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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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스페셜] 이탈리아를 이끄는 실질적 리더, 유벤투스

기사입력 2008.12.16 08:31 / 기사수정 2008.12.16 08:31

안경남 기자

축구는 전세계인이 모두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세계 전역에서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고, 수많은 이들이 공의 움직임에 열광합니다.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스포츠인만큼, 축구 클럽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축구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의 경우에는 권역별 리그까지 포함하는 경우 13부리그 이상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팀이 있습니다. 축구를 즐기는 나라가 많은 만큼, 그 수를 곱하게 된다면 엄청난 팀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 중에, 흔히들 말하는 '명문 클럽'이 존재합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선수들은 명문 구단의 유니폼을 입는 것을 꿈으로 여깁니다. 수많은 트로피가 구단의 역사를 증명하고, 단지 긴 것뿐만이 아닌 역사에는 많은 이야기가 녹아있습니다. 단지 한순간의 '강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것입니다.

'명문 클럽'뿐만이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지역색이 묻어나오면서 사회와 호흡해가는 팀들도 있습니다. 크고 요란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신들을 응원해 주는 팬들과 함께 자라나는 세계 곳곳의 팀들도 있습니다. 유럽에도, 남미에도, 그리고 이 곳 대한민국에도 그런 팀들은 존재합니다.

엑스포츠뉴스에서는 '클럽스페셜' 코너를 통해서 세계 각지의 축구 클럽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나 readers@xportsnews.com으로 편하게 문의를 해주세요.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안경남 기자]
세리에A 최다 우승팀은 어디일까?

바로 비안코네리(Bianco-neri) 유벤투스다. 2006년 5월 이탈리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승부조작 파문으로 인해 클럽 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로 추락하는 수모를 맛봤지만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축구를 이끌어 온 실질적 리더임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를 연고로 하는 유벤투스는 1897년 첫발을 내디뎠다. 디 아젤리오(D'Azeglio)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클럽의 시초로 당시 팀은 10대의 어린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이는 팀의 명칭이 라틴어로 젊음을 뜻하는 'Juventus'인 이유이기도 하다.

유벤투스가 리그에 처음으로 참가한 시기는 1900년이다. 이탈리아 리그의 시작이 1898년인 점을 감안한다면 초창기 멤버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유벤투스는 리그 참가 5년만인 1905년에 첫 정상등극에 성공한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후 20여 년간 팀 내 여러 문제로 인해 방황했기 때문이다.

이후 방황의 길을 걷던 유벤투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넨 사람이 등장했다. 1923년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FIAT)의 창립자 아들인 에도아르도 아넬리가 구단주로 취임한 것.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한 유벤투스는 이후 새로운 경기장을 설립하는 등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리그 5연패,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다

부자 구단주를 맞이한 유벤투스는 1925년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수 영입을 시도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라이문도 오르시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는 유벤투스 이적 후 국적을 바꿔 이탈리아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 밖에 이탈리아 넘버 원 골리의 시초라 불리는 지암피에로 콤비와 벽이라 불렸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루이스 몬티 등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했다. 뿐만 아니다. 당시 1934년 월드컵을 거머쥔 이탈리아 대표팀의 대부분이 유벤투스 소속이었단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결과 유벤투스는 1931년부터 1935년까지 5연속 리그를 제패하는 등 이탈리아 최고 클럽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1977년 UEFA컵 우승, 빅3의 실질적 리더

1940년에 들어선 이탈리아 리그는 절대강자가 없는 시대였다. '수페르리가의 비극'으로 불리는 참사가 있기 전 연고 라이벌인 토리노가 리그를 지배했으나 이후 판도는 인터밀란-AC밀란-유벤투스가 번갈아 우승 트로피를 찾기 하는 양상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벤투스는 1961년 10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가슴에 최초로 금별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린다.

이른바 빅3라 불리던 인터밀란-AC밀란-유벤투스간의 격차가 차츰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부터다. 리그 우승의 단골손님이었던 유벤투스는 1977년 UEFA컵을 들어올리며 처음으로 유럽클럽대항전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유벤투스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끈 인물들 역시 화려하다.

유벤투스 통산 326경기에서 129골을 터트리며 최전방을 이끈 로베르토 베테가를 비롯해 프랑코 카우시오, 마르코 타르델리, 디노 조프 등 공수에 걸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넘쳐났다. 특히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타르델리의 플레이는 단연 최고였다. 또한, 12경기서 한 1,143분 무실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긴 조프 역시 지금까지 회자하는 전설적인 골키퍼이다.



미셀 플라티니 시대, 마르셀로 리피의 등장

1980년대 유벤투스를 이끈 선수는 現(덧말:현) UEFA 회장인 미셀 플라티니다. ‘뢰블레 군단’이 낳은 세계적인 미드필더인 그는 유벤투스에서 3연속 득점왕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팀의 성공을 이끌었다. 또한, 1984-85시즌에는 클럽 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플라티니는 챔피언스리그에서 7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다.)

그러나 당시 유벤투스는 우승의 기쁨을 맘껏 누리지 못했다. 리버풀과 치른 결승전에서 39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헤이젤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유벤투스는 1985-86시즌 정상 등극 이후 한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애를 먹었다.

위기의 순간엔 언제나 영웅이 등장했듯이 당시에도 유벤투스를 구원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2006년 이탈리아의 독일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다. 이때부터 유벤투스의 세 번째 전성기가 시작됐다. 1994-95시즌 첫 지휘봉을 잡은 리피 감독은 곧바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일명 리피의 아이들로 불리는 선수들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부터다. 1993년 유벤투스에 입단한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를 비롯해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 지안루카 비알리, 시로 페라라가 제1기 리피의 아이들이다. 이들과 함께 리피 감독은 UEFA컵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유벤투스를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클럽에 올려놓는다.

한번 불이 붙은 유벤투스의 상승세는 또 다른 리피의 아이들 영입으로 이어졌다. 1996년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을 시작으로 필리포 인자기(1997), 에드가 다비즈(1998), 다비드 트레제게(2000), 지안루이지 부폰(2001), 파벨 네드베드(2001), 릴리앙 튀랑(2001)이 연속해서 리피 사단에 합류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한 유벤투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997, 1998년 연속 세리에A를 제패한 데 이어 2002, 2003년에도 2연속 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또한, 그 와중에 2002-03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등 대내외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승부조작 스캔들, 2부 리그로 추락하다

리피의 뒤를 이어 유벤투스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現(덧말: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다. 카펠로 역시 유벤투스 부임 이후 2연속 리그를 제패하며 유벤투스의 상승세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러나 2006년 5월에 터진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카펠로의 우승 경력은 지워졌고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당시 스캔들은 유벤투스뿐만 아니라 AC밀란,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 대다수 클럽이 연류돼 있었다. 유벤투스는 승부조작을 주도한 루치아노 모기 단장으로 인해 세리에C1 강등 조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징계가 완화되며 최종적으로 세리에B 강등과 승점 9점 감점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세리에B 강등은 '강팀' 유벤투스의 해체를 의미했다. AS모나코의 돌풍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디디에르 데샹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며 분위기 쇄신을 노렸으나, 주축 선수 대부분이 팀을 떠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지안루카 잠브로타와 릴리앙 튀랑이 바르셀로나로 떠났고 유벤투스에 뼈를 묻을 것만 같았던 파비오 칸나바로도 레알 마드리드로 적을 옮겼다.

이 밖에 에메르손(레알 마드리드), 파트릭 비에이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이상 인터밀란) 등도 유벤투스를 뒤로하고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다행히도 유벤투스는 한 시즌 만에 세리에B 우승을 차지하며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네드베드, 부폰, 델 피에로, 트레제게, 카모라네시 등 팀을 떠나지 않고 1년간 헌신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

2007/08시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에게 새롭게 지휘봉을 맡긴 유벤투스는 비록 예전의 강력함은 사라진 모습이었지만 당당히 리그 3위(20승 12무 6패)를 차지하며 명가재건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올 시즌 유벤투스의 행보도 나쁘지 않다.

16라운드가 진행된 현재 10승 3무 3패(승점 33점)로 인터밀란(승점 39점)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체치고 조 선두로 16강을 확정 짓는 등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유벤투스가 이탈리아 리그에 남긴 자취는 분명 그 어느 클럽보다 진했다. 리그 최다우승(27회)을 비롯해 모든 기록이 유벤투스를 언급하지 않고선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리에A 상위권을 누비고 있지만 과거의 행보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유벤투스의 제자리 찾기에 관심이 모인다.

▲유벤투스가 차지했던 트로피

세리에A 우승 : 27회(1905, 1925-26, 1930-31, 1931-32, 1932-33, 1933-34, 1934-35, 1949-50, 1951-52, 1957-58, 1959-60, 1960-61, 1966-67, 1971-72, 1972-73, 1974-75, 1976-77, 1977-78, 1980-81, 1981-82, 1983-84, 1985-86,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2-03)

이탈리아컵 우승 : 9회(1937-38, 1941-42, 1958-59, 1959-60, 1964-65, 1978-79, 1982-83, 1989-90, 1994-95)

이탈리아 수퍼컵 : 4회(1995, 1997, 2002, 2003)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 2회(1984-85, 1995-96)

UEFA 컵 우승 : 3회(1976-77, 1989-90, 1992-93)

유로피언 수퍼컵 우승 : 2회(1984, 1996)

UEFA 컵위너스컵 우승 : 1회(1983-84)

UEFA 인터토토 컵 우승 : 1회(1999-2000)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 2회(1985, 1996)

[사진=ⓒ유벤투스 구단 홈페이지 캡쳐]



안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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