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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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Of By For Ronaldo

기사입력 2009.04.05 17:18 / 기사수정 2009.04.05 17:18

박문수 기자
 
 




 2009년 3월 8일 팔메이라스와 코린티안스의 Campeonatos Paulista 더비<상파울루 주 리그 경기 중>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연출됐다. 바로, 축구 황제 호나우두의 복귀 골이 터진 날이다. 후반 62분경 출전한 호나우두는 인저리 타임이 다가오자 결정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극적인 동점을 이끌었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7경기에 출장해서 5골을 넣는 모습을 보여주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글을 토대로 호나우두의 호나우두에 의한 호나우두를 위한을 주제로 그에 대해 전격 해부해 보겠다.
 
 1976년 9월22일은 브라질 축구 사에 있어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날이다. 뉴욕 코스모스 소속의 축구황제였던 펠레가 은퇴한 날이자,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는 축구황제로 등극할 Luiz Nazario de lima Ronaldo가 태어난 날이다. 즉, 브라질을 지배한 펠레의 은퇴식이 우연찮게 새로운 황제 호나우두의 탄생과 일치한 것이다. 이후 그는 과거 황제가 그랬듯이 크루제이로, PSV 아인트호벤,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 레알 마드리드, AC밀란을 거쳐 최근의 코린티안스까지 단단한 클럽에서의 커리어를 쌓으며 순항한다. 더 나아가 역대 월드컵 최다 득점인 15골 기록과 벤치에서 보낸 94년과 8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2002년에는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맛 보게 된다.
 
 즉, 그는 축구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97년 한국 대 브라질 전이 열린 잠실 메인 스타디움이다. 나이키는 그들과 스폰서를 체결한 한국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에서 호나우두를 비롯한 당시의 세계최강 브라질 국대를 초청해준 것이다. 경기는 브라질의 승리였지만, 당시 유행했던 축구 = 호나우두란 단어의 주인공을 보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유행했던 젝스키스의 리더 은지원을 닮은 듯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외모와 스님도 아닌 빡빡 민 대머리의 소유자인 그는 그야말로 축구이며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서로 내가 호나우두야 란 말과 함께 축구를 즐겼으며 나이키는 MJ 이후 호나우두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했으며 그의 조국 브라질은 순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라는 칭호가 너무 부담이 되었을까? 그는 98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나락의 길에 빠지게 된다. 대회 출전 당시 그는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부상을 숨긴 채 출장해야 했고, 팀 동료인 호마리우와 주닝요는 월드컵 무대를 밟지도 못하게 되었다. 설상가상 죽을 힘을 다해 조국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결승 직전 일어난 발작으로 인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급한 대로 약물을 강제 투여한 상태로 프랑스와의 경기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그는 쓸쓸히 조국의 3:0 대패라는 수모를 눈앞에서 겪게 된다. 이후,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99 코파 아메리카에 출장하게 되어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인하여 그라운드에서 2년 간 아웃 되게 된다. 그리고 2001년 12월 그는 인테르 밀란 경기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소속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공교롭게도 마지막 라운드에서 일어난 그레스코의 난으로 인하여, 소속팀은 아쉽게 리그 타이틀을 놓치고, 그 역시 유럽의 빅 리그로 온 이후로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비록 다음 해인 02/03시즌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라리가를 우승하게 되면서 리그 타이틀 획득에는 성공하지만 그의 유럽에서의 빅 리그 선수생활 중 단 한번의 리그 타이틀 획득은 그의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굴욕적일 것이다. 또한 06/07시즌 후반기 밀란 입성 후 리그에서 팀을 위해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뛴 경기로 인하여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상실하였기에 소속팀 우승을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던 불운의 스타였다.
 
 그의 유년 시절을 살펴보면, 호나우두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모든 브라질 출신 선수가 그렇듯이 그에게 있어 축구는 인생인 동시에 삶일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플라멩고의 서포터였던 그는 그곳의 유소년으로 입단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차비가 없어서 못 받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자일징요에 의해 스카우팅 된 직후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그는 늘 너무나도 가난했던 그 시절이 아직까지 한이 됐다는 식의 인터뷰를 해왔다.
 
 그러한 가난이 원인이었을까? 무수히 많은 수입을 통해 돈을 모은 호나우두는 다소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다수의 여자와의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부상으로 인해서인지<갑상선 비대증> 운동선수라 할 수 없을 만큼의 뚱뚱한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이러한 그의 생활은 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재기의 가능성을 비추는 선수이다. 양쪽 무릎의 슬개건이 나가도, 오랜 기간 부상으로 인해 피치에서 벗어나도, 그는 반드시 현역으로 복귀하여 전세계에 존재하는 그의 팬들을 위해 뛰고 있다. 비록 이제 그에게서 우리가 10여 년 전에 봐왔던 전성기 시절 보여준 날렵함과 상대를 쉽게 속이는 드리블 능력은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단지 골만 잘 넣는 선수로서의 이미지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그가 브라질과 소속팀의 9번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가 소속팀 코린티안스에서 나아가 2010년 조국을 위해 9번이라는 유니폼을 입고 남아공에서 비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ps> 그의 커리어 기록


호나우두의 시즌 기록

1993-94  크루제이루 : 리그 32경기 34골, 토탈 49경기 45골
1994-95  아인트호벤 : 리그 33경기 30골, 토탈 36경기 35골 
1995-96  아인트호벤 : 리그 13경기 12골, 토탈 21경기 20골
1996-97  바르셀로나 : 리그 37경기 34골, 토탈 49경기 47골  
1997-98  인테르 : 리그 32경기 25골, 토탈 47경기 34골 
1998-99  인테르 : 리그 19경기 14골, 토탈 28경기 15골
1999-00  인테르 : 리그 7경기 3골, 토탈 8경기 3골
2000-01  인테르 : 리그 0경기 0골, 토탈 0경기 0골
2001-02  인테르 : 리그 10경기 7골, 토탈 16경기 7골
2002-03  레알 마드리드 : 리그 31경기 23골, 토탈 44경기 30골
2003-04  레알 마드리드 : 리그 32경기 24골, 토탈 48경기 31골
2004-05  레알 마드리드 : 리그 34경기 21골, 토탈 45경기 24골 
2005-06  레알 마드리드 : 리그 23경기 14골, 토탈 27경기 15골
2006-07  레알 마드리드 : 리그 7경기 1골, 13경기 4골
2006-07  AC밀란 : 리그 14경기 7골, 토탈 14경기 7골
2007-08  AC밀란 : 리그 6경기 2골, 토탈 6경기 2골
2009 코린티안스 : 주리그 7경기 5골



클럽 :  458경기 324골
국가대표 : 97경기 62골
U-23 국가대표 : 8경기 6골
토탈 : 556경기 387골


팀 커리어

크루제이루
- 브라질컵 : 1993
- 미네이루 챔피언쉽 : 1994

아인트호벤
- 네덜란드컵: 1996

바르셀로나
- 스페인 슈퍼컵 : 1996
- 컵 위너스컵 : 1997
- 스페인컵 : 1997

인테르
- UEFA 컵 : 1998


레알 마드리드
- 라 리가 : 2003
- 인터콘티넨탈컵 : 2002
- 스페인 슈퍼컵 : 2003

AC밀란
- UEFA 슈퍼컵 : 2007
- FIFA 클럽 월드컵 : 2007



국가대표
- FIFA 월드컵 : 1994, 2002
- 코파 아메리카 : 1997,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 1997
- 1996 하계 올림픽 : 동메달

개인수상

-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남미 챔스) 득점왕 : 1993-94
- 미네이루 챔피언쉽 득점왕 : 1993-94
- 미네이루 챔피언쉽 올해의 팀 : 1994
- 에레디비지에 득점왕 : 1994-95
- 라 리가 득점왕 : 1996-97
- European 골든 붓 : 1996-97
- 라 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 : 1996-97
-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MVP : 1997
- 코파 아메리카 MVP : 1997
- 컨페더레이션스컵 올스타 팀 : 1997
- 컵 위너스컵 결승전 MVP : 1997
- IFFHS선정 세계 올해의 공격수 : 1997
- UEFA MVP : 1997-98
- 세리에A 올해의 선수 : 1997-98
- 세리에A 올해의 외국인 선수 : 1997-98
- UEFA 올해의 공격수 : 1997-98
- Bravo Award(23세 이하 발롱도르) : 1997, 1998
- FIFA 월드컵 골든볼 : 1998
- UEFA컵 결승전 MVP : 1998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 1999
- 코파 아메리카 올스타 팀 : 1997, 1999
- FIFA 올해의 선수 : 1996, 1997, 2002 
- 발롱도르 : 1997, 2002 
-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 : 1996, 1997, 2002
- 옹즈도르 : 1997, 2002
- FIFA 월드컵 실버볼 :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1998, 2002
- FIFA 월드컵 결승전 MVP : 2002
- FIFA 월드컵 골든슈 : 2002
- 인터콘티넨탈 컵 MVP : 2002
- UEFA 올해의 팀 : 2002
- BBC선정 올해의 스포츠 선수 : 2002년 수상
- 라 리가 올해의 남미 선수 : 1996-97, 2002-03
- 라 리가 득점왕 : 2003-04
- FIFA 월드컵 역대 최다골(15골) 수립자
- 골든풋 : 2006
- 2007 Calcio Oscar 챔피언 중의 챔피언
- 월드사커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00인중 13위: 1999
- 프랑스 풋볼지(발롱도르 선정하는 곳) 선정 역대 베스트 11 : 2007
- FIFA 펠레 선정 100인 : 2004
- ESPN 선정 베스트 11 : 2008
- ESPN 선정 위대한 선수 100인중 2위 : 2008

- 포포투 선정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
- 1999년 72위(축구선수중 유일)
- 2005년 72위(26위 베컴과 함께 축구 선수로 랭크됨)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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