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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세상을 노래한 가객 [XP초점①]

기사입력 2015.10.27 10:11 / 기사수정 2015.10.27 10:17

한인구 기자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가족과 그동안 살아온 것을 담아낸 음악이니 많이 지켜봐 달라. 이제 나이가 마흔여섯인데, 더 젊거나 참신해 보이기보다는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 기왕이면 내가 차린 식탁에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한 의자에 앉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겠다."

고(故) 신해철은 지난해 6월 정규 6집 part.1 'Reboot Myself(리부트 마이셀프)'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처럼 말했다.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날선 생각을 전했던 신해철은 6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드라마틱한 대답'보다는 '현실적인 답'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신해철은 음악으로 '자아 문제'를 다뤘던 것에서 벗어나 '가족과 다음 세대'를 걱정했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어른이 된 책임을 느꼈다. 아내와 가족에 대한 자랑도 늘어놨다. 넥스트의 새 앨범과 넥스트 유나이티드 계획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계획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랜 시간 활동을 멈추고 있었던 '마왕'이 서서히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요계 복귀에 무대의상이 낯설다던 신해철은 같은 해 10월 27일 돌연 세상을 떠났다. S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은 뒤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잡은 마이크가 손에 익기 전 누구도 생각지 못한 죽음을 맞았다.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는 "이번 사건이 의료상의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로 남는다면 남편이 위로로 삼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다음 세대를 위한 숙제를 남겼다.

신해철의 유작이 된 '리부트 마이셀프'는 큰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투철한 실험 정신은 빼곡히 담긴 앨범이었다. '아따'는 모든 악기 파트를 신해철이 직접 아카펠라로 구성한 노래였다. 목소리 만으로 악기 소리를 내기 위해 음에 따라 체중을 늘리거나 뺐다. '단 하나의 약속'은 신해철이 가장 애착을 드러낸 곡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시작해 15년 작업했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멜로디에 빼곡히 들어찼다.

신해철은 사회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생각에서 곧잘 벗어났다. 그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신해철은 자신의 주장과 할 말은 거침없이 하는 가수였다. 남들이 껄끄러워하는 이야기들은 한데 모여 라디오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타고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마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해철은 1968년 5월 6일생으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며, 서강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참가해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았다.

그는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 가수로 발걸음을 뗐다. 이 기간에는 '음악적 실험'보다는 '대중성'에 더욱 무게를 둔 음악이 팬들과 만났다. 1990년 데뷔 앨범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시작으로 1991년 정규 2집 'Myself(마이셀프)'를 공개했다. '마이셀프'의 수록곡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은 신해철이 점차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계기가 됐다.

신해철은 이동규, 정기송과 함께 1992년 밴드 N.EX.T(넥스트)를 결성해 더욱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넥스트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앨범을 내놓았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Lazenca, Save Us(라젠카, 세이브 어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날아라 병아리' 'Here, I Stand For You(히얼 아이 스탠드 포 유)' 등이 사랑받았다. 특히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당시 구시대적 산물인 동성동본 금혼을 꼬집었고, 제도 폐지 여론에 힘을 실었다.

신해철은 1997년 넥스트의 해체 및 4집 발매 기자회견에서 국내시장과 공연시스템의 열악한 구조로 인해 밴드 활동의 지속이 어렵다며 넥스트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는 이후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래퍼 김진표와 노바소닉을 결성해 활동했다.

넥스트 4집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기타리스트 크리스 샹그리디와 손잡은 신해철은 1998년 테크노음악에 기반한 솔로앨범 '크롬스 테크노 웍스(Crom's Techno Works)'를 발표했다. 1999년 4월에는 크리스 샹그리디와 모노크롬(MONOCROM)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동명의 타이틀로 앨범을 제작했다. 여러 장르를 혼합하는 신해철의 실험 정신이 꽃 피운 앨범이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던 신해철은 2000년 임형빈, 데빈 리와 새로운 밴드 비트겐슈타인으로 활동의 기지개를 켰다. 넥스트 시절보다 일렉트로닉 성향이 짙어진 음악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어 2003년 넥스트를 재결성해 쉼없이 작업 해왔다.

정규 6집 part.1 'Reboot Myself(리부트 마이셀프)'는 신해철의 유작이 됐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적으로는 열심히 활동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아직도 낯설다. 가족과 그동안 살아온 것을 담아낸 음악이니 많이 지켜봐 달라"고 밝혔다.

26년 노래한 신해철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그는 대학가요제에서 이름을 알렸고, 대중가수로 성공을 맛봤다. '한계점' 없는 음악적 실험을 통해 '음악은 진화한다'라는 것을 직접 자신의 인생으로 대중에게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신해철의 빈자리는 음악팬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

in999@xportsnews.com / 사진 =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 신해철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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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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