 명함"

'Boiling Point'. 우리말로 하면 끓는 점이다.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하면 액체의 표면뿐만 아니라 액체 내부에서도 기화가 시작된다. 2019년 하반기, 한국 힙합 팬들에게 'Boiling Point'는 또 다른 의미가 추가됐다. 힙합 레이블 VMC에서 새롭게 선보인 큐레이션 프로젝트의 이름을 'Boiling Point'라고 명명한 것이다.

VMC의 수장 딥플로우는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는 뮤지션들이 지원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고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점이 '끓는점'이라고 생각했다"며 "재야에 묻혀있는 많은 신인 아티스트들이나 잘하는 친구를 선별해서 소개해주는 일종의 큐레이션이다"고 '보일링 포인트'를 소개했다.


'보일링 포인트'의 첫 주자로는 래퍼 이현준이 선정됐다. 이현준은 지난해 11월 13일 첫 번째 정규앨범 'Main Stream'을 발매하며 '보일링 포인트'의 시작을 알렸다.

앨범을 낸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1월 중순, 이현준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현준은 이번 앨범 제작 과정부터 앨범 발매 이후의 활동, 2월 1일 진행되는 콘서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앨범을 낸 지 한 달 정도 넘었는데 쉬면서 다음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 제가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반응이라고 하면 힙합 팬들의 반응일 텐데, 그래도 2019년에 한 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앨범을 낼 때마다 감흥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첫 앨범을 냈을 때 이런 반응이었으면 많이 뿌듯했을 텐데 지금은 '진심으로 너무 좋다' 그 정도까지는 없다. 그래도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앨범을 내고 나서는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1일에 콘서트가 있어서 구상하면서 게스트를 섭외 중이다" 

딥플로우의 첫 번째 선택이라는 기대와 함께 공개된 'MAIN STREAM'은 더블 타이틀곡 'Main Stream(간천)'과 'MC(Main Character)'를 비롯해 총 10곡이 수록됐다. 거친 목소리로 랩을 뱉은 이현준은 성공을 꿈꾸며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선 자신의 모습과 성공을 이룬 뒤의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을 통렬하게 담아냈고, 각종 힙합 커뮤니티의 호평을 받았다. 

"사실 그전에도 앨범은 다 만든 상태였다. 용기를 내서 상구 형(딥플로우)께 앨범을 들려드리겠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앨범을 들려드렸다. 유통과 CD를 만들 제작비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상구 형이 지원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려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보일링 포인트를 설명해주셨고 바로 알겠다고 했다. 상구 형이 맡아주시면서 바뀐 부분도 있다. 제가 만들었을 때는 '스킷'이 많이 들어가 있었는데 상구 형이 너무 지루하다며 많이 쳐냈다. 또 프로덕션 적으로도 악기나 전체적인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


딥플로우가 야심 차게 내놓은 '보일링 포인트'의 첫 주자로 나선다는 점이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법도 하지만 이현준은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제 앨범에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보일링 포인트의 첫 주자라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다. 혼자 준비하면 온전히 제 책임인데 책임을 나누게 되는 부분에서 부담도 있었다. 그래도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현준은 지난해 6월 발매한 EP 'Analog TV' 이후 7월부터 앨범 작업을 시작해 5개월이라는 작업 끝에 앨범을 발매했다고 전했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타이틀인 '메인스트림'이다. '메인스트림'은 주류와 간천, 두 가지 뜻을 가진 단어로 이현준은 두 개의 타이틀곡 'Main Stream(간천)'과 'MC(Main Character)'를 통해 이를 적절하게 녹여냈다.

"'메인스트림'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는데 뜻이 두 개더라. 바다가 돼서 만나는 '간천' 이라는 뜻이 있고 '주류'라는 의미가 있더라. 제가 인천 바다 앞에서 태어났는데 바다에서 한강(서울)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거슬러 올라와서 한국의 메인스트림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다시 바다로 돌아가서 간천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뜻이 일맥상통해서 '메인스트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두 개의 타이틀곡과 함께 인상 깊은 트랙 중 하나는 8번 트랙 '명함'이다. '명함'의 주제는 7번 트랙 'MC' 마지막에 나온 마이노스의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 자기한테 명함이 되는 앨범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냐'는 마이노스의 말에 이현준은 '이 앨범이 나를 대신했어. 봐 이 앨범이 명함'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이 앨범을 만들며 처음 해보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 먼저 제목을 정하고 곡을 만들었다. '명함'이 8번에 있는 이유는 트랙의 뒤로 갈수록 제가 서울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래퍼가 돼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담고 싶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클럽에서 더블링치는 일을 많이 했다. 첫 믹스테잎이 나오기 전까지는 저를 소개할 말이 없더라. 그때 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자각했다. '메인스트림'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있고 회의감을 느끼기 직전, 이제는 내가 뭔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


힙합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규 1집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많은 아티스트가 정규 1집을 통해 지금까지 이뤄낸 성공 혹은 앞으로 이뤄낼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지만, 이현준은 자신의 어두운 가정사와 꿈을 이뤄낸 후 다시 돌아가고 싶은 회의감을 허심탄회하게 담아냈다.

"제가 받았던 영향,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과시만 하는 건 아니었다.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1집에서 힙합의 기초적인 그런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당장의 멋을 보여주기보다 그런 것을 보여주며 '멋있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돌린 것 같다"

또한, 각 트랙의 마지막과 다음 트랙의 도입부가 이어지는 유기적인 흐름도 인상적이다. 트랙의 마지막에 나온 가사가 다음 트랙의 제목과 연관된다거나 트랙 말미 짧은 독백이 다음 트랙을 예고하기도 한다.

"이 앨범을 준비하며 켄드릭 라마의 'Good Kid, M.A.A.D City' 상구 형의 '양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 앨범 모두 트랙 간의 배치에서 연결되는 요소가 확실히 들어가 있었다. 저도 트랙과 트랙 사이를 넘어갈 때 유연하게 넘어가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는 앨범단위로 듣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앨범단위로 듣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이런 구성을 택했다. 그런데 나오고 나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너무 예상이 가나 싶기도 하고 친절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현준의 뒤를 이어 '보일링 포인트' 두 번째 주자로 나선 래퍼는 록스펑크맨이다. 록스펑크맨은 지난해 11월 23일 'THE RED APPLE'을 발매했고 이현준과 록스펑크맨은 다양한 공연장에서 모습을 보였다. 

"원래는 친분이 없었는데 그 친구 앨범이 나오면서 많이 만났다. 요즘에는 콘서트 때문에 많이 만난다. 저번 달 대구 '힙합 트레인' 공연을 함께하며 많이 친해졌다"

두 사람은 오는 2월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클럽 블루프린트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게스트로는 딥플로우, 넉살, 뱃사공, 더콰이엇, 얼돼, 문선 등 다양한 래퍼들이 합류한다.

"준비는 다 끝났다. 저는 가사만 외우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연을 하면 할수록 멘트를 많이 해달라고들 하시는데 이번 콘서트에서는 멘트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이현준과 떼 놓을 수 없는 크루가 바로 보석집이다. 이현준을 비롯해 김태균, QM, 마이노스, 쿤디판다, 심바자와디, 라임어택 등이 속한 크루로 깊이 있는 가사로 호평을 받는 크루다.

"2017년 '끓는 물의 개구리'라는 믹스테잎을 발매했는데 크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 컴퍼니션 공연을 다 나갔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넋업샨 님이 심사위원을 하는 공연에서 우승했던 것 같다. DJ켄드릭스에게 좋은 인상을 줬고 심바 자와디 형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는데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후 QM형에게도 문자가 왔다. 앨범을 들었는데 너무 좋다고 하시면서 만나게 됐다. 형동생 관계로 지내다가 EP를 발매했다. QM형에게 들려주려고 형 컴퓨터에 남겨뒀다. 그런데 테이크원형이 놀러 갔다 그 앨범을 듣게 된 거다. 테이크원 형도 좋게 들으면서 합류하게 됐다"

2018년 발매된 QM의 정규앨범 'HANNAH'에 '보석집'이라는 트랙이 있지만, 이현준과 테이크원만 참여했을 뿐 크루 단위의 작업물은 없는 상황이다. 많은 팬들이 보석집 크루의 작업물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현준은 약간은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아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저도 그렇고 형들도 그렇고 작업하는데 다들 오래 걸린다. 각자 개인의 작업물에 대한 애착도 커서 '다 같이 모여서 하자'가 잘 안된다. 그래서 아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할 것 같다. 작업은 많이 할 건데 단체로 무언가를 발매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다(웃음)"



이현준은 현재 별다른 회사 없이 홀로 활동하고 있다. 전문적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회사와 계약을 하고 싶을 법도 하지만 이현준은 홀로 메인스트림에 온 것처럼 홀로 걸어온 길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거다. 친구들도 방송 프로그램, 회사에 대해 물어보는데 그게 어떤 성공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쉽다.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인스트림'의 마지막 트랙인 '변방'은 원하던 메인스트림에 도착한 이후의 허탈감을 담아낸 노래다. "이제 모이는 서울은 떠나는 곳으로" "도착을 기대했던 나는 끄트머리에/ 멀리 온 건지 간 건지 모른 채 어디에" 등의 가사에는 치이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녹아있다. 이현준에게 2020년 계획을 묻자 '변방'처럼 잠시 쉴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매년 뭔가를 하기에는 조금 그래서 올해는 조금 쉴 것 같기도 하다. 작업이 들어오면 하겠지만 제 이름으로 무언가를 낼 계획은 아직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살고 있다. 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R&B 앨범을 몰래 준비하고 있다.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것 말고는 딱히 없다.

dh.lee@xportsnews.com / 사진 = 이현준

이덕행 기자 dh.le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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