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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유선혜, "아이스댄싱 국가대표의 꿈, 아직 살아있어요"

기사입력 2010.05.11 05:24 / 기사수정 2010.05.11 05:2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20, 고려대)의 등장 이후, 많은 피겨 지망생들이 은반을 찾고 있지만 여자 싱글 유망주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약하는 피겨 스케이터들 중, 상당수의 여자 싱글 선수들과 소수의 남자 싱글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페어와 아이스댄싱 선수들은 전혀 없다. 남녀 스케이터가 짝을 맞춰 그윽한 연기를 펼치는 아이스댄싱의 계보는 이미 끊긴 지 오래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1세대 선수인 홍용명(78)이 짝을 이뤄 완성한 팀이 한국 최초의 아이스댄싱팀이었다. 아이스댄싱의 계보는 근근이 유지됐지만 박윤희-류종현 조(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활동)와 양태화-이천군 조(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 그리고 김혜민-김민우(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 조를 끝으로 맥은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스댄싱 선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국적'을 지닌 아이스댄서가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었다. 바로 지난 2008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유선혜(26)가 그이다.

20년 넘게 타온 스케이트. 뒤늦게 시작한 '운명의 댄스'

스케이트는 유선혜에게 삶의 전부였다. 어머니의 권유로 6살 때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그는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케이트를 처음 탔던 곳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였어요. 어머니의 권유로 어렸을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는데 적성이 맞았는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탔어요. 국내에서 스케이트를 탄 건 12살까지였어요. 96년도에 미국 버지니아로 떠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버지니아에 있는 아이스링크를 수소문해 피겨 선수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10대 후반까지 여자 싱글 선수로 활약했지만 특별한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유선혜의 신장은 168cm에 달했다.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장신에 속하는 신장이다. 큰 키는 유선혜의 발목을 잡았고 점프를 익히는데 걸림돌이 됐다.



"성장기에 갑자기 키가 큰 점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키가 큰 편이었어요. 위로는 언니가 있고 아래는 여동생이 있는데 유독 저만 키가 컸죠(웃음) 트리플 살코를 익히고 트리플 토룹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유선혜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스케이팅의 세계로 인도해준 스승은 방수자(68) 코치였다. 유선혜는 방학이 되면 고국에 귀국해 늘 방 코치를 찾았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마친 유선혜는 겨울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그리고 방수자 코치를 찾는 일도 잊지 않았다.

스케이터로서 값진 결과를 얻지 못하는 제자를 지켜본 방 코치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바로 여자 싱글 선수의 길을 버리고 아이스댄싱 선수로 다시 태어나라는 제의였다.

"아무리 존경하는 선생님의 의견이었지만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코치 선생님과 갈등도 생겼죠. 싱글 선수를 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점프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점프에 대한 도전 의식을 쉽게 버릴 수 없었어요"

168cm의 신장은 여자 싱글 선수로서는 매우 큰 키에 속한다. 그러나 아이스댄싱 선수의 경우는 다르다. 점프를 하지 않고 은반 위에서 우아한 연기를 펼치는 아이스댄서는 길고 늘씬한 체격을 가지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아이스댄싱을 시작하면서 피겨 스케이팅에 새롭게 눈뜨게 됐어요. 제 키가 아이스댄서에게는 결코 큰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리고 싱글에 비해 댄싱이 제 몸에 꼭 맞는 맞춤옷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늦게 아이스댄싱으로 전향한 유선혜는 자신이 '싱글 선수'가 아닌, '아이스댄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북미와 유럽, 그리고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경우를 보면, 어린 선수가 어느 종목에 재능이 있는 지를 먼저 파악한다.

싱글에 재능이 있는 유망주는 점프를 비롯한 기술을 익히고 아이스댄싱에 적합한 인재는 스텝과 스케이팅에 주력한다. 유선혜는 싱글 선수보다 아이스댄싱에 적합한 스케이터였다.

"아이스댄싱 선수의 길을 조금 더 일찍 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죠. 지금은 그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스 댄서의 숙명, 혼자가 아닌 둘인 점을 명심하라

김연아는 자신의 강력한 상대를 외부에 두지 않았다. 주변에서 아사다 마오(20, 일본)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때에도 김연아는 묵묵히 "다른 선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나 내 연기에 전념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대답해 왔다.



싱글 선수들의 진정한 투쟁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페어나 아이스댄싱의 경우는 다르다. 아이스댄싱은 파트너 없이는 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과 혼연일치가 되야하고  '나'가 아닌, '우리'가 성립해야 한다.

"아이스댄싱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어요. 싱글 선수를 할 때는 저와 코치 선생님과의 의견이 조율을 이루면 됐지만 아이스댄싱의 경우는 달랐어요. 저와 코치의 사이에 파트너라는 새로운 팀원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싱글 선수의 경우, 연습이 안 되면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페어나 아이스댄싱의 경우는 파트너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싱글 선수로 활약할 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벽'이 유선혜에게 다가왔다.

"한동안 저와 팀을 이룬 라밀 샤클로브(우즈베키스탄)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도 있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코치의 의견은 반드시 따라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샤클로브는 저와는 생각이 달랐고 자기 의견이 강해서 자주 충돌했습니다"

라밀 샤클로브는 2000년부터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로 활약해 왔다. 2005년,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2004-2005 4대륙 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그는 유선혜와 마찬가지로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유선혜를 지도하고 있던 겐릭 스리텐스키(러시아) 코치의 소개로 두 스케이터는 짝을 이루게 됐다.

"아이스댄싱 선수들이 연습하는 방법은 다양해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 스텝 위주로 연습을 할지 아니면 스피드나 에지, 혹은 표현력 위주로 할지를 결정하게 되죠. 이 문제에서 항상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싱글 선수일 경우,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댄싱을 하면서 새롭게 극복해야 될 벽가 생긴거죠"

충돌도 잦았지만 두 스케이터는 호흡도 잘 맞았다. 현재 아이스댄싱 계를 주름잡고 있는 팀들을 보면 모두 오랜 세월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 많다. 단기간에 최상의 호흡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다.

짧은 기간 동안 유선혜와 라밀 샤클로브는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08년 고양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유선혜-샤클로브 조는 출전한 13개 팀 중, 1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유선혜에게 대회 준비보다 더욱 힘든 일이 있었다. 바로 고국이 '아이스댄서'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스댄스 파트너와 지도자가 없었던 고국, 그리고 상처로 끝난 '미스 텍사스 대회'

유선혜의 꿈은 '피겨 국가대표'였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20년 이란 세월동안 스케이트에 전념해왔다. 하지만, 아이스댄싱으로 전향한 뒤, 고국은 유선혜를 받아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스댄싱을 전문적으로 지도할 코치가 부족했고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선혜는 스승인 스리텐스키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파트너를 물색했다. 그리고 함께 팀을 이룰 파트너를 찾아내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국적이 아닌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다.



힘겹게 팀을 완성한 유선혜와 스리텐스키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외국인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로 뛸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대한체육회의 조항에 따르면 '출입국 관리법에 따라 결격사유가 없으면 경기단체별로 등록 여부를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대표'였다. 국가대표가 되려면 반드시 국적을 취득해야 가능했다. 결국, '아이스댄서 유선혜'는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방법으로 선처에 겨우 받은 조건은 외국 선수와 함께 팀을 이루어도 2년간 국내에서 활약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스댄싱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지도자가 부족했던 한국에서 2년 동안 활동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아이스댄싱 선수로 활약하려면 스스로 독학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국에서 외면을 받은 유선혜는 라밀 샤클로브의 조국인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활동하게 됐다. 후에 유선혜도 밝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적이 없다. 당시 그가 아이스댄싱 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었다.

우즈베키스탄 연맹은 외국 국적의 선수라도 자국 대표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년동안은 반드시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로 뛰어야 된다는 조건을 제시받은 유선혜는 샤클로브와 호흡을 맞춰왔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스댄싱 코치님과 파트너가 없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싱글 선수와 함께 링크를 사용해야 하는 점도 쉬운 일은 아니었죠. 싱글과 댄싱은 다른 종목이기 때문에 함께 연습을 하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싱글과 아이스댄싱의 연습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요"

그토록 하고 싶은 스케이트에서 유선혜의 외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경험을 얻고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미스 텍사스' 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했지만 '진'으로 뽑히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러나 축하연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당시, 출전자의 한 가족이 몰려와 격렬하게 항의를 했다. 바로 유선혜가 텍사스 출신이 아닌, 버지니아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텍사스는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처음 출전할 때에는 이 문제가 큰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회 주최 측과 참가 서류에 사인을 주고받은 후였다.



유선혜는 한국 아이스댄싱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점과 미스 텍사스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희망을 품게 됐다.

"당시에는 상처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치유됐습니다. 그리고 스케이트를 위해 국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제가 활동했을 때에는 환경이 매우 열악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 발전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김연아의 등장으로 피겨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앞날을 충분히 밝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국가대표의 꿈

현재 유선혜는 조지 메이슨 대학 휴학 상태에 있다. 국내 대학 편입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그는 피겨 지도자의 일도 수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2~3번, 안양과 수원 아이스링크에 나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스댄싱 출신은 그는 주로 스케이팅과 표현력 등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 스케이터들은 기술은 좋지만 스케이팅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비교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 문제는 꾸준한 연습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또한, 은반은 자신의 무대이기 때문에 기술만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은반 위에서 크게 오버해도 관객들은 극히 일반적으로 본다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는 점이 중요하죠"

유선혜는 두 달 전부터 김세열(김연아의 전 코치, 현재는 남자 싱글 김민석의 지도자) 코치의 서브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지도자 생활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남겼다. 또한, 국가대표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속내도 꺼냈다.

"솔직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파트너를 만나고 기회만 주어지면 다시 은반 위에 서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가까운 중국과 일본만 해도 아이스댄싱이 성장할 기반이 갖춰져 있어요. 실제로 중국과 일본팀들의 연기를 봤는데 기량이 예상보다 훨씬 좋았어요. 우리나라도 싱글뿐만이 아닌, 아이스댄싱이 발전하려면 지원과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선혜가 가장 좋아하고 흠모한 스케이터는 미셸 콴(29, 미국)이다. 올 초, 콴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유선혜는 방송국의 리포터로 그를 맞이했다. 콴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밝힌 유선혜는 김연아를 비롯한 피겨 유망주에 대한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예전에도 김연아와 같이 완벽한 스케이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라나는 피겨 유망주들도 스케이팅 자체를 즐기면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선수가 최고가 될 수는 없잖아요? 결과에 상관없이 스케이트를 즐기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사진 = 유선혜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유선혜 제공]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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