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8:38
스포츠

추억의 경기(23) 무에타이 VS 유술

기사입력 2005.02.16 10:26 / 기사수정 2005.02.16 10:26

김종수 기자





2004년 12월 31일 'K-1 PREMIUM 2004 Dynamite'


'무에타이 챔피언'  찬 뎃 소판트레이(Chandet Sorpantrey) VS '유술의 명인' 우노 카오루(Caol Uno)

                                 1

시합을 앞둔 소판트레이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쿵! 쿵쿵… 쉴새없이 심장이 요동치고있는 가운데 붕대로 탄탄하게 감싼 손바닥 안으로는 벌써부터 땀이 흥건히 배어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의 공식적인 첫 종합격투기 데뷔전이다. 무에타이라면 인이 배기도록 몸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런 무대는 분명히 그가 싸우던 링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더욱이 상대는 치고 때리는 것 외에 잡고 꺾는 것에도 능한 '유술의 명인'이 아니던가. 소판트레이와 K-1 PREMIUM 2004 Dynamite에서 맞붙게된 상대는 유술이라는 다소 생소한 격투술을 구사하는 슈토(Shooto)와 UFC의 베테랑 우노 카오루(Caol Uno)이다.

'치잇…아무리 그래도 나 역시 챔피언이다. 그라운드만 조심하면 절대적으로 내가 우세해'

단순히 격투의 경력만으로 따지자면 소판트레이 역시 결코 뒤질게 없었다. 입식격투기의 최고봉이라고하는 무에타이, 거기에서도 최고의 명예로 치고있는 룸피니출신의 라이트급 챔피언이 아니었던가. 한참 몸이 좋을 때 같으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팔꿈치와 무릎으로 작살을 내버릴 자신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무에타이 선수로서는 이미 은퇴를 고려해야할 정도인 그에게 이제 막 전성기를 맞고있는 우노 카오루는 결코 호락호락한 적수가 아니었다.
'그라운드로 전환하기 전에 끝내 버려야 돼!'
소판트레이의 머릿속은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2

'전성기가 한참 지난 퇴물쯤이야…'
우노 카오루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다른 격투기 종목으로 따지면 40세 이상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대는 노장이었다. 비록 자신과의 실제 나이는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평균수명이 낮은 태국인, 거기에다 20대 후반만 되어도 훌쩍 늙어버리는 무에타이라는 종목만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경험한바 있었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야. 최대한 신속하게 그라운드로 전환해야 해"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해서일까, 귓전으로 트레이너의 음성이 들려왔다.
씨익… 트레이너의 걱정스러운 음성과는 달리 우노 카오루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다테시 유조(Yuzo Tateishi), 와치 마사히토(Masahito Wachi), 코타니 히로키(Hiroki Kotani), 딘 토마스(Din Thomas), 데니스 홀맨(Dennis Hallman), 입스 에드워즈(Yves Edwards), 페비아노 이하(Fabiano Iha) 등등… 그에게 패한 상대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긴다!'
넘치는 자신감과 함께 우노 카오루는 천천히 링 중앙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경기시작

탁…타, 타탁…
평소 맨발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오늘은 레슬링 슈즈를 신고 나온 우노 카오루는 경쾌한 스탭을 바탕으로 링사이드를 빙빙 돌며 소판트레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소년을 연상케하는 부드러운 얼굴 탓에 다소 유해보이는 이미지가 풍겨 나오고 있었지만 전투적인 의지로 가득 찬 그의 두 눈은 잘 닦아 놓은 칼날을 연상시키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태클타이밍을 노리고 있군?'

MMA룰에는 무지하다고는 허나 소판트레이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쉬익…파파팟, 타탁!
어느 정도 대비하고있던 터였던지라 날렵하게 달려와 태클을 시도하는 우노 카오루의 1차공격은 빠르게 옆으로 돌아 피해버리는 소판트레이의 몸놀림에 막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호…이것 봐라?'

어디든지 신체의 일부분을 잡으며 그대로 연속공격으로 그라운드로 전환할 생각이었던 우노 카오루는 생각보다 소판트레이와의 접근거리가 많이 났음에 이맛살을 찡그리며 양어깨를 가볍게 들썩거렸다. 비록 한번의 공격밖에 해보지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대는 나름대로 준비가 잘되어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 것이다.

"공격할 때를 노려! 무릎 조심하고!"

소판트레이의 화려한 경력을 의식한 탓인지 우노 카오루의 세컨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휘익!
소판트레이의 로우킥이 우노 카오루의 안쪽 정강이를 노리고 힘차게 휘어 들어왔다. 순간 우노 카오루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빠르게 소판트레이의 가슴팍을 향해 다가들었다. 킥을 피하기보다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맞아주고 차라리 다음공격에 대비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파팍!
우노 카오루의 정강이에 소판트레이의 로우킥이 빗겨 맞은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엉겨붙어 링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예상치 못한 우노 카오루의 저돌적인 반격에 소판트레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흘렀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양팔로 우노 카오루의 목을 감싸안고 자신의 가슴 쪽으로 당기는 소판트레이였다.

'네놈이 무에타이를 대비했듯이 나 역시 MMA기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소판트레이의 얇지만 근육투성이인 팔뚝은 우노 카오루의 목덜미를 깊숙이 점령하고 있었다.

초크(Choke)!
현재 소판트레이가 우노 카오루에게 펼쳐 보이는 기술은 다름 아닌 초크기술이었다. 입식타격의 명인 미르코 필로포비치(Mirko Filipovic)가 '프라이드 남제2004'에서 MMA룰이 특기였던 케빈 랜들맨(Kevin Randleman)에게 허망한 패배를 안겨줬던 바로 그 기술!

하지만 그라운드 쪽이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우노 카오루에게 무에타이 선수의 초크는 그다지 위협적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몸을 한쪽으로 비틀은 상태인지라 제대로 기술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만!"

심판의 사인과 함께 두 사람은 다시 몸을 풀고, 처음의 입식자세를 취했다. 대회룰에 따라 30초가 지나면 그라운드자세를 해지해야만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잘 써먹을 수 있는 작전이 될 수도 있지만 구태여 따지자면 소판트레이에게 조금더 유리할 수도 있는 규정이었다.

"……"
우노 카오루는 복싱의 아웃복서를 연상시키듯 연신 경쾌한 스탭을 밟으며 소판트레이의 주위를 맴돌고있었다. 그에 반해 소판트레이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만 번뜩거리며 우노 카오루의 움직임을 지켜볼 뿐이었다. 무에타이 링에서처럼 마음놓고 공격을 하기에는 우노 카오루의 빠른 태클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이킥은 생각조차 못하고, 미들킥을 한방 날리는 것도 지극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쉬익… 소판트레이의 미들킥이 터지기 무섭게 또다시 우노 카오루가 달려들었고, 둘은 다시 한참을 엉켰다가 심판의 30초 사인이 나서야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헉헉…"

예상 밖으로 방어를 잘해내는 소판트레이였지만 그 바람에 체력은 평소의 배 이상이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이것 봐라…'

우노 카오루의 표정은 그저 담담할 따름이지만 그의 눈빛은 심하게 요동치고있었다. 그라운드로 전환만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대의 반항이 뜻밖에 거셌기 때문이었다.

'안되겠다. 1라운드는 이렇게 넘겨야겠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노 카오루 역시 처음과 달리,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서있는 자세에서는 소판트레이의 공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으나, 상대 역시 태클을 의식해서인지 로우킥 외에는 특별한 공격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노 카오루는 한가지 공격만을 방어하면 되는 편안한 입장 속에서 1라운드를 마쳤다.

"저 태국놈…대비를 상당히 많이 한 것 같군. 하지만 그라운드에 무지한 놈이 대비를 해봤자지. 잘 들어 이젠 시간 끌지 말고 한번에 끝내 버리는 거다"

무슨 작전이라도 세워놓은양 세컨과 우노 카오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판트레이 역시 자신의 세컨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지만, 주로 1라운드에 대한 분석이 주가 되고있었다.

땡!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2라운드의 공이 울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노 카오루는 성큼성큼 소판트레이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1라운드 초반처럼 스탭같은 것도 밟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성큼성큼이었다.

'이 자식이!'

소판트레이의 로우킥이 득달같이 터져 나갔고 우노 카오루는 다리를 들어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흥!"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임수였다. 생각보다 다리에 닿는 로우킥의 위력이 약하다고 느낀 순간 소판트레이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무릎공격을 해댔다.
퍽퍽!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먹공격. 우노 카오루는 신속하게 가드를 올렸지만 소판트레이는 전혀 개의치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1라운드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그라운드를 의식했었어. 이제는 내 스타일대로 경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클린치하듯 품에 깊숙이 달라붙은 우노 카오루는 양발로 소판트레이의 옆구리를 휘어 감았고 그 바람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려던 무릎과 주먹공격은 일순 주춤하고 말았다.

휘익…
그리고 이어진 우노 카오루의 동작은 소판트레이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양발로 소판트레이의 옆구리를 휘어 감은 우노 카오루는 그 자세그대로 뒤로 드러눕고 말았다.

'……!'
뜻밖의 상황에 소판트레이는 우노 카오루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래쪽을 택한 채 스스로 넘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우노 카오루의 번개같은 공격은 소판트레이가 이후에 할 모든 상상의 자유를 빼앗아버렸다.

스르륵…
마치 그림자가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듯 우노 카오루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소판트레이의 등 쪽으로 몸을 이동시켰고, 어느새 말을 탄 듯한 자세로 전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한 팔뚝이 소판트레이의 목을 조르는 순간, 승부는 이미 끝이 났다.

"크…크큭!"
고통을 견디다못한 소판트레이가 바로 기권의사를 표했고, 심판은 빠르게 경기를 중단시켰다. 2라운드, 그리고 19초가 흘러있었다.

 



김종수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